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엄마랑 한국인 아빠랑 일본 살기
오늘부터 갓 태어난 딸을 키우는 이야기를 딸의 시선이라는 형식을 빌어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육아를 하고 계시거나 앞으로 하시게 될 많은 브런치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힘내십시오! 저도 기쁜 마음으로 어린 딸과의 새로운 삶을 일구어 가겠습니다.
내 이름은 칭칭. 태어난 지 100일 됐어요.
2016년 1월 어느 날 중국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어요. 원래 우리 집은 일본인데 엄마가 엄마의 아빠, 엄마가 계신 중국에서 나를 낳기를 원하셔서 비행기를 타고 내가 태어나기 몇 개월 전에 건너가신 거예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는 일본 서쪽 큐슈섬의 한 작은 도시에서 일하고 계셨죠. 그런데 최근 그 섬의 구마모토라는 곳에서 큰 지진이 나 많은 일본 사람들이 죽고 다쳤답니다. 아빠가 혼자 지내던 집도 많이 흔들렸지만 다행히 큰 일은 안 생겼어요.
그러다 내가 태어날 즈음 아빠가 세상 밖으로 나올 나를 만나러 중국에 오셨어요. 엄마 아빠는 내가 언제 태어날지 확신할 수 없어 비행기표를 끊을 때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고 하네요. 아빠의 휴가가 충분하지 않아서 잘못하면 휴가 기간 안에 내가 태어나는 걸 보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내가 태어날 예정일은 20일이었어요. 아빠와 엄마는 고심 끝에 내가 예정일 이전보다는 이후에 태어날 것으로 베팅하고 휴가를 20일 뒤쪽으로 며칠 더 잡았대요. 다행히 난 예정일에서 이틀 늦은 22일 저녁에 세상으로 나왔답니다.
엄마 뱃속에서 들었는데 엄마는 나를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다고 했어요. 진통이 시작된 후 엄마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프다는 걸 알고 겁이 덜컥 났어요. 시간이 지나 진통은 더 심하고 잦아졌지요. 나도 머리를 틀면서 열심히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더 힘들어했어요.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옆에 있어 주었지만 엄마의 진통을 줄이는 덴 역부족이었어요. 뭔가 듬직하게 옆에서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빠도 어쩔 줄을 몰라 오만상을 다 쓰기만 했어요. 그래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는 다 따라 하려고 애를 썼지요. 의사 부르라면 부르고, 통증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지압도 해주고, 엄마랑 같이 숫자를 세며 호흡도 하고.
진통이 수위를 높여 엄마를 힘겹게 하기 시작했죠. 나도 엄마 몸속에 머리가 끼인 채 힘들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어요. 엄마와 나는 둘 다 녹초가 되기 직전이었죠. 그때 엄마가 아빠를 불렀어요.
"여보, 의사 선생님 불러줘요. 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 이상은 더 못 버티겠어요. "
"너무 힘들지. 아, 어떡하나. 우리 복덩이 엄마 너무 아프고 힘들어하는데. 그래 여보. 정 안 되겠으면 우리 그냥 수술하자. 당신 정말 열심히 잘 했어. 이만큼 한 것도 너무 잘 했어. 의사 선생님 부를게."
인터폰으로 담당 의사 선생님을 불렀어요. 안경을 낀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과 두 명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왔어요. 아빠가 선생님께 엄마의 상태가 안 좋다고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죠. 중국인 남자 의사 선생님은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어요.
" 아, 힘드신 건 잘 알겠는데 이건 자연분만하시는 산모들 누구나 겪는 고통이에요. 아직 수술 생각하실 때가 전혀 아니에요. 어디 보자. 얼마나 열렸나? "
장갑을 낀 손으로 측정을 하고 눈으로 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더니 그 남자 의사쌤은 급히 두 명의 간호사 쌤들한테 뭔가를 지시했어요. 바로 분만실로 이동시키라는 오더였답니다. 침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분만실로 옮겨졌어요. 그러더니 밖에서 남자 의사쌤 대신 여자 의사쌤 한 분과 조산원 쌤 한 분이 들어왔어요.
엄마는 어디서 그런 힘이 다시 솟았는지 방금 전까지 포기하고 수술하려고 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엄청난 에너지로 힘을 주기 시작했죠. 덩달아 저도 엄마와 함께 소위 '젖 먹던 힘', 아니 태어나기 전이니 '젖 먹을 힘'까지 보태 무지막지한 용을 썼어요.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겨우겨우 평소 익혔던 호흡법으로 숫자까지 세가며 통증을 이기려고 애썼는데 막상 내가 터널 입구에 들어서자 엄마는 초인과 같은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죠. 나한테 그게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나도 초아기 같은 힘을 내기 시작했죠.
엄마와 나는 하나가 되어 길고 긴 통로를 빠져나갔어요. 그 길이 어찌나 길던지요. 통로는 내가 놀던 엄마의 양수 속과는 너무 달랐어요. 좁고 어두운 길이 내 머리와 몸을 꽉 조여왔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도 나도 안간힘을 썼지만 견디기 어려웠어요.
그때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빠가 옆에서 부르는 소리도. 의사 선생님과 조산원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아, 이건 뭐지?
주변이 갑자기 달라졌어요. 뭔가 변했어요. 내 몸이 가뿐해졌어요. 이건 아마도 빛이라는 건가 봐요. 내가 아마도 세상 밖으로 나온 건가 봐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 속에서 엄마 밖으로 나온 것 같아요.
엄마! 엄마!
사람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나는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요.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주세요. 세상 밖으로 나온 칭칭이가 앞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