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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15. 2019

비즈니스 사고(事故)와 사람의 마음

 사고가 생겼다. 비즈니스 사고다. 몇 달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빛이 난다 싶었는데 바로 꽝하고 터졌다. 의사소통의 문제로 공급자와 수요가 사이에서 나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다. 따지고 들자면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사람을 잃을 것이다. 예전처럼 조직 안에 있었다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언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혼자다. 설령 내가 옳고 상대가 그름을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한 번의 위기를 모면하는 데 그친다.



[1간 전]


  " 내부적으로 상의해 보니 300 달러가 적정 가격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공급처의 가격이 너무 높아요. " 바이어 측 담당자가 말했다.


 공급처로부터 견적을 받아 수요가 측에 처음에 톤당 328달러를 제시했다. 그러자 시장 가격에 비해 너무 높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다시 미국에 있는 공급처와 상의해 가격을 315달로 낮춰 수요가 측에 전달했다. 구매 담당자는 그룹사 내부적으로 가격에 대해 상의한 후에 현재 적정 가격이 300달러라고 말한 것이다.


 " 300달러 Confirm. 다음 주부터 선적해서 10월까지 1천 톤 모두 마무리하시죠. " 공급처에서 수요가 측이 적정 가격이라 언급한 300달러를 수락했다. 몇 개월 동안 물밑 작업을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애쓴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기존 관행대로 수요가 측에 300달러로 재견적 양식을 갖추어 이메일을 보냈다. 수요가 측에서 그 이메일에 회신해서 확약을 하면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다. 문제는 마지막 재견적 메일을 보내고 얼마 뒤에 발생했다. 수요가 측에서 아무래도 일본 물건이 많이 싸서 미국산을 못 살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순간 사태가 심각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공급처에서는 이미 계약이 거의 된 것으로 생각할 터였기 때문이다. 급히 수요가 측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 와서 갑자기 논의가 중단되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다시 한번 검토해서 입장을 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한동안 회신이 없어 전화를 걸었으나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 아, 부장님, 안녕하셨습니까? 미국산 물건 관련해 급히 상의할 일이 있는데 김 대리께 연락이 되질 않아 부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방금까지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거의 가격 합의점을 찾았는데 갑자기 구매가 어렵다고 하셔서 부득이하게 직접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 수요가 측 담당자가 연락두절이라 그 상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 그러셨어요? 저는 보고받은 바가 없어서. 아... " 구매팀 부장은 이 갑작스러운 전화에 매우 난감해했다.

 

 부장을 통해 담당 대리와 통화가 되었다. 대리는 가격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했고, 이런 식으로 몰려서 계약하고 싶지 않다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김 대리의 목소리나 말투와 분위기로 보아 그쪽도 이 사태에 퍽 당황하고 골치 아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상황을 복기하며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서로 간에 무척 힘들고 험한 상황을 연출시킬 것임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 대리는 본인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한 후 내쪽에서 이야기를 이어갈 때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그가 통화의 맺음말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엔 대화 도중에 전화가 끊어졌다. 


 위기였다. 올초부터 다른 계약 건들을 함께 이행하며 좋은 협조 관계를 쌓았는데, 이번 일로 그 좋은 관계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에 수요가 측 구매 담당자 김 대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 대리님은 가격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으십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져 실수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발송.

<혹시 이번 건으로 손해를 감수하셔야 하나요?> 김 대리로부터 회신이 왔다.   

<아, 미국 공급처와 계약을 맺은 건 아닌데 그쪽 업계가 워낙 구두 Confim도 지켜야 하는 문화라 이미 공급처도 우리 가격을 바탕으로 로컬 소스에서 구매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손해 나는 부분만 배상하면 됩니다.> 김 대리에게 다시 회신을 보냈다.

<헉.. 이런. 그럼 제가 이번 건 오해가 있었다고 미국 공급처에 직접 이메일이라도 보내드리면 도움이 좀 될까요? 손해를 많이 입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김 대리는 내가 이 건으로 손해를 입는 게 정말 안타까운 듯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 주었다. 


 김 대리와 교신을 하는 중간중간 미국 공급처에도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문자를 보냈다. 공급처 대표는 우리의 적정 가격 회신에 근거해 이미 로컬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국 수요가 측과 서면 수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공급처가 이미 미국 내에서 물건을 구매해 버렸다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여기서도 구구절절이 따지는 것이 결코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수요가 측과 좀 더 안전하게 확인하지 못하고 가격을 드려서 이런 혼선을 빚었습니다. 향후 판매 계약이 체결되고 손해가 생기는 부분은 저희가 배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공급처 대표에게 문제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대표는 잘 처리 부탁한다는 회신을 보내왔고, 나는 명절이 끝난 이후에 한국을 비롯해 대만과 베트남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수요가들과 다시 판매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잠시 후 미국 공급처 대표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 사장님, 이번 건은 저희도 의사소통에 일부 책임이 있었으니 손해 나는 부분은 그냥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의외의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미 물건을 구매했으니 무를 수가 없다며, 당장 다음 주부터 물건을 실어내기 시작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명절이 시작하기 직전에 나의 비즈니스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더니 추락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고도를 올려 추락사고는 면했다. 아마도 이번 비즈니스 건으로 우리 회사는 손해를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이 비즈니스를 끌고 나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수업료가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잘못했다고 밀어붙이고 궁지에 몰면 그 어느 누구도 순순히 뺨을 맞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잘했든 못했든 함께 하는 일의 결과는 어느 한쪽의 결과물이 될 수 없다. 좀 더 멀리 보고 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내가 으르렁대면 상대도 그럴 것이고,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손을 내밀면 상대도 웬만하면 손을 내밀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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