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좋아하세요?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남자들처럼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딱 그 물건을 파는 상점에 들러 시간을 오래 들이지 않고 결정을 하고 결제를 합니다. 연애할 때에 여자 친구가 쇼핑을 가자고 하면, 겉으로는 맞장구를 치며 같이 따라나서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지친 기색을 숨길 수 없더라고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옷이나 가방을 하나 사려고 하면 대개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마켓에서 물건을 살피다 보면 참 신기하고 멋진 물건이 많이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걸 그때마다 지르면 나중에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을 것 같아서 여간해서는 잘 지르지 않습니다.
이런 제가 유독 많이 구매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양말입니다. 여름에 신는 목이 짧은 양말, 아예 목이 없고 발만 감싸는 양말이 있죠. 종아리 정도 올라오는 일반적인 양말도 있지요. 종아리 위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도 있지만 저는 거의 신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쓰는 스포츠 양말이 있는데, 발바닥 부위가 두꺼운 양말이지요.
양말은 한 켤레에 2~3천 원 정도 합니다. 더 싸거나 더 비싼 양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양말 세 켤레 정도는 대개 진열대에서 만원 정도면 쉽게 살 수 있습니다. 부담이 없지요. 그래서 전 오프라인 매장을 들르게 되면 양말을 자주 사곤 합니다. 지금 당장 양말이 필요한 게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색상과 패턴 혹은 품질이 좋아 보이는 양말을 만나면 거의 미련 없이 삽니다. 호기롭게 말이죠.
지난주에 아는 동생 하나가 양말을 잔뜩 선물해 주었습니다. 연말 송년 모임 격으로 남자 넷이 중국 요릿집에서 만나던 날 그 동생은 큰 종이 박스에 목도리와 탁상용 선풍기, 겨울 장갑을 포함해서 수십 켤레의 양말을 담아 제 차 트렁크에 실어 주었습니다. 처음엔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 큰 종이 박스 안에 그렇게 많은 선물들이 들어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양말과 장갑 등의 상표를 보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동생은 몇 년 동안 연남동에서 오프라인 편집샵을 운영했는데, 온라인 사이트도 함께 운영했습니다. 한때는 매출이 상승세를 그리고 성공가도를 달릴 것만 같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렇게 잘 되었으면 좋으련만, 동생은 얼마 전 편집샵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물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적자가 지속되었고, 적자를 견딜 만한 자금도, 그 시기를 이겨낼 미래의 청사진도 딱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양말과 장갑은 동생이 직접 디자인하고 상표 등록을 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팔던 물건이었습니다.
양말 말고 그런 물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속옷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팬티입니다. 이년 전쯤 처음으로 미국에 놀러 가서 아웃렛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면 몇 배로 비쌀 물건들이 값싸게 진열되어 있었고 평생 거의 처음으로 많은 물건을 구매했습니다. 그 가운데 면으로 된 팬티가 있었는데, 좋아하는 브랜드의 팬티를 색상별로 열댓 벌 이상 산 것 같습니다. 팬티와 더불어 면티도 열댓 장 이상 샀고, 지금까지 아주 만족스럽게 잘 입고 있습니다.
그때 그 브랜드의 팬티와 면티의 좋은 품질과 착한 가격에 반해 언젠가 다시 미국 여행을 가게 되면 다시 잔뜩 사 가지고 와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매장을 가끔 가 보니 값싸고 이쁜 팬티들이 또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한 번 갈 때마다 나름 매의 눈을 가지고 두세 벌 정도 사들였더니 옷장에 팬티가 엄청 쌓였습니다. 옷장에 쌓여 있는 많은 양말과 팬티를 볼 때, 마음이 흐뭇하고 여유가 느껴집니다. 사실 일상생활을 할 때 이 속옷과 양말의 역할은 퍽,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침에 좋은 팬티와 좋은 양말을 착용할 수 있으면, 그 하루는 상대적으로 더 산뜻하고 기분 좋게 흘러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저더러 팬티와 양말광이라고 놀리곤 합니다. 그 말이 맞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딱히 정색하며 부정하지 않습니다. 팬티와 양말이 풍족한 것은 저에게 있어 축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팬티와 양말 쇼핑만큼은 꾸준히 이어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