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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23. 2022

밤이 되면 나약해지는 건

 얼마 전 테니스 레슨 시간에 생긴 일이다. 수강생이 친 볼이 카트를 맞고 튀어 나의 왼쪽 눈을 강타했다. 순간 왼쪽 눈앞이 캄캄해졌고 충격으로 인해 눈이 얼얼했다.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눈을 떠 보니 앞이 보이긴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눈앞에 무언가 실타래 같은 것이 떠 다닌 게 감지됐다. 일단 레슨을 마저 진행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니 생각하고 일정대로 수업을 마쳤다.


 집에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그 부유 물질을 더 선명하게 나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이런 증상을 '비문증'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겨나지만, 나의 경우는 일시적인 충격으로 인해 눈의 유리체에 붙어 있던 세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조각들이 실타래처럼 떠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바로 안과를 갔다면 더 좋았을까. 바쁜 일정을 핑계로 병원 가는 일을 미뤘다. 불편함이 있었지만, 치명적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런 증상이 전혀 완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배경이 하얀색으로 되어 있거나, 빛이 밝은 곳에 있을 때 눈앞의 검은색 물질들은 더 선명하게 보였고, 눈알을 움직일 때마다 그 벌레 같기도 하고 실타래 같기도 한 것들이 따라 움직여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 사고로 인해 생긴 비문증 외에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눈을 깜빡일 때마다 섬광과도 같은 것이 번쩍인다는 걸 알았다. 운전할 때 처음으로 그 증상을 알아챘는데, 눈의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뭔가 주변에서 강한 빛이 깜빡이며 지나간 것이라 여겼다. 나중에 이러한 증상이 잘못하면 망막박리 등으로 이어져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다행히 이건 일주일 이상 시간이 흐른 뒤 증상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몸에 하나둘 이상이 생기면서 불안감이 꼬리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눈을 뜨고 지내는 내내 성가시게 따라붙는 실타래 다섯 가닥이 홀로 있는 방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괜찮았으나, 혼자 있는 시간에 끊임없이 비문증에 시달리게 되자 숨이 턱 막히고, 어지럼증과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러다 평생 이러한 불편에 시달리게 되는 건 아닐까, 비문증과 섬광 현상이 악화되어 시력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답답하고 숨이 막힐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 상상은 나쁜 상상으로 증폭되었다.


 밤이 두려웠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빛이 있는 곳에서 성가셨던 실타래들이 보이지 않게 되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불을 끄자, 사위는 암흑으로 덮였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은 마치 내가 시력을 잃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생각하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시간도 그 순간에는 숨막힘으로 돌아왔다.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그 암흑에 그대로 있었다가는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두려움도 없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 강한 마음을 유지시켜 주는 게 확실하다. 건강한 축에 속하는 그룹 가운데서도 상태가 좋은 편이라 여겼던 나에게도 사소한 불편함과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음이 약해진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친척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들이닥친 병마 혹은 죽음의 소식들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보다 서른 해 이상을 더 사신 노부모의 마음을 떠 올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말할 것도 없이 불편한 곳이든, 아픈 곳이든 중년의 아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못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식을 대하는 얼굴에서, 자식과 전화 통화를 하는 목소리에서 노부모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되어 자리에 누웠을 때, 당신들도 나약해지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을까..


 부디 건강함 몸을 먼저...  아프지 않기를...  이 추운 날에도 당신과 나, 건강하게 하루를 잘 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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