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홍콩에서 광저우로 올라갔다.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나서 하이주구에 있는 한 쇼핑몰을 한가롭게 거닐며 윈도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때 손전화기의 위챗에 동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화면으로 붉은 복장의 판관 포청천처럼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판관 포청천으로 보였던 붉은 전통 복장의 인물은 '재물의 신'이라고 들었다. 그가 쇼핑몰에 나타나 홍빠오(红包: 붉은 봉투라는 의미지만, 중국 사람들이 명절에 용돈을 넣어 세뱃돈처럼 가족들 혹은 지인에게 주는 용돈이다)를 뿌리기 시작하자 그 일대는 금세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다 작은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판관 포청천, 아니 '재물의 신'이 홍빠오를 나눠 주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그걸 받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처음엔 한 장씩 받아가던 사람들이 성에 안 차는지 억세게 손을 내밀어 몇 장을 움켜쥐었다.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우악스럽게 군중을 뚫고 들어가 재물의 신이 들고 있던 홍빠오가 가득한 가방을 낚아채고는 그 안에서 수십 장의 홍빠오를 끄집어냈다. 재물의 신은 순식간에 들고 있던 홍빠오 가방을 빼앗겨 어쩔 줄을 몰랐다. 돌려달라고 말했지만 아주머니는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전리품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군중 속에 함께 있던 어떤 사람이 그 위풍당당한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 아이구, 아주머니! 그거 돈 아니에요.
그거 할인 쿠폰이에요! 그렇게 많이 가져가셔도 소용없어요! "
아주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손에 움켜쥔 홍빠오들을 재물의 신에게 돌려주거나 다른 사람한테 양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니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이걸 나눠줄 것 같아? '
어제는 11월 11일 중국, 아니 전 세계의 중국인들은 광군제 또는 솽스이(雙11, 쌍11)로 불리는 이날 또 엄청난 쇼핑 기록을 세웠다. 이제는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알리바바가 지난해 매출 1,682억 RMB(한화 약 27조원3천억원) 기록을 가볍게 깨고 이번에는 2,135억 RMB(한화 약 34조7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한다.
이런 액수는 사실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 큰 감흥은 없다. 그보다는 중국인 친구들의 이야기가 더 공감이 갔다. 한 친구 왈, 작년 11월 11일에도 밤잠 설쳐가며 인터넷 쇼핑을 했단다. 그때 산 두루마리 휴지와 각티슈가 아직 집에 한가득 있고 1년 동안 다 쓰지도 못한 물건들이 집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근데 이번에도 자기는 침대에 앉아 11월 11일 0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손전화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꼬락'을 꼬물거리고 있더란다.
" 이게 꼭 사야 하는 건 아닌데, 안 사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거든. 물건이 엄청 싸잖아. 남들 다 눈에 불을 켜고 쇼핑하는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 그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