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 (23) - 신해철 10주기, 그리고 1990년의 추억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故신해철 님의 두 자녀가 유퀴즈에 나온 방송을 봤다. 아빠를 쏙 빼닮은 두 자녀들의 반듯하고 씩씩한 모습에 흐뭇했고, 특히 “이제 더 이상 슬퍼하기보다 아빠의 노래를 즐기면 좋겠다”는 마지막 한 마디에는 울컥했다. 누구보다 삶이나 음악에 대해 진지했던 그리고 가족을 사랑했던 아빠의 진심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 같아 부러우면서 뭉클했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https://youtu.be/Y_EJ0lDCaZw?si=Z2IKM__Rg6arR2ei
요 며칠 음악인으로서 신해철의 궤적을 돌아보며 그를 평가하고 기억하는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가 포함된 몇 개의 추모 방송을 시청했다. 벌써 10주기란다.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난 또 한 명의 천재가 남긴 명곡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음악인으로서의 신해철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도전하고 실험하는 크리에이터였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철학자였다. 깨어있는 의식을 바탕으로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과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그저 생각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시민이었다.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가족을 소중히 하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가 타계한 이후 아쉬고 안타깝다는 상투적인 표현만으로 다 담기 힘든 복잡한 마음이 줄곧 들어온 것은, 아마도 그가 남긴 곡들을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덧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들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문득 생각해 본다. 음악을 통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이 그와의 인연을 회고하고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작은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나에게 쓰는 편지> 중
https://youtu.be/CyT4KjintZY?si=MmMHyCX6otVr5lZy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신해철의 팬이라고 할 만큼 그의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가 1991년 발매한 2집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사서 줄곧 듣고 다녔던 기억은 있지만, 넥스트 결성 이후 음악을 잘 알지도 즐겨 듣지도 않았다. 아마도 음악적인 감성이 워낙 ‘초딩 입맛’인 발라드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넥스트 이후 신해철이 추구하던 Rock이나 여러 실험적인 음악이 너무 고급스러워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그의 노래는 대부분 초기곡들이다. 이제는 국민가요라고 할 수 있는 199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그대에게>를 필두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너>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 등. 오히려 지금은 청소할 때 <Lazenca, Save Us>를 틀어놓고 혼자서 립싱크를 하기도 하지만. 비록 그의 음악적인 깊이를 따라가지는 못했으나 뒤늦게나마 그가 세상에 던지려 했던 메시지를 이해해가고 있는 중이다.
https://youtu.be/7Im9tMBzhck?si=l7EiOynf9KLV6RYP
자랑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그를 바로 앞에서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중퇴를 하기는 했지만 그가 다녔던 대학교에 나는 그보다 3년 늦게 입학을 하였다. 1학년이었던 1990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으니, 그가 무한궤도를 이끌고 대학가요제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이후 솔로 데뷔 앨범을 발매하고 거의 아이돌급 인기를 누릴 때였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그 당시 나의 모교는 고등학교라고 조롱을 당할 만큼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하곤 했는데, 연예계 활동으로 수업에 거의 출석할 수 없었던 그가 학사경고의 위기를 맞아 교수님 면담을 위해 학교로 온 것이었다. 그 당시 나도 문과대 건물에서 수업이 있었는데, 복도가 술렁이며 순식간에 엄청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영문을 모른 채 쓸려 가다가 누군가 붙잡고 물어보니 ‘신해철이 왔대“라고 했다. 몇몇 여학우들은 소리까지 지르며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생각보다 키가 작고 굉장히 부드럽지만 어딘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어느덧 올해도 두 달밖에 안 남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가 남긴 것들을 되짚어보는 과정은 슬프지만 뭉클하면서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또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남긴 열정과 진정성,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떠 올리며 이번 한 주도 힘을 내 보려 한다. 매일 열심히 살지만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정비하고, 순간순간 느끼게 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도 지나고 보면 모두 고마움으로 귀결되는 내 삶을 응원한다.
신해철 님! 그곳에서 끝내 못 이룬 꿈을 다 펼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늘 감사합니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할 내일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https://youtu.be/mUPPy8HquhQ?si=MYDAZabrje9-j0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