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딩 이야기 - 스크랩과 마틴 편
오늘은 제가 종합상사에서 스크랩 전문 회사로 직장을 옮긴 후 하게 된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이 '지금 직장을 떠나면'으로 되어 있어 이직이나 퇴직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실 수 있겠지만 이직 후의 새로운 일에 대한 사례로 참고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트레이딩이라는 일과 스크랩이라는 아이템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소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
대만에서 마틴이 일본으로 출장을 왔다. 마틴은 대만 친구다. 이 년 전 전 직장의 대만 동료 로빈슨의 소개로 마틴과 처음 일하게 되었다. 얼마 전 이란 친구 알리를 브런치에서 소개한 적 있는데 알리가 나보다 열 살 위인데 반해 마틴은 열 살 손아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냥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
우리 회사는 마틴의 회사를 통해 일본의 스크랩(Scraps)을 대만의 철강회사들에 수출 판매하고 있다. 스크랩은 사전적 의미로는 폐기물 혹은 쓰레기를 의미하는데 우리가 취급하는 건 철스크랩(고철)이나 비철스크랩(구리스크랩, 알루미늄스크랩 등)이다.
이런 무역 거래가 가능한 이유는 일본은 스크랩이 많이 발생하고 대만은 스크랩 수요가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스크랩 수출 상대국으로 우리나라가 제일 적합한데 그 이유는 선박 운송을 위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스크랩 수요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대만은 우리나라 다음으로 매력적인 수출 대상 국가이다. 철스크랩을 원료로 사용하는 전기로 철강회사들이 다수 성업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마틴이 두 번째로 우리 회사를 방문한 목적은 토요하시에 있는 우리 야드(야적장)와 선적 항구를 견학하고 때마침 대만으로 갈 물건의 선적 작업을 보기 위함이었다.
16년 동안 세계의 수많은 공급처와 바이어 그리고 판매 에이전트를 만나서 같이 일을 해봐서 한 번의 계약을 같이 진행해 보면 금세 상대가 괜찮은지 아닌지 판단이 선다.
마틴이 속한 회사는 우리의 일본 철스크랩을 대만의 전기로 철강회사들에 판매해 주는 에이전트이다. 에이전트는 말 그대로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중간 창구 역할의 대행자이다. 대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그 시장의 구조와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우량 수요가(바이어)들과 거래 실적이 많은 마틴의 회사를 우리 회사의 대만 에이전트로 지정한 것이다.
약 2년의 거래 관계를 통해 마틴의 회사가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이삼십 대 초의 젊은 대만 트레이더는 인성과 업무적 전문성을 한데 갖춘 만족스러운 파트너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일이 사람과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무역이라는 일은 특히 커뮤니케이션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트레이딩을 즐기고 흥미를 많이 느끼며 일하고 있다.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 일에 보다 적성이 맞는 사람이 있고, 보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틴은 우선 철스크랩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네트워크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학업을 마치고 고국인 대만으로 돌아와 철스크랩과 선철 트레이딩을 하는 무역 회사에 취직했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그 회사에서 마틴은 두 개 아이템을 철저히 공부해 물건 자체를 볼 줄 알았으며 철스크랩과 선철의 무역 거래가 전 세계적으로 특히 아시아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대만의 유력한 전기로 철강회사들(주로 철근이나 빔 생산 업체)과 관계를 맺은 후 이들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철스크랩 바이어인 이들의 구매 상황을 꿰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회사는 불과 2년 전에 대만 시장을 개척한 이래로 거의 매달 성공적인 수출 판매 계약을 이뤄내고 있다.
마틴이 가진 또 다른 강점이 있다. 바로 훌륭한 인성과 의사소통 능력이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그가 일본 서쪽에 위치한 우리 회사의 본사를 출장 방문했을 때다. 스크랩 시장에서는 꽤 어린 축에 속하는 대만 젊은이가 스크랩 거래를 주선하겠다고 인사차 방문했다. 일어는 하지 못했지만 미국 유학파답게 영어는 능통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마틴의 회사가 대만 철스크랩 시장에서 꽤 잔뼈가 굵은 곳이었다. 마틴의 보스, 즉 사장 내외는 대만 철스크랩과 선철 수입 경력이 20년이 넘었고 웬만한 대만 철강업체들과 탄탄한 관계를 맺고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었으며 실제 거래 실적도 상당했다.
마틴이 회의에서 이야기할 때는 팩트 위주로 과장 없이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자신은 있어 보이지만 절대 거만하지 않았으며 상대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공감하는 표정과 제스처가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고자 노력하는 편이기 때문에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태도는 거래가 시작된 이후 2년이 다 되도록 변함이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든 이메일로 의견 교환을 하든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그의 겸손하면서 사려 깊은 모습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마틴과 직접 본 것은 세 번에 불과하다. 그가 두 번 일본을 방문했고 우리가 한 번 대만을 방문했다. 어제 우리 회사 본사가 있는 키타큐슈를 방문하여 미팅을 하고 나와 함께 나고야 쪽의 야드를 오늘 오전에 방문하여 그곳의 물건을 직접 보고 선적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을 관찰했다. 그리고 신칸센 역 근처에 있는 도터라는 커피 체인점에서 마지막 식사로 샌드위치를 함께 먹었다. 출장을 오면 너무 많이 먹게 되어 배가 과하게 부른 경향이 있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택한 것이다.
별 기대 없이 주문한 햄에그 샌드위치가 제법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샌드위치 회동에서 스크랩 비즈니스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밀도 충만하게 나누었다. 말을 하면서 그와 나는 이 스크랩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지 이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틴이 정말 일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온전히 전해져 왔다. 더불어 이 친구가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에이전트가 중요한 공급사에 신뢰를 표시하지 않을까마는 가식적인 모습과 진실한 모습은 쉽게 구분이 가는 것이다.
그에게 철스크랩 분야에 있어 각각 일본과 대만 '넘버완' 기업을 꿈꾸자고 말했다. 철광석, 석탄, 오일, 비철 (니켈, 구리 등) 등의 원자재와 더불어 시장 가격이 널뛰는 이 리스크 가득한 스크랩 시장에서 우뚝 서자고 제안했다.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 약간 비장한 마음이 들어갔다. 마틴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랬더니 마틴 왈,
" Oh! No! 넘버완! 넘버완 말고 넘버투나 쓰리로 합시다. 이런 급변하는 환경에서 넘버원은 너무 위험해요. ㅎㅎㅎ "
그 말을 듣고 우리는 같이 웃어 버렸다. '그래, 일단 넘버 투 쓰리로 가자. 넘버원 뒤에서 우리 자리 잘 만들어서 키운 뒤에 기회를 보자. 어쨌든 마틴 너와 난 끝까지 쭈욱 같이 가는 거야.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너도 내가 마음에 들지? ' 속으로 이런 말을 하며 마틴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제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오늘 낮엔 해가 쨍쨍 완연한 오월의 화창함이었다. 한국 남자 하나와 대만 남자 하나가 일본 어느 작은 도시 역 근처 커피체인점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출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마틴을 도쿄로 가는 신칸센 열차에 실어 보내고 반대 방향의 열차를 기다렸다. 플랫폼 안쪽으로 기분 좋은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https://brunch.co.kr/@ndrew/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