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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14. 2019

우리는 홍콩 한국 국제학교 학생입니다!

홍콩 국제학교(KIS) 학생 인터뷰


어리숙했던 주일학교 교사


  1993년부터 1995년 초까지 대학생 시절 주일학교 교사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학생 신분에서 선생님으로 역할을 바꿔 보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세 반 가운데 연못반을 맡아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책과 자료를 살펴 공부를 하고 교안이라는 걸 처음 만들었고, 수업 리허설까지 하며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막상 교탁 앞에 서니 긴장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쉬운 내용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성서와 교리와 관련해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나오곤 했어요. 누군가에게 가르쳐 보면 내가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완전히 소화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강의를 하다가 열이 점점 오르고 볼과 귀까지 뜨거워집니다. 계속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 같은데 말이 자꾸 길어집니다.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을 보니 뭔가 잘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입니다. 당연했습니다. 저도 제가 그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 지경이었으니까요.


 저 뒤편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수업 시간 내내 잡담을 하며 제 강의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수업 초반에는 저와 눈빛을 맞추고 열심히 듣는 것 같더니 뒤로 갈수록 주의가 산만해집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려운 개념이었고 쉬운 말로 설명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맨 앞자리에 앉은 두 명의 여학생은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어요. 비록 후반부의 선생님 말씀이 좀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한 시간 내내 눈을 맞추고 열심히 들어주었습니다. 초짜배기 선생님은 한 시간 수업을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뭘 가르쳤는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지만 끝까지 경청해 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홍콩 국제학교 고등부 재학생과의 만남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십 대 한국 청소년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 나이나 하는 일을 고려하면 이들과 평소에 만나 교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다행히 좋은 명분이 생겼고 그들의 스승 한 분이 다리를 놓아주신 덕분에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주일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나서 이렇게 십 대 학생들과 직접 만나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지 싶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 아, 이 아이들, 참 바르게 자라 주었구나. 내 젊은 시절 주일학교 교리 시간에 헤매던 나를 눈 동그랗게 쳐다보아 주던 아이들의 눈빛이 생각난다. '


 우리는 7시경에 홍콩 사이완호 역 근처에서 만나 바닷가 주택가의 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어요. 역 근처에서 한국 국제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는 박미진 선생님을 만났고 잠시 후 학생 회장을 맡고 있는 황영서 양과 한 학년 후배라고 소개한 임지현 양을 만났습니다. 두 남학생들 그러니까 얼마 전 한국의 대학 입학에 합격한 이준, 함주현 군은 식당에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인 홍콩 토박이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음식 주문을 하기로 했어요. 대략 각자 먹고 싶은 걸 고르고 종업원이 왔을 때 영어로 주문을 하려고 했지요. 그때 함주현 군이 자연스럽게 홍콩말 그러니까 광둥어로 음식 주문을 하는 거였어요. 광둥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저이지만 10년 전부터 광둥어를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할 때 잘하는지 못하는지 정도는 구분이 됩니다. 주현 군은 현지인이 말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색하지 않더군요.


 주현군은 그날 모인 학생들 가운데 아니, 선생님과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 홍콩 거주 기간이 가장 길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주현 군이 홍콩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었어요. 많은 한국 부모들이 해외에 살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 돌아가 출산을 하는 것과 달리 주현 군의 부모님은 홍콩 현지 병원에서 주현 군을 낳으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홍콩 아이들과 똑같이 현지의 초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홍콩에서 태어나 자라긴 했지만 한국 부모님 밑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그는 홍콩 로컬 학교에서의 학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고민 끝에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해 KIS (한국 국제학교)로 전학을 했고 그 이후로 졸업을 하고 한국의 명문 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 합격 통지를 받기까지 무사히 학창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하네요.


" 한국어가 정말 유창하네요? ㅎㅎㅎ " 제가 주현군에게 말했어요.

주현군도 웃었고 함께 있던 우리 모두 웃었습니다.


농구 천재, 세계에서 한 명 뽑는 바늘구멍 통과


 주현 군 오른편에 앉아 있던 다부진 체격의 남학생은 이준 군이었습니다. 듣자 하니 두 학생은 KIS 대표 농구팀 소속이라고 합니다. 키가 작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두 사람 다 포지션은 가드라고 하네요. 박미진 선생님이 얼마 전에 있었던 홍콩 고등부 농구 리그 결승전 이야기를 침을 튀겨가며 상기시켜 주셨어요.


"야, 너희들 어떻게 한 거야? 지고 있지 않았어? 어떻게 이긴 거야?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아, 네 거의 막판에 가서야 뒤집었어요. 우리랑 결승을 치렀던 그 홍콩 로컬 고등학교는 예선에서도 맞붙었는데 그때도 우리가 이기긴 했어요. 결승에서는 우리가 질 뻔했죠. "

" 보니까 그 팀 선수들 화나서 험상궂게 나오고 그러던데? "

" 네, 다 이긴 게임을 놓쳐서 속상했을 거예요. ㅎㅎㅎ "


 그날 엔트리 멤버가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고작 여덟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준 군과 함주현 군은 전 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게임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둘 다 사력을 다해 끝까지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저도 왕년에 농구에 미쳐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식 농구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화하는 건 정말이지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되는 엄청난 일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두 청년을 새삼 다른 눈으로 보게 되더군요.


 두 친구는 나란히 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준 군은 특이하게도 모집 인원이 1명인 모 명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의 농구 전형에서 세계의 지원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합격했다고 합니다. 대체 얼마나 농구를 잘하길래 그런 기적적인 결과를 얻었을까요? 알고 보니 서로의 대학이 '호적수'라 불리는 안암동과 신촌의 대학이었습니다. 홍콩에서 7년이나 같이 보낸 절친이 이제 한국에 가면 '적수'로 만나게 될까요? 이제 홍콩을 떠나 고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두 친구가 오래도록 우정을 깊이 쌓아가길 빕니다.


사드도 문제없다! 홍콩의 한류


 주현군이 아주 어릴 적에는 홍콩에서 한국인을 보는 느낌이 마치 어디 지구 반대편 먼 곳에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 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한국의 드라마가 홍콩에 상륙했고, K-Pop이 홍콩의 젊은이들을 광풍 속에 몰아넣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의류나 화장품을 비롯해 먹거리까지 수입되면서 홍콩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마어마하게 격상되었습니다. 그러다 홍콩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는 열풍이 불어닥쳤고 곳곳의 공공기관과 사설 학원에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지요. 특히 홍콩 사람들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절대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흠뻑 젖어 한국어와 친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홍콩 사람들이 한국인을 만나면,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빠~~ "와 같은 어휘들을 상황과 상관없이 그저 호감의 표현으로 마구(?) 사용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듣자 하니 중국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로 반한 감정이 거세게 몰아쳤을 때에도 홍콩에서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특별히 나쁜 정서가 감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과 중국 본토와의 관계에 특별한 사정이 있기도 하지만, 홍콩인들은 아직도 한국 문화와 한국인에 대해 좋은 감정과 태도를 보여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전문 기자가 되고픈 학생 회장


 생기 넘치고 건강한 기운이 파릇한 이 청년들 가운데 낯이 익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 국제학교 학생 회장을 맡고 있는 황영서 양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가 KIS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70층이 넘어가는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종종 우리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영서 양을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요. 제가 영서 양에게 이 첫 공식 만남 이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그가 사뭇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학교 친구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고받았던 아주 소소한 대화 내용을 제가 기억하고 읊어 주었지요. 저도 왜 그 대화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짐작하자면 홍콩에서 소수인 우리말 대화였고, 풋풋한 여고생들의 사심 없고 돈독한 우정을 느끼게 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 지금 한 반에 몇 명 정도 되나요? " 제가 물었습니다.

" 중학교 과정에서는 20명 이상도 되었는데 지금 저희 학년 한 학급은 14명밖에 없어요. "

 영서 양이 말했습니다.

" 와, 열네 명이요? 정말 적네요. 그럼 친구들끼리 엄청 친하겠어요!"

" 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같이 지내니 친할 수밖에 없어요. "

" 근데 잘 맞는 친구들이면 정말 좋겠지만, 성격이 잘 안 맞는 친구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요?"

" 아마 한국에서라면 절대 말 붙이지 않았을지 모를 친구와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 같아요. 스무 명도 안 되는 친구들이 수 년동안 같은 공간에서 거의 모든 활동을 같이 하고 지내니까요. 게다가 요즘 한국에서는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이곳은 달라요. 상황이 서로 가까운 사이로 만들게 해요. ^^"


너무나 좁은 홍콩 한국 국제학교 사회


 홍콩에 한국 교민들이 2017년 기준으로 대략 15,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은 수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홍콩에서 교민들이 실제 다수 거주하는 지역은 한정적이고 그 가운데서 한국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둔 교민 가정은 특히 좁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누가 어디에 살고 있고, 누구네 부모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직위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서로에 대해 상당히 상세하게 알고 지내는 편이라고 합니다. 가까이 살고, 또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가까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반면에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도 서로 많이 달라서 비교되기 쉽고, 좁은 사회이다 보니 이런저런 뒷말들도 무성한 듯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홍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많지 않은 교민들이 한정된 지역에서 모여 살아가는 곳이라면 흔히 발견되는 풍경일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사회적 경제적 배경으로 인해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학생들이 상처 입고 아파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어디서 살고 싶을까


 이들이 홍콩에서의 고교 학창 시절을 끝내고 각자 홍콩이나 한국 혹은 다른 나라에서 대학 교육을 마친 후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지 궁금해졌습니다. 제 선입견으로는 홍콩에서 수년간 학업을 하고 살아봤기 때문에 나중에는 다른 나라로 가서 살고 싶지 않을까 했습니다. 네 명의 학생들은 공교롭게도 홍콩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굳이 꼭 홍콩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아니지만 만일 홍콩에서 자리를 잡고 일할 기회가 있다면 대학을 졸업한 후에 다시 홍콩으로 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물가로 악명 높은 홍콩이지만, 학생들은 그러한 악조건을 감당할 수 있는 메리트가 홍콩에 충분히 있는 걸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본인이 직접 생계를 책임져야 할 때가 온다면 홍콩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질 수도 있을까요?


 평소 만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과의 만남은 특별했습니다. 저는 식사를 시켜 놓고 제대로 먹을 겨를 없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게 되더군요. 누군가의 제안으로 대화 내용을 녹음까지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혼자서 녹취한 내용을 들어 보니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학생들과의 유쾌한 저녁 시간을 마련해 주신 박미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제 대학생이 되는 두 청년이 고국에 돌아가 의미 깊고 값진 배움의 시간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이끌 인재로 성장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직 한국 국제학교에서의 학창 생활이 남은 두 학생은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그 반짝이고 소중한 시간을 보다 더 진하게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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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일시:

2019년 2월 12일 화요일 저녁 7시


*인터뷰 대상 학생:

한국 국제학교 박미진 국어 선생님,

13일 졸업하는 이준/ 함주현 학생,

고3이 되는 학생회장 황영서 학생,

고2가 되는 임지현 학생


*홍콩 거주 기간:

이준 학생 약 7년 (외국 국제학교 다니다가 한국 국제학교로 전학)

함주현 학생 홍콩서 태어나 약 18년

황영서 학생 약 5년

임지현 학생 약 1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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