용기가 없어서 샐러리맨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어.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감도 물론 있지. 그런데 십 년 넘게 내 사업에 대해 생각만 하다가 벌써 18년이 흘러 버렸지 뭐야.
아, 더 근본적으로는 노래를 하고 싶었어. 취미로서 말고 내 업으로 말이야.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라든지, 만일 직업을 다시 고르라고 한다면 이라든지 따위의 가정을 가끔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잖아.
그래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내가 가진 돈과 시간과 각 분야의 능력, 인간관계 등등을 늘 다시 계산해 보고는 해. 언제 이 지긋지긋한 샐러리맨 생활을 탈출해서 늘 꿈만 꾸고 생각만 하던 걸 실행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 말이야.
멜버른 앨리스의 글 읽어 보았니? 그 친구 정말 근사하고 멋지지 않니? 호주까지 가서 한식당을 열고, 자기 팀하고 꽤나 개성 넘치는 공간을 창조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고 지독하게 열심히 살고 있어. 나이는 나보다 틀림없이 어린데 뭐랄까, 그 강단이랄까 내공이랄까 아무튼 퍽 자극을 주고 묘한 승부욕 같은 것도 느끼게 하는 친구야. 그 친구 글에 댓글을 달 때는 반말로 써. 앨리스가 그게 편하고 좋다고 해서. 근데 반말로 하니까 무지 친밀하게 느껴지고 편하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았어.
딸이 둘 있어. 얘들이 살아가면서 평범함의 소중함을 알기를 바라. 그러나 무언가 평생을 가로지르는 억압 속에서 눌려 지내지 않기를 또한 바라. 그래서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면서 자랐으면 해. 남들 하는 거 꼭 해야 하는 강박으로 교육받으며 자라지 않기를 바라. 주변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을 만큼의 중심을 잡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강인함을 길렀으면 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자유롭고 풍부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건 국적과 인종과 종교와 나이와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과 문화가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확신할 수 있었어.
몇 번의 모험을 걸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고 있어. 나락으로 빠지는 것 같은 불안하고 힘빠지는 시간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수렁이 깊지 않았다고 생각해. 아니, 오히려 그게 수렁이 아니라 벼랑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놀라운 새 길이었던 적이 적지 않았어.
근데 아직 샐러리맨이야. 하하. 샐러리맨이라는 걸 깔보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야. 다만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거지. 다행히 이번에는 좀 더 내 아이디어와 의지를 깊고 강하게 표현하고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만큼 책임이 무겁게 따라올 테지만 언젠가는 고독한 리더로서 경험하게 될 일들을 미리 해 보는 셈 치고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 보고 싶어.
뭔가 참 비논리적이고 두서도 좀 없는 것 같지만 오늘은 그냥 이렇게 말할게. 샐러리맨이라는 게 어쩔 때는 참 싫어. 그런데 내가 지금 샐러리맨으로서 내 일을 스스로 만족할 만큼 해내지 못한다면 다른 꿈은 계속 접어두어야 해. 일단 스토리 하나 만들고 가자. 그런 다음에 진짜 서사시를 짓는 거야. 그때는 물론 나, 샐러리맨 그만 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