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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Aug 24. 2024

Desperado

내 인생의 노래 (19) - 밀도 있는 한 주를 보낸 후 듣는 노래

도쿄에 온 이후 그야말로 심플한 삶을 살고 있다. 누가 보기에는 단조로울 수 있지만, 단순한 삶에서 오는 소박하고 잔잔한 행복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이런 게  나이 드는 거구나 새삼 생각하면서도, 매일의 루틴 그리고 큰 변화 없이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무탈한 한 주를 늘 바라지만, 세상사 어디 내 마음대로만 되기야 하겠나. 정확히 실체를 규정할 수는 없지만 멘탈이 떨어진 채 주말을 맞이할 때가 있다. 금요일 어제 퇴근길이 좀 그랬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언제나처럼 달리기로 몸과 마음의 독소를 빼고 나서 찬물로 샤워를 했더니 부정적인 마음이 반 이상 빠진 느낌이었다. 간단히 조리한 아침식사를 하며 유튜브를 열었더니, ‘MBC라디오 여름특집 청춘의 노래들 스페셜 DJ  손석희 편’이 추천으로 올라와 있었다.


언론인으로서의 손석희 씨가 음악방송 DJ를 해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느끼게 할 정도로 아주 품위 있으면서 편안한 방송이었다. 손석희 씨가 소개하는 곡들 중 이 노래 Desperado가 나와 더욱 반가웠다. 사실 Desperado는, 어딘지 모르게 자존감이 떨어지고 무기력함을 느낄 때,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불안하고 걱정될 때, 세상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할 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일렁일 때 내가 늘 찾아 듣는 노래 중 하나이다. 노래를 몇 번 반복해서 듣고 나니 마음에 조금 남아 있던 찌꺼기가 정화된 느낌이다.


Desperado라는 단어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대해서는 약간씩 이견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이 단어를 “방랑자”라고 받아들인다. 나 스스로 한 곳에 진득하게 있지 못하고 ‘프로이직러’로서의 커리어를 살아왔고, 한국을 중심으로 홍콩,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해 오고 있는 입장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늘 노매드(nomad) 즉 직업적인 유목민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단어가 갖는 또 다른 의미처럼 나는 무법자나 망나니도 아니고 절망에 빠져 살아본 적도 없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왠지 Desperado가 된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내 삶 자체가 끊임없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보니 어찌 보면 과잉 해석일 것이다.


사실 노래 가사와는 전혀 안 맞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딱히 설명하기 힘든 용기와 자신감을 받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해질녘 노을에 물든 강둑을 뛰다 보면 가끔씩 느끼게 되는 러너스하이(runner’s high)와도 같이 어떤 계시와도 같은 마음의 울림을 받는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네 페이스를 지키며 천천히 앞으로 나가면 돼


이 노래는 1970년에 데뷔한 이글스(Eagles)의 1973년 발표 앨범(앨범명도 Desperado였음)에 수록된 곡이다. 가야 할 길을 잃고 순간의 쾌락에 홀려 방황하는 Desperado가 진심으로 제자리를 찾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러 비유를 통해 표현된 시적인 가사가 일품인 노래이다. 화자는 Desperado를 사랑하는 여인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제 그만 당신이 가질 수 없는 것들만 좇아 방황하는 생활을 접고 당신이 가질 수 있는 내 사랑을 받아달라’는 뭐 그런 내용이기도 하다.


You better let somebody love you
before it’s too late…

사소하게는 오늘 점심 또 뭘 먹지로 방황하는 그야말로 갈팡질팡 인생이지만, 크고 작은 삶의 시련과 질곡을 겪으면서 이제는 순한 맛 Deseperado가 되었지만, 이 노래처럼 살아있다는 기쁨과 살아갈 용기를 받는 촘촘한 순간들이 나를 감싸고 있어 오늘도 고독하지만 행복한 방랑자가 되어 여행 같은 주말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무한리필 자존감 회복제와 같은 이 멋진 노래를 만들고 불러준 이글스 형님들께, 그리고 이 노래를 청춘의 노래로 공유해 준 손석희 님께 감사합니다.


https://youtu.be/FiPqUjLMuA8?si=qxonFdS1G5qiXunx

사족 - 이글스가 부른 원곡 외에도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커버했다. 그중엔 이글스가 아직 무명에 가까울 때 공연 등에서 백밴드로 따라다녔던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가, 이글스의 히트 이후 부른 버전이 이글스의 곡만큼이나 인기를 얻었다. 둘 다 너무 좋다.

 https://youtu.be/yUg10CPelvo?si=ZLCV82J5e2b57B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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