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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28. 2016

나이주의에 대한 생각

 경어가 발달하지 않은 언어로 친구 사귀기 ^^

키타큐슈 하나노지 뒷편 호수

 수준은 높지 않지만 우리말을 포함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안다. 영어는 평생 배웠지만 회화가 많이 늘었던 것은 카투사로 복무했던 기간이다. 중국어는 종합상사라 불리는 무역 회사에서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된 4년 동안 배웠다. 일어는 현재 일본에서 2년 반 정도 일하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 가운데 일상 회화에서 경어가 많이 발달한 언어는 한국어와 일어이다. 나이차가 나는 관계 혹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의 사람들 간에 쓰이는 존칭법은 그것이 발달한 근본적 이유와 타당성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확실히 높임말이 발달한 언어를 쓰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곳과 비교할 때 인간관계의 깊이나 폭에 제한이 생기는 것 같다. 특히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제한이 더 심해진다. 


  한국 사회는 한 살만 차이가 나도 바로 손위와 아래가 갈린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가볍게 생각할 때 경어법의 발달과 군대 문화의 영향이 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처음 알게 되는 사람들의 나이를 알고 싶어 한다. 사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의 나이를 알아야 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야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대할지 기본적인 전략이 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같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좀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나이차에 따른 신경을 안 써도 되고 편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살아온 경험과 느낌에 따르면 그렇다. 


  카투사로 군복무를 할 때 그 차이는 매일 벌어지는 일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곤 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미군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의 계급이 프라이빗(이병)이든 써전(병장)이든 대위든 심지어 대령이나 스타(장성)라 할지라도 계급 차이에 따른 군 예절을 지키지만 말은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반면 카투사들 사이에서는 단 6개월만 차이가 나는 선임에게도 깍듯한 다까체(~했습니다! ~합니까?)를 써야 하고 상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말을 할 때 상대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꽤나 넓은 범위의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나 중국어로의 의사소통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더 친숙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곤 했다. 


  해외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또는 여행을 갔을 때 혹은 우리나라에 놀러 온 외국인들을 어딘가에서 만나는 경우 종종 나는 먼저 말을 거는 편이다. 혼자 신문이나 책을 보고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생김새가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과의 만남은 대부분 설레고 들뜬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우리나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점들이 막 떠오르는 것이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면 대부분 반색을 하며 환한 미소로 응대해주기 마련이다. 

 

  이럴 때 존칭법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영어 혹은 중국어로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 상대의 나이 차이에 관계없이 나는 자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쉽게 나눌 수 있음을 느낀다. 상대방도 낯선 이방인인 내가 말을 먼저 걸어주는 데 대해 대부분 싫은 기색이 없고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하는 표정으로 서로 말동무가 되어 이번 여행이랄지 서로의 나라와 문화 등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회사 근처 와카마츠의 한 마을을 산책하며

 <*> 테니스장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아키와 프랑스 친구 빈센트

   

  아키는 나보다 6살 위인 일본 남성이다. 2년 반 전 일본에 처음 와서 일어가 안되던 시절 평일 밤에 테니스장을 찾았던 어느 날 만났다. 일본 사람들도 대개 영어를 잘 못하는데 이 친구는 영어가 유창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미국 의학 연구소에서 8년인가 일하다가 왔으며 현재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엘리트다. 

 

 워낙 사람들 사귀기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기 좋아하던 나는 그때까지 말이 안 통해서 꽤나 답답한 상태였는데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급격히 친해졌다. 게다가 아키도 나처럼 테니스광이라 우리는 단시간 안에 의기투합하여 테니스 복식 시합에도 여러 번 같이 출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재미있는 건 이제 일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게 된 지금도 아키와는 영어로 말하게 된다는 점이다. 테니스장에는 다른 일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키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 같이 함께 있는 경우 자연스레 일어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유독 그와는 영어가 편하고 좋다. 그 이유는 영어로 말할 때는 마치 동갑 친구처럼 말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일어로 하게 되면 경어를 써야 하니 어색한 것이다. 마치 친구한테 갑자기 높임말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프랑스 사람 빈센트도 다른 테니스 클럽에서 알게 되었는데 역시 나보다 8살 정도 손위다. 빈센트를 만나기 전까지 이제 이 동네에서 테니스로는 나한테 적수가 거의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었는데 빈센트를 만나고 아, 이제야 내가 호적수를 만났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7살 때부터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는 그는 아마추어들이 잘 못하는 원핸드 백스트로크를 기가 막히게 잘 친다. 


   빈센트도 영어를 곧잘 하는데 확실히 불어 악센트가 많이 들어가며 동어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로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우리는 8살 정도의 생물학적 나이 차이는 아무런 상관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는 일본 여성과 결혼해서 프랑스 와인을 수입 판매하고 있는데 이력이 정말 예상 밖이었다. 테니스광인 와인 수입 판매자의 전직은 바로 수학과 교수. 만나면 테니스치기 바빠 진득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앞으로 과거 이 친구가 어떻게 살다가 일본의 이곳 작은 도시까지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빈센트 인생 스토리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산동네의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 Joyful 레스토랑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 제시카


  작년 겨울에 회사 근처의 중저가 패밀리 레스토랑인 조이풀에 갔다가 옆자리에 앉은 서양 여자를 발견했다. 그곳은 키타큐슈에서도 좀 외진 곳이고 외국인을 찾기가 거의 힘든 시골 분위기가 나는 곳이라 특이하게 생각되었다. 그 여자는 한쪽에 음식을 시켜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뭔가를 계속 들여다보며 펜으로 체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학생들의 답안을 검토하고 수정해주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몇 주 뒤에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서양 여자를 볼 수 있었는데 그 날도 역시 혼자 와서 계속 노트를 들여다보며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파스타를 먹으면서 말이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길래 여기 시골까지 온 걸까. 말을 시켜볼까 말까. 입이 근질근질했다. 근데 좀체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워 말을 걸지 못했다. 


  다시 그녀를 본 것은 바로 일주일 뒤쯤이었다. 나는 조이펄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 여자는 화요일에만 그곳에 출현한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세 번이나 본 걸 핑계삼기로 했다. 그녀가 나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뭘 먹고 있을 때 말을 걸기는 어려우니 노트를 보고 있을 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나 " 저기요. 여기 자주 오시나봐요. 지난번에도 몇 번 오신 걸 봤어요. ^^"


 그녀는 활짝 웃으며 그랬냐고 맞다고 자기 여기서 유치원생들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트기 시작한 나는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그녀가 영국에서 왔으며 나이는 스무다섯 살, 이름은 제시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제시카는 어떤 영어 선생님 파견 회사에 소속되어 이 동네 유치원까지 도합 5~6군데 유치원에서 돌아다니며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꽤 편하게 대우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시카는 꽤나 힘들게 그것도 그리 좋은 보수가 아닌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제시카는 영국인답게 똑똑 떨어지는 영국식 영어 발음이 아주 듣기 좋았다. 제시카를 만나고 온 날 혼자서 그 발음을 흉내 내 보았다. R 발음이 축약되고 T 발음이 살아나는 그 묘한 발음. 내 기억으로 영국 배우 휴 그랜트가 노팅힐에서 들려주었던 그 뭔가 클래식하고 있어 보이는 신기한 영국식 영어 발음. 해리포터에서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가 들려주었던 그 경쾌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제시카와 나의 나이차는 무려 18살. 만일 우리나라였다면 이런 식의 만남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년의 남성이 이십 대의 젊은 여성에게 식당에서 만나 말을 거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설령 말을 트기 시작했더라도 친구가 되기는 참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제시카와 내가 많은 만남을 가지며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주 같은 요일에 같은 식당을 찾는 그녀와 런치 동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로서 일본 생활을 소재로 하여 즐거운 생각 나누기가 가능해졌다.

  

와카마츠의 한 어촌 마을의 석양이 지고 있다

  

  나이대가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는 잘 들어볼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그들과 친구가 됨으로 인해 접할 수 있다.


  우리 이제 나이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나이를 완전히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그 틀을 벗어나 본다면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는 더 소중하고 흥미진진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요새 자주 가기 시작한 라면/소바/교자/볶음밥 집이 있다. 주인장 아저씨가 알고 보니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내가 주로 가는 시간은 퇴근하고 테니스를 가기 직전인 오후 6시에서 6시 30분 사이.  음식이 하나같이 맛있어 음식에 대해 칭송하기 시작하며 시작된 사장님과의 대화는 최근 내 일상에서 은근 쏠쏠한 즐거움이다. 물론 일어로 하기 때문에 경어를 써야 하지만, 나는 외국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표현만 자유롭게 하고 혹시 잘못이 있다면 이해해 주실 거다.


  내일 저녁에 퇴근하면 안 먹어본 다른 메뉴를 시켜놓고 아저씨랑 또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어 봐야지.


해지는 하늘빛이 너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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