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삶에서 죽을병에 걸려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러한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을 감히 공감하기 어렵다. 그저 간접 경험을 통해 그런 느낌을 가늠해 볼 뿐인 것이다. 폐암 말기, 백혈병으로 투병했던 지인들의 모습을 떠 올린다. 가끔 만일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느꼈을지 상상해보지만, 역시 한계가 깊다. 그리고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의연하게 이겨낼 자신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성격 중 하나는 긍정적인 마음과 태도예요. 허리가 아파서 혼자서는 몸을 뒤집을 수조차 없던 때가 있었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피를 받아 수혈하며 죽음의 그늘 속에 갇힌 때가 있었어요. 그러한 고통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어쩌다 내가 선택된 거죠. 그런 절망적인 순간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웃는 것. 적어도 난 내 의지로 웃을 수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에도 선택할 수 있는 게 있고, 그건 내 의지로 가능하다는 의미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언제 그런 죽음의 늪을 건너왔을까 싶을 정도로 밝고 건강한 모습인 그가 나지막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을 마주할 또 하나의 무기를 얻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변한 일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겼다.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는 그런 어둠 속에서도 그냥 쓰러져 있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 빛이 새어드는 출구로 향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국가가 또 사회가 그리고 공동체가 막아 주지 못하는 때가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닿지 않을 때, 적어도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병마와 싸우며 온몸이 으스러지고 아픈 와중에도 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지켜냈던 그는 지금 제2의 인생을 비교적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스스로도 다시 이렇게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크지 않았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수없이 넘겼다. 인생의 위기는 이러한 질병의 형태 말고도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고꾸라지게 만들곤 한다. 나 역시 30대와 40대를 지나며 꺾이고 무너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는데, 앞으로 또 언제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만일 다시 인생의 시험에 직면하게 될 때 그의 말을 꼭 떠 올리며 나 자신을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고 힘들다는 거 안다. 그러나 그냥 주저앉아 있지 마라. 누가 나 자신만큼 나를 아껴줄 수 있겠는가. 시험이 닥칠 때마다 패배감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지 마라. 가장 불쌍한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웃음 지었던 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