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의 아침
<조우상 早上> 광저우의 아침
7시 45분부터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일정을 분담해서 아침 등원길 유치원 정문 앞에서 보안 도우미를 서는 일이다. 늦으면 무척 곤란할 테니 전날밤 알람을 6시 반에 맞춰 놓고 잤다. 나만 일어나고 막내가 늑장을 부릴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엄마의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나 졸린 눈인 채 옷을 입었다.
서울에서 다친 허리가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치면 서너 군데쯤 떨어진 유치원에 가기 위해 아내는 광저우판 따릉이를 이용한다. 지난 주만 해도 허리가 아파 자전거로 딸을 태우고 페달을 밟을 자신이 없었지만 어제부터 큰 통증 없이 여섯 살 난 딸을 앞에 태우고 자전거 운행이 가능해졌다.
좁디좁은 자전거 쿠션 위에 나의 큰 엉덩이와 작고 귀여운 딸의 엉덩이를 기술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케이케이는 엄마와 자주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이 다소 어려운 자세를 능숙하게 소화해 낸다. 삼각형 시트의 앞끝에 엉덩이를 살짝 걸친 채 두 발을 자전거 허리 위에 앞뒤로 놓고 좌우 균형을 잡기 위해 양쪽으로 단단히 운전대를 잡는다.
처음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아이까지 앞에 두고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 망설여졌다. 게다가 찻길 제일 바깥쪽에 위치한 자전거도로에도 수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신경을 바짝 쓰게 된다. 언니 칭칭이를 데리고 몇 년 경험한 덕분에 이제는 나도 여느 중국 학부모처럼 따릉이를 타고 딸을 등교시킬 수 있게 되었다.
강남유아원 도착
광저우 시내를 가르는 주강 아래쪽이라 강남인가 보다. 중국도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여기저기 유치원들이 문을 닫는 추세라고 한다. 케이케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광저우시와 사립유치원이 합작경영을 하는 곳이라 아직 건재하다. 아무래도 믿을 수 있고, 교육비가 사립에 비해 많이 저렴하니까.
딸을 먼저 들여보내고 유치원 선생님 한 분에게 내가 오늘 당번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내게 장부에 오늘 날짜와 딸과 내 이름을 쓰게 했다. 그리고 손오공이 쓸 것 같은 기다란 흑색 나무봉을 건네주었다. 유치원 입구에는 경찰이 세 명 배치되어 있었고 나는 실내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서서 아이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당번 역할을 하는 두 번째 날. 왼손으로 검은 봉을 잡고 등원하는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 조우상~~ “ 웃으며 인사한다.
“ 조우상~~ 조우상~~ “ 인사를 받은 아이와 학부모는 바로 응수한다.
여기는 광둥어가 모국어인 도시. 보통화(중국표준어)가 일반적인 곳이라면 보통 ‘자오샹하오 早上好’라고 인사한다. 삼십 분 동안 아마 백여 명의 아이들에게 인사한 것 같다. 만으로 네 살부터 여섯 살까지 소123반, 중123반, 대123반으로 학급이 편성되어 있다. 광둥어로 인사하고 보통화로 인사를 받은 경우는 겨우 두 명 정도였다. 아직은 광둥어가 우세한 듯하지만 아이들은 이제 자라면서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보통화 표준어를 쓰도록 교육받기 때문에 광둥어 쓸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광동사람들은 아이들이 점점 광동말을 잊고 실력이 준다고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한다.
아이들의 절반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나머지는 엄마나 아빠가 데리고 온다. 혼자 등원하는 아이는 없다. 규칙이다. 내 친구들의 아이들이 보통 대학생이거나 늦어도 고등학생인 경우가 많은데 늦둥이를 가진 나는 여기서 유치원생 아빠 노릇을 한다. 아이 친구들 부모는 대부분 10년 이상 손아래일 거다. 유치원 아가들은 그야말로 이쁘고 귀여워 죽는다. 근데 그 엄마아빠들도 뽀얗고 젊다. 딸은 전혀 내색하지 않지만 나는 조금 걸린다. 아직 삼사십 대이거나 이십대로 보이는 학부모도 보인다. 부럽다.
아가들에게 인사하는 내 얼굴 근육이 미소로 가득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 조그맣고 인형 같은 인간들이 나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떤 아이는 조우상 하며 인사하는 동안 만면에 싱그러움을 담은 채 내 눈을 뚫어지게 맞추며 지나간다. 이런 얼굴빛을 본 때가 언제이던가.
“ 조우상~~ 쑥쑥(아저씨) “
행복한 보안 당번 시간이 8시 15분 즈음 막을 내린다. 유치원 선생님이 수고했다며 환하게 웃는다. 손오공 흑봉을 돌려주고 프랑켄슈타인 책이 든 내 에코백을 짚고 유치원을 떠난다. 내 얼굴에 머금은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날씨는 또 왜 이리 화창하고 따뜻한 거냐. 섭씨 18도. 매화가 피고 광저우 성화가 핑크빛으로 거리를 밝히는 광저우의 12월. 이제 동네 지인들이 기다리는 얌차(차를 마시며 딤썸을 즐기는 광동식문화) 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