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오 복음 11장 28~30절>
지금 사는 게 행복하다면 참 좋겠지만, 혹시 마음이 괴롭고 불안하십니까?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요즘 감사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만, 사실 얼마 전까지 많이 힘들었습니다. 2016년부터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괴로운 순간들을 지나쳐 왔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인간적인 갈등을 겪게 되면서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는데 일이 잘못되어 제법 긴 시간 실직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구사일생으로 전혀 다른 분야와 새로운 나라에서 직장을 얻었지만 그 기쁨과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밤에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회사에 나가는 게 정말 너무 힘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전에 성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평소에 조금씩 했었지만, 성서를 잘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너무 견디기 힘들어 찾아낸 방법이 자기 전에 성서를 펼쳐 읽는 것이었습니다.
집회서와 지혜서 같은 구약도 읽고, 신약성서를 펼쳐 눈길 닿는 대로 읽기도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성서가 재미났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잘 안 들어오던 구절이 조금씩 와 닿는 걸 느꼈습니다.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왠지 위로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잘 잘 수 있었습니다. 회사일이 여전히 힘들고, 저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게 느껴지고 답답했지만, 적어도 집에서 잠은 잘 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집에 와서는 성서와 기도로 무장하게 되니까, 집에서까지 회사일 혹은 불안한 미래를 계속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마음이 좀 평화로워지니까, 조금 느긋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문제도 많고 일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었지만, 그걸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힘들지만 제 미래는 어떻게든 길을 찾아 나갈 거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게 생겼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자기 전에 읽는데 위의 구절이 나왔습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소나 말의 목 위에 채우는 게 멍에 아닙니까? 내 목에 멍에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기의 멍에가 편하고 그 짐이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이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았던 성서 구절인데 이제야 그 의미가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죠.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주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어렵고 힘든 때에 미사를 빠지고, 기도를 안 하고, 주님 생각을 안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힘들고 기댈 데가 없어서, 오히려 매달렸습니다. 좀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성서를 읽을 때는 그렇게 애걸하지는 않고, 그냥 편안하게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위가 그렇게 저에게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저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던 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마음고생을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가요? 그분의 멍에를 매고, 그분의 짐을 기꺼이 지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분의 멍에를 매면 삶의 멍에가 벗겨지고, 그분의 짐을 지면 그렇게 무겁고 짓누르던 삶의 짐이 어느새 줄어들거나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