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 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Apr 19. 2020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七月与安生, Soulmate 2017

 또 때늦은 영화를 한 편 우연히 봤다. 일본어 공부 겸 한답시고 일본 영화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영화는 중국 영화였다. 보통 나의 검색 환경에서는 우리나라 영화나 미국 혹은 일본 영화가 자주 걸리게 되는데, 간혹 이렇게 중국이나 대만 영화가 눈에 들어올 때면 느낌이 온다. 이 영화 괜찮을 거라고.


 오늘은 비가 나린 탓인지 센티해져서 종잡을 수 없는 행선지로 이어지는 하루였다. 처음엔 풍경 좋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내비에 목적지 검색란을 켜니 며칠 전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던 '서촌 한옥마을'이 떴다. 일단 거길 목적지로 해서 차를 몰았는데, 얼마 가지 못해서 좀 더 가까운 곳이 좋겠다는 변심이 들었다. 갑자기 '뚝섬'이 생각나 방향을 틀었다. 비 오는 회색빛 하늘 배경의 한강 풍경이 어떨까 싶은 기대가 조금 있었던 듯하다.  


뚝섬 한강유원지 산책길

 만일 뚝섬 한강유원지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었다면 그곳에 들러 한동안 책을 읽으며 머물렀을 것이다. 열심히 찾아본 건 아니지만, 대충 훑어보니 그럴 만한 장소가 없어 보였다. 잠시 강변에서 한강 풍경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10분쯤 우산을 받쳐 들고 걷다가 주차장으로 돌아섰다. 


 길눈이 밝은 편이 아니라 늘 내비의 도움을 받아 운전을 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딱히 목적지를 정할 필요가 없어 그저 발길 닿는 곳으로 차를 몰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유원지를 벗어나자 자양사거리 표지판이 보였고, 그곳에 다다르자 아차산 방향의 표지판이 보였고, 아차산 생태공원을 차로 돌아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어디로 향할까 생각하다 마침 안암동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신설동을 지나 안암 사거리를 거쳐 고대 정문을 지났다. 거기쯤 가니 이제 20여 년 전 하숙을 하던 법대 후문 쪽 종암동 유정식당 생각이 떠올랐다. 200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 번도 찾아보지 못했던 그곳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하숙집과 식당을 같이 운영하던 여자 사장님의 근황도 궁금해졌다. 근처에 다다르자 복학생 신분으로 하숙하던 건물이 쉽게 발견됐다. 그 맞은편에 '유정'이라는 간판이 보였는데, 아마도 예전 식당 자리에서 그곳으로 옮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골목길 빈자리에 주차한 후,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으로 조금 이르긴 하지만 새로운 '유정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저녁으론 좀 이른 시각이라 종업원들이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두리번거리며 혹시 사장님이 계시지 않을까 눈으로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홀 담당하시는 분이 안쪽 테이블을 권했지만, 혹시 사장님이 돌아오시면 눈에 잘 띄도록 카운터 옆자리에 앉기로 했다. 메뉴판에서 가장 만만한 갈비탕 하나를 주문했다. 종업원 한 분께 사장님이 오늘 안 계시는지 물었다. 여인은 사장님이 출타 중이라 했고, 나는 사장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는지 물어 명함을 받았다. 


 " 사장님, 안녕하셨어요?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저 98년에서 2000년에 2층에서 하숙하던 사회학과 93학번 아무개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


 " 아이구, 그렇구나. 내가 지금 약속이 있어 밖에 있는데 있다 식당으로 갈게. 얼굴 보자. "


 갈비탕을 혼자 맛나게 먹고 있는 동안 이십여 년 전 기억 속의 사장님이 눈앞에 나타나셨다. 나는 사장님께 한 번 안아봐야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포옹을 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찰나와도 같이 흐른 뒤였다. 우리는 서로의 오랜 공백을 끊이지 않는 수다로 채워나갔다.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들은 몇인지.. 사장님은 고대에서 1986년부터 하숙과 식당 사업을 했다고 한다. 장장 35년이다. 그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버텨내신 거다. 이제 막 독립해서 자그마한 내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35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 내신 사장님이 거인으로 느껴졌다. 자그마치 강산이 세 번하고도 반이 변했을 시간이다.  


 사장님은 맥주 한 잔 하겠냐고 권하셨지만, 운전을 해야 했던 나는 다음번 하숙 룸메이트와 다시 찾을 날을 기약하며 사양했다. 참외를 깎아 주며 반가운 티를 감추지 않으시던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근처에서 운영하는 다른 식당으로 안내하셨고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장님과 헤어진 후 하숙하던 법대 후문 동네 한 바퀴를 차로 천천히 돌며 어둑해진 대학가의 풍경을 뒤로한 채 천천히 떠났다. 다시 오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게 또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겠지. 


 올림픽대로를 타고 막히지 않는 일요일 저녁길을 달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모교와 하숙집을 아주 오랜만에 찾은 감흥이 미열처럼 퍼지는 가운데 책상머리에 앉았다. 카페였다면 책을 들었겠지만, 조용한 방에 들어서자 무언가 감각적인 게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노트북을 열었고, 그런 기분에 젖은 채 영화를 검색하다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웃기지만 이렇게 영화 제목을 달고 영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면 스포일러는 포함되지 않으니 그런 면에서는 꽤 효과적이지 않나. 오늘 하루 나의 이야기로 잔뜩 채워진 글이지만, 이런 글도 이해해 주리라 일방적으로 바라며 영화를 소개한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둘 그리고, 또는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