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다 저수지

by 안드레아

2019년 11월 말


이번 출장길엔 저녁 시간에 누굴 만날 수 없었다. 매일 아홉 시가 넘어서야 선적과 후속 작업이 끝났기 때문에 식사 약속을 잡기 어려워서다. 월요일 늦은 비행기로 키타큐슈시 모지로 건너가 목요일 저녁 늦게까지 스크랩 야드 현장과 선적항에 붙박이로 머물렀다. 다행히 선적이 목요일에 마무리되어 마지막 날 금요일에 짬이 생겼다. 시간이 나면 만나기로 미리 통화를 해 두었던 지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으로 향했다. 다시 전화를 해서 이제 가게 되었다 말할까 하다 그냥 지인 부부께 문자로 간단히 기별만 했다.

마치 그곳에 아직 살면서 들른다는 듯 가게 옆 공간에 익숙하게 주차를 하고 식당 문으로 들어섰다. 겨우 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식당에는 하나의 테이블에만 세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부침개를 부치고 있던 주인 아내는 다소 놀라면서도 반가운 표시를 내어 갑작스러운 방문에 답해 주었다.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으며 그간 쌓인 수다를 시작했다. 철판 위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덜어 동그랗게 놓는가 하면, 이어지는 주문을 듣고 잽싸게 메모를 하고, 포장 음식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커피를 권하기도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입만 놀리고 있는데 안주인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와 손님들을 상대로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이년 전에 이 동네를 떠난 뒤 출장으로 혹은 개인적인 여행으로 다시 키타큐슈를 방문할 때 종종 이 부부를 만났고, 남편이 사무실로 쓰는 공간과 아내가 식당으로 운영하는 곳이 붙어 있는 이곳에 들렀다. 원래는 식당이 없고 전체 공간이 사무실로 쓰이고 있었는데 아내가 전집을 열면서 공간이 나뉘었다. 한때 살던 도시를 찾을 적에 늘 누군가를 같은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언제 가더라도 늘 한결같이 환대해 주는 벗이 있다는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들을 볼 때마다 점점 더 진하게 느끼게 된다.


일본에서는 전이나 부침개를 지지미라고 부른다. 부부의 지지미집은 보통 테이크아웃 주문이 많은 편인데 달랑 두 개 있는 테이블에도 종종 손님들이 와서 이 특별한 한국 음식을 즐기고 있는 걸 많이 봤다. 카운터 옆으로 진열대가 놓여있는데 그 위로는 한국에서 온 음료수나 과자 혹은 특산품들이 가지런히 앉아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 때마다 가짓수가 느는 것이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일 게다. 가끔 찾는 객인 내가 왠지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안주인은 나를 위해 모둠 부침개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전들을 만들어 주었다. 홀에 손님들이 더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자리를 비켜 주방 쪽으로 아예 넘어갔다. 거기에 카운터 자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앉아 안주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김치전, 해물전, 감자전 등을 먹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반대쪽 홀의 두 테이블을 다 바라볼 수 있었는데 손님들도 역시 나를 볼 수 있었고 서로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나와 안주인은 우리말로 이야기하면서 안주인은 손님들과 일본어로 말을 주고받았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중년 여성 손님들이, 식당 주인과 한국말로 계속해서 수다를 떨고 있는 이 남자가 도대체 누굴까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하나가 테이블도 아니고 주방 쪽 카운터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주인이 낌새를 채고 내 소개를 해 주었다. 전에 같이 성당을 다니던 동갑내기 친구라고 말이다. 손님들은 아, 그런 거였냐고, 남편이 아닐까도 생각했다면서 호기심을 풀었다. 얼떨결에 나도 그들과 인사를 나눴고 대화의 각이 삼각구도로 바뀌었다.

모둠 부침개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일만큼 맛있었다. 그런데 양이 양이 상당했다. 오랜만에 찾은 벗에게 안주인께서 인심 좋게 넉넉한 음식을 대접해 준 덕분이지만 평소 내 식사량을 두 배 이상 초과하는 양이었다. 밥까지 같이 먹었으니 그날의 식사는 탄수화물 창고대개방 수준이었달까. 끝까지 다 먹어치우고야 말았다. 위가 한치의 빈 공간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꽉꽉 채워졌던 기억이다. 맛이 없었으면 남겼거나, 먹더라도 고역이었을 텐데 그냥 아주 흡족하게 다 먹었다.


홀에 손님들이 꽉 차고 포장 주문 손님들까지 대기하게 되자 안주인은 몹시 분주해졌다. 땅땅해진 배를 일으켜 세운 나는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겨 설거지를 시작했다. 부침개를 하느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안주인은 잠시 뒤를 돌아본 틈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가 만류의 표현을 하려는 찰나에 " 괜찮아요. 빨리 끝낼게요. 요리는 못하는데 설거지는 잘해요!" 하면서 미션을 속행했다.

신나게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 감색 유니폼을 입은 어린 아가씨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큐슈의 전형적인 미인들처럼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안주인은 마치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대하는 태도로 그를 환대했다. 내게 소개해 주기를 이 집 큰 딸의 중학교 시절 단짝 친구라 했다. 큰 딸은 지금 동경의 한 대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다. 딸의 친구는 대단히 예의 바른 태도로 친구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위로 오빠들이 둘인가 있다는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아빠가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센터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안주인은 딸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간중간 나에게 배경지식을 팁으로 공유해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오빠가 동경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빠가 정비센터를 운영하는 제법 유복한 집에서 자란 자식들 중 아들 하나는 일본 최고 명문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막내인 딸은 고등학교만 마치고 아버지 회사에서 유니폼을 입고 경비 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식당 안주인의 큰 딸과 정비센터 막내딸은 중학교에 다닐 때 절친 사이였는데 고등학교가 달라지면서 조금 소원해진 듯했다. 그러나 친구가 동경으로 유학을 간 사이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에 홀로 와서 음식을 시켜 먹으며 마치 딸처럼 친구 어머니와 장시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아직 둘의 우정은 꽤 두텁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주인이 일하다 말고 손전화기를 내게 건넸다. 남편이었다. 그날 나의 방문을 알고는 있었으나 한국 물건을 받으러 시모노세키에 가 있다고 했다. 몇 시에 떠나는지 물었고 나는 곧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촉박한 줄 알았다면 시모노세키에는 다른 날 갈 걸 그랬다며 아쉬운 마음을 표해 주었다.


설거지는 내가 쓴 그릇들에서 끝나지 않고 손님들이 먹고 자리를 뜬 뒤 나오는 식기들로 이어졌다. 안주인은 손님한테 설거지만 시키다 보낸다며 미안해했지만, 마침 일손이 되어 거들어 주는 이가 있음에 적잖이 안도하는 듯 보였다.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 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런 조그맣고 아담한 데서 하는 설거지는 여유와 묘한 즐거움까지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떠나기 전에 톤다 저수지를 한 번 거닐고 싶어 비행기 시간을 체크한 뒤 조금 일찍 작별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나만을 위한 공간이라 해도 그리 과장이 아니라 할 만큼 한적한 저수지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공공장소를 참 좋아하지만 갈 때마다, 이걸 유지하기 위해 비용이 참 많이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뿐이었다. 난 그냥 이 널찍하고 가슴 탁 트이는 멋진 톤다 저수지를 이 시간 충분히 즐기면 되는 거였다.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은 주기적으로 먹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약과도 같고, 잊을만하면 선명하게 다시 떠 오르는 그리운 이의 얼굴과도 같다. 키타큐슈의 많은 곳들이 내게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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