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간으로 새벽 세 시 반 정도에 잠을 깼다. 낮에 간만에 커피를 마신 탓인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뒤 잠시 머뭇거리다 계속 잠을 청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정신이 더 맑아지는 걸 느꼈다.
배터리가 반 남짓 남은 걸 확인하면서 톡을 열어 보았더니 군데군데 숫자가 보였다. 그 가운데는 매일 과선배 형으로부터 받고 있는 성서 구절도 있었다. 보통은 이르더라도 문자 송신 시각이 아침 5시 반 이후쯤 됐었는데 오늘은 무려 새벽 2시 47분. 늦은 취침으로 다음날이 염려되어 미리 보내 준 걸까.
광저우 장난시로 안쪽의 조용한 카페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말씀이 마치 기다렸던 선물처럼 포장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내 삶에 찾아오던 거친 파도가 조금 더 그 위력을 떨치려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약 사 년 동안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던 일본의 파트너가 누적된 적자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 년 동안에도 그와 나는 몇 번의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놀라운 계약 수주를 통해 가까스로 버텨내곤 했다. 가격이 맞지 않거나, 우리 물건을 사 줄 해외바이어들의 구매 타이밍이 늦어져 애태우던 순간마다 어찌어찌 판매처를 찾아내 산소를 들이마시고 다시 호흡을 하곤 했다. 사 년을 버틴 것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최근 버릇처럼 된 게 있다. 현재 나의 월수입과 지출을 빠르게 훑어 얼마나 마이너스인지 계산한다. 그리고 현재 내가 가진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처분하면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버틸 수 있는지 가늠하는 일이다. 파트너의 파산이 확정된 이후로 나의 이 버릇이 거의 매일 계속되고 있다.
버릇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마이너스를 줄일 수 있는지 혹은 다시 플러스로 만들 수 있는지 또 빠르게 머리로 훑어 나간다. 테니스 레슨을 늘릴 것인지, 학원에 가서 영어 강의를 뛸 것인지, 이도저도 마땅치 않으면 다시 구직을 해야 할 것인지 매일 머리를 굴려 보곤 한다.
아니, 나이가 이제 반백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경제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는 일일이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걱정을 시키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딱히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낮기온 28~9도까지 가는 다소 더운 느낌의 광저우 거리를 거닐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친구 J도 꽤 자주 떠 올리곤 한다. J의 가족과 연락한 지도 꽤 되었다. 나 살기 바쁘다고 아끼던 친구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일도 잊었다. J가 하늘에서 보고 서운해할 것 같다.
이렇게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고 내 삶과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아버지는 다시 알려 주시곤 한다. 친절하게 몇 번이고 몇 십 번이고 반복해서 나에게 알려 주시는 거다. 다행히 나의 주변에는 그런 메신저 역할을 해 주는 많은 인간천사들이 포진해 있다. 늘 까먹고 또 아래로 꺼지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며 다시금 깨닫게 만들곤 한다.
동생과 함께 새로운 기술법인을 세웠다. 이 회사를 만들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당찬 포부를 밝히고 높은 목표를 꼭 이뤄보겠노라 다짐하듯 말하곤 했다. 나에게 다시 찾아온 거친 파도로 인해 약간 기가 죽어 있기는 하나, 늘 그러했듯이 이 파도는 내가 꼭 가야만 하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틀림없이 타고 넘어갈 것이다.
한숨 더 자고 일어나 날이 밝으면 이 선물 포장을 다시 풀고 안에 든 선물을 음미해 보려 한다. 흔들릴 이유가 없다. 방향은 정해졌고 이 길로 쭈욱 나아가면 된다. 주시고자 하는 선물을 자꾸 까먹지 마라. 감사하게 받고 내 삶에서 반드시 그 감사함을 표현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