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 (20) - 비 오는 불금 혼술하며 듣기에 좋은 노래
올해 10호 태풍 산산이 일본열도 서쪽을 강타하고 있다.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야말로 지금까지 ‘경험 못한’ 정도의 위력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당초 걱정보다 도쿄를 위시한 관동지방에의 영향이 크지 않은 터라 금요일 퇴근 후 안도감 반,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움 반으로 불금저녁을 보내고 있다.
나비효과와도 같이 큐슈를 관통한 태풍의 영향으로 도쿄는 주말까지 내내 비가 예보되어 있다. 그나마 ‘폭염’이라는 단어가 퇴색되고 있는 여름의 끝자락에 만나는 비라서 조금은 반갑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에는 창문을 열어둔 채 빗소리 들으며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술 한잔 하는 게 최고의 행복이다. 언제나처럼 한 주를 치열하게 지낸 후 퇴근해서 혼술 하며 조용한 불금을 보내는 오늘 같은 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 그야말로 ‘감상적으로’ 빠지기 딱 좋은 날이다. 이럴 때 자연스레 듣는 노래들 중에 신촌블루스의 노래가 몇 곡 있다.
그중 첫 번째로 떠오르는 노래가 바로 ‘그대 없는 거리’이다. 이 노래는 도시의 네온사인아래 사람들로 붐비는 밤거리에서 때때로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공허감을 잘 담아내고 있다. 대학 다닐 때 우연히 이 노래를 처음 듣고는 신청곡 받는 카페나 호프에 가면 늘 신청해서 듣던 노래이다. 부르기보다는 들을 때 그 느낌이 훨씬 사는 노래이기도 하다.
누구나 술 한잔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괜스레 예전에 연정을 품었던 이가 생각나거나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한으로 사무칠 때가 있다.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서글품인지 서러움인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그런 감상에 빠져 집에 바로 못 들어가고 근처 놀이터에서 한참을 떠돌던 때가 있다. 이 노래는 그럴 때 내 마음을 위로해 주던 노래이다. 내 멋대로 해석을 하자면, 여기서의 ‘그대’가 꼭 연인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내가 좇아왔지만, 이제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어느덧 놓아 버린 어쩌면 놓쳐 버린 나의 꿈과 목표들도 또 하나의 ’그대‘가 아닐까 싶다.
거리엔 또다시 어둠이 내리고
희미한 가로등 불이 켜지면
어우러진 사람들 속에 길을 걸으며
텅 빈 내 마음을 달래 봅니다
이렇게 못 잊는 그대 생각에
오늘도 차가운 길을 가는데
지울 수 없는 한줄기 미련 때문에
오늘밤 이 거리를 헤매입니다
지친 내 발길은 그대 찾아서
포근히 잠든 그대 모습 그리며
멈추지 않는 내 발길은 어쩔 수 없어...
나 스스로에게 늘 얘기한다. 항상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고. 가끔씩은 싸구려 감상에 빠져도 좋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는, 비 오는 날 불금이나 주말 술 한잔 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 없이, 그리고 현재에 대한 긴장이나 지나친 집중에서 오는 피로감 없이 온전히 과거의 추억에 젖어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기에 더없이 좋은 계기를 제공한다. 헛헛함이 묻어나는 노래임에도 듣고 있으면 꽉 채워지는 느낌이다. 한 없이 허전하고 쓸쓸한 한영애의 보컬은 묘하게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https://youtu.be/U0qxKvhpW5A?si=7s7k5ye0VCf98EMq
사실상 리더 격인 엄인호가 신촌에 살았던 탓에 밴드명이 ‘신촌블루스’가 되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신촌블루스는 엄인호와 이정선이라는 엄청난 뮤지션 외에도 김현식, 한영애, 정경화와 같은 최고의 보컬들이 거쳐갔던 대한민국의 대표 블루스 내지는 블루스록 그룹이었다. 여기까지는 나무위키에 실린 내용을 인용한다. 블루스의 기원에 대해 얼핏 들은 기억은 있으나 거기까지다. 나는 블루스든 블루스록이든 각각의 정의도 서로 간의 차이도 잘 모른다. 다만, 아마도 전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촌블루스인 것을 알아차릴 정도는 된다. 별로 관계는 없지만, 신촌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서 20대 초중반 신촌블루스의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대없는 거리’가 신촌블루스의 노래 중 최애곡이지만 노래방에서 불렀던 기억은 없는 반면, 노래방에 가면 꼭 한 번씩 부를 정도로 좋아했던 신촌블루스의 노래는 따로 있다. /아/쉬/움/ 잘은 모르겠지만,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의 한 면에는 ‘아쉬움’이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아쉬움이 많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크고 작게 따라오는 게 ‘아쉬움’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아쉬움‘은 ’그리움‘과도 많이 닮은 것 같다. 둘 다 내 소중한 친구들이지만 과거지향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라 조금은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려 한다. 적당한 아쉬움에 그리움 한 스푼으로 심심하게 간을 한 그런 삶을 지향하려 한다.
눈 내리던 날 수업 빼먹고 신촌에서부터 숙대 앞까지 걸어갔던 날, 여의도나 광화문의 휘황찬란한 밤거리에서 집으로 선뜻 향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날, 집보다 몇 정거장 전에 내려 희미한 달빛과 아파트 불빛 바라보며 무념무상으로 걸었던 날 등. 내 모든 청춘의 날들이 이 노래 ‘그대없는 거리’ 속에 녹아 있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나는 또 어딘가의 거리를 걷고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zzF0Nsm3nE0?si=_a1B_8EbziJH81Z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