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성당에서 바치는 미사와 달리 소규모로 진행되는 작은 미사가 있다. 주로 성당의 소모임에서 가끔 경험할 수 있었다. 미사 중간에 신자들은 "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며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이 있는데, 일반적인 주일미사에서는 손을 합장한 채 목례하며 말을 건넨다. 작은 미사에서 신부님의 권고로 이 시간의 인사를 목례가 아닌 포옹으로 대체할 때가 있다.
중고등부 신앙캠프라 할 수 있는 코이노니아에서도 그런 방식이 쓰일 때가 많았고, 대학생 시절 주일학교 교사회를 하면서 교사들끼리 가는 피정에서도 포옹으로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이던 어느 여름날 처음으로 가족 아닌 누군가와 두 팔을 벌려 서로를 안아 주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이제 그 의식이 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마치 매우 혼잡한 외국의 입국심사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처럼 길고 구부러진 줄을 만들었다. 신부님이 줄의 제일 머리에 서 계셨다. 선두의 신부님이 줄의 반대편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맨 끝에 서 있는 사람과 팔을 벌려 포옹을 한다. 몇 초 동안 꼭 안은 후에 옆사람 쪽으로 이동해 다시 몇 초 동안 서로 꼭 안아 준다.
그곳에는 형제와 자매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천주교에서 남자 신자를 형제, 여자 신자를 자매라 칭한다) 그곳에는 남자 선배, 동기, 동생들이 있었고, 여자 선배, 동기, 동생들도 가득했다. 그 가운데에는 평소 좋아하던 여자 동기도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안는다는 행위. 서로의 체온을 느낀다는 것. 온몸을 밀착시켜 서로를 내어 주는 몸짓. 안고서 손으로 상대를 어루만져 주거나, 토닥토닥 위안을 주는 동작. 평소에는 의식적으로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누군가와 무방비적으로 서로를 내어 주며 포옹을 하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나 이것을 바라고 있었는지, 누군가와 포옹하며 얼마나 위안을 얻고, 또 얼마나 안도감을 느끼는지.
얼마 전 아끼는 친구 하나가 말해 준 류시화 작가의 인도 경험담에서도 똑같은 느낌을 공유했었다. 인도의 어느 곳을 방문하던 작가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미동도 없이 명상을 하던 여인을 발견했다. 같은 장소에 매일 방문하면 그 여인이 먼저 와 역시 명상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작가는 동지애를 느끼며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응수하지 않고 계속 명상을 이어가곤 했다. 작가는 매일 그 자리에 가면 인사를 건네곤 했으나, 단 한 번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작가가 그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도 그녀는 묵묵히 같은 자세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마지막 날이라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함께 명상해 주어 고맙다고, 건강히 잘 있으라고, 이제 떠난다고 나직이 말을 건네며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는 아무런 응수를 하지 않았다.
작가가 그곳을 떠난 이후에 시간이 지난 뒤 누군가를 통해 그녀 소식을 들었다. 그가 떠난 뒤 말없이 명상수행을 하던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하고 다녔다는데, 그것은 작가가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고, 자신에게 고맙다 말해 주었고, 축복해 주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병환자였다고 한다. 아무도 그녀를 그렇게 따스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묵언 명상은 병이 낫기를 간구하는 시간이었을까. 머나먼 동방에서 온 외지인의 따스한 포옹과 축복이 담긴 작별인사가 그녀에게는 매우 특별한 느낌으로 각인되었나 보다.
나의 친구는 류작가님의 인도의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 또한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늘 강하고 빈틈없으며, 일 잘하는 이미지로 숨 가쁘게 일하고 생활하고 있었지만,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조금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아니라 여겼지만, 자신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오랜만에 시원스러운 비가 내리고 있다. 카페가 한적하니 좋다. 먼지 가득한 하늘도 씻고, 흙투성이 길도 씻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