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셨어요? 저는 보고받은 바가 없어서. 아... " 구매팀 부장은 이 갑작스러운 전화에 매우 난감해했다.
부장을 통해 담당 대리와 통화가 되었다. 대리는 가격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했고, 이런 식으로 몰려서 계약하고 싶지 않다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김 대리의 목소리나 말투와 분위기로 보아 그쪽도 이 사태에 퍽 당황하고 골치 아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상황을 복기하며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서로 간에 무척 힘들고 험한 상황을 연출시킬 것임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 대리는 본인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한 후 내쪽에서 이야기를 이어갈 때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그가 통화의 맺음말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엔 대화 도중에 전화가 끊어졌다.
위기였다. 올초부터 다른 계약 건들을 함께 이행하며 좋은 협조 관계를 쌓았는데, 이번 일로 그 좋은 관계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에 수요가 측 구매 담당자 김 대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 대리님은 가격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으십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져 실수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발송.
<혹시 이번 건으로 손해를 감수하셔야 하나요?> 김 대리로부터 회신이 왔다.
<아, 미국 공급처와 계약을 맺은 건 아닌데 그쪽 업계가 워낙 구두 Confim도 지켜야 하는 문화라 이미 공급처도 우리 가격을 바탕으로 로컬 소스에서 구매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손해 나는 부분만 배상하면 됩니다.> 김 대리에게 다시 회신을 보냈다.
<헉.. 이런. 그럼 제가 이번 건 오해가 있었다고 미국 공급처에 직접 이메일이라도 보내드리면 도움이 좀 될까요? 손해를 많이 입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김 대리는 내가 이 건으로 손해를 입는 게 정말 안타까운 듯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 주었다.
김 대리와 교신을 하는 중간중간 미국 공급처에도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문자를 보냈다. 공급처 대표는 우리의 적정 가격 회신에 근거해 이미 로컬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국 수요가 측과 서면 수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공급처가 이미 미국 내에서 물건을 구매해 버렸다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여기서도 구구절절이 따지는 것이 결코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수요가 측과 좀 더 안전하게 확인하지 못하고 가격을 드려서 이런 혼선을 빚었습니다. 향후 판매 계약이 체결되고 손해가 생기는 부분은 저희가 배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공급처 대표에게 문제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대표는 잘 처리 부탁한다는 회신을 보내왔고, 나는 명절이 끝난 이후에 한국을 비롯해 대만과 베트남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수요가들과 다시 판매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잠시 후 미국 공급처 대표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 사장님, 이번 건은 저희도 의사소통에 일부 책임이 있었으니 손해 나는 부분은 그냥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의외의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미 물건을 구매했으니 무를 수가 없다며, 당장 다음 주부터 물건을 실어내기 시작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명절이 시작하기 직전에 나의 비즈니스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더니 추락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고도를 올려 추락사고는 면했다. 아마도 이번 비즈니스 건으로 우리 회사는 손해를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이 비즈니스를 끌고 나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수업료가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잘못했다고 밀어붙이고 궁지에 몰면 그 어느 누구도 순순히 뺨을 맞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잘했든 못했든 함께 하는 일의 결과는 어느 한쪽의 결과물이 될 수 없다. 좀 더 멀리 보고 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내가 으르렁대면 상대도 그럴 것이고,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손을 내밀면 상대도 웬만하면 손을 내밀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