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볕 아래 눈부신 꽃잎이 날릴 때 혼자여도, 둘이어도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걸...
3년 전 어느 봄날 오후, 산책길에 썼던 시라고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며칠 전 지인이 그러더군요. 가끔 '혼자였으면 어쩔 뻔했냐'며 생각할 때마다 옆지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
저는 덤덤하게 '다행이라고... 우리 나이에 여전히 그렇게 옆 사람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고, 다행 감을 자주 느끼게 되는 일은 흔치 않은데... 참 좋아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말들이 이물감의 통증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저 나와는 좀 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요즘... 자주 생각을 합니다.
제 자만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애써서 지켜나가고 있는 이 인연의 고리들이 나의 노력의 에너지가 바닥이 났을 때는, 그때도 과연 나의 지인들과의 관계들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들도 나처럼 노력하고, 다가와 줄까?
아마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계에서 서로 공평하게 궁금해하고,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오래 지속될 관계는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잦은 회의감이 듭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모두 혼자가 됨이 마땅한 것인가 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쓸쓸합니다.
특별한 누군가가 곁에 있든, 그렇지 않든, 다수의 지인들과 오래오래 관계를 이어가든, 혼자가 되든, 어느 정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지구력 있게 노력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결국은 혼자 남게 되는 시간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요즘처럼 집과 직장을 오가는 일 이외에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버리는 일상이 편하게 다가옵니다.
존재의 유한함,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매우 당연한 사실인데도 서운하고, 쓸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볕이 따스하고, 공기가 많이 따뜻해져서 어제는 얇은 외투를 입고 잠시 외출을 했습니다. 이제 곧 누런 마른풀을 이불 삼아 포근히 싹을 틔울 쑥이랑, 냉이가 생각이 나더군요.
겨우내 언 땅이 서서히 녹아 포슬포슬하게 쪄낸 감자 같은 땅을 밟으며 나물을 캐러 가고 싶어 지더군요. 사람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면 평소 아무것도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뻔뻔하고 비겁하게 자연으로 피하고 싶어 집니다.
늘 그랬습니다. 소란스러운 인간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나 시선도 머물러지지가 않은 순간이 오면 까만 비닐봉지와 작은 커터칼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타고 인근 봄이 오고 있는 논두렁을 찾았습니다.
완연한 봄에 아직 이르지 못해 조금은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양말을 벗어 운동화 속에 넣어두고 논두렁을 천천히 걸었더랬습니다.
한계에 달한 남자가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을 찾아 세상에서 도망치듯 나 또한 그러한 심정으로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절박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땅을 밟고, 쪼그리고 앉아 땅의 냄새를 급하게 들이마시고 휘적휘적 손톱이 시꺼메지도록 흙을 만집니다.
그리고 비탈을 바람막이 삼아 봄볕을 한껏 쪼이다 발바닥의 흙을 털어내고 신발을 신습니다. 깔딱대던 호흡이 부드러워지고 이제는 천천히 호흡해도 되는 여유가 생깁니다. 돈을 내지도 않고 밥을 훔쳐먹은 도둑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어 커터칼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손톱으로 똑똑 쑥을 땁니다.
집에 돌아와 시꺼먼 흙과 쑥물의 오묘한 색으로 물든 손톱을 따뜻한 물에 불려 천천히 씻어 냅니다.
흙을 밟고, 바람을 맞으며, 풀의 냄새를 맡으며 언젠가는 혼자 돌아갈 나의 고향을 잠시나마 그렇게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