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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Jan 09. 2021

도시 전체가 미술관 같던 리스본에서의 짧았던 추억

코로나 이후 여행하고 싶은 도시 (1)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듯이, 봉사나 자선활동과 더불어 '여행'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경험들 중 하나이다. 돈과 여유가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며, 아무리 많이 해도 질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가장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꿈꾸고 열망하는 것만큼 여행을 아주 많이 다니지는 못했다. 꽤 오래전에 설정한 버킷리스트에는 최소한 30개 국가를 여행하고 죽겠다는 그다지 원대하지 않은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2019년 말 기준 방문했던 국가가 총 16개국이었으니, '죽기 전'이 아니라 '환갑이 되기 전' 정도로 목표를 좀 현실적으로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코로나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신의 보급이 조만간 이루어지겠지만,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해외여행은 빨라야 올해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여 그야말로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2년 가까이 통째로 삭제되어 버리는 것 같아 속상하고 우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생변수에 스트레스받기보다는 이 기회에 당분간 과거 여행 사진들을 정리하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곱씹으며 지내는 편이 훨씬 현명할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 본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여행하며 찍어둔 지난 사진 속 기억들을 소환하기로 결정했고,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를 나름대로 꼽아보니 단연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짧은 여행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 코로나 이후 보통의 삶과 소박한 일상 같은 해외여행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아 사진과 함께 기억 속 느낌들을 더듬어 본다.


2018년 3월 말경 유럽 몇 개국을 방문하는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출장지가 리스본이었다. 마지막 날은 방문처 분들과의 점심식사로 일정이 마무리되는 터여서 2일간 개인 휴가를 내고 귀국 비행기 편의 출발시간을 저녁 무렵으로 맞추니 2박 3일의 짧은 여행기간이 갖춰졌다. 그때까지 포르투갈 하면 축구, 파두, 에그타르트, 마카오, 포트와인 정도밖에 아는 게 없다 보니, 출장 전 나름 폭풍 검색을 통해 기본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리스본이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은 반나절을 돌아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짧은 여행이었지만, 리스본 시내의 구석구석부터 트램으로 갈 수 있는 벨렘지구, 그리고 하루는 시외버스를 타고 신트라 호카곶 카스카이스까지 돌아본 짧지만 충실한 여행이었다.


리스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인상은 마을 전체가 '아트 뮤지엄'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흔하지만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보도(步道)에 담벼락에, 벽화에 또 대문들은 왜 그리도 색채감이 좋던지...

사진으로 보다시피 엄청나게 현대적이거나 '삐까번쩍'하기 보다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고 낡았지만 요란하지 않게 평온함을 주는 느낌이 도시 전체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 골목골목을 계속 누비고 돌아다녀도 눈이나 발에 전해오는 피로감이 별로 없었다.


리스본 시내에서 트렘을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포르투갈의 명물 에그타르트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벨렘지구에 갈 수 있다. 리스본 발견 기념비 (아래 사진 참조) 및 제로니무스 수도원 등이 유명한데, 장담컨대 날씨만 좋다면 그저 천천히 걸어 다니기만 해도 행복한 풍경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다.


리스본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동네 알파마(Alfama)를 가려면 28번 트램을 타면 된다. 2박 3일 머무는 동안 나는 세 번이나 알파마를 돌아봤었는데, 트램은 한 번도 타지 않고 계속 걸어서 둘러보았다. 평소에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중심가에서부터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위치에 있으니 적어도 한 번은 천천히 걸어서 알파마 지구를 방문할 것을 권한다. 어디선가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 잽싸게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였다. 조만간 인공지능을 장착한 자율주행차나 로봇 택시가 상용화될 시대에 이렇게 낡은 아날로그 방식의 트램이 도시의 중심부를 덜컹덜컹 달리는 모습은 늘 마음에 평화를 준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지대에 위치한 알파마에서 내려보는 골목길 풍경이 참 정겹고 여유로워 잠깐 앉아도 있어 봤다. 알파마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와비사비(WabiSabi)'스러움, 즉 뭔가 낡고 투박하지만 조용한 일상 같은 느낌이 넘치는 동네였다.  

골목길 구석구석마다 누군가 그려놓은 그라피티들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 그야말로 이동식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둘째 날은 하루 종일 비 예보가 있었지만, 기차와 시외버스를 이용해 리스본 외곽의 신트라와 호카곶, 그리고 카스카이스를 돌아봤다. 궂은 날씨가 아쉬웠지만,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신트라의 페나성은 듣던 대로 이뻤고 성내에서의 볼거리도 풍성했다. 유럽의 최서단이라는 호카곶에서는 조금 더 머물고 싶었으나, 쏟아지는 비와 버스시간에 쫓겨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김윤아 씨가 출연한 '비긴 어게인 2'에도 나왔던 아름다운 바다마을 카스카이스는 그야말로 그냥 살고 싶은 동네였다. 비 오는 날에도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던 (아마도) 동네 주민의 뒷모습을 나도 한참이나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과거 기사 등을 찾아보니 비긴어게인 팀은 나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이 곳을 찾았었군.


카스카이스에서 리스본 시내로 돌아와 코메르시우 광장에 서니 어느덧 해질녘이었다. 비가 그치긴 했지만 여전히 구름이 많아 그다지 깨끗한 노을은 아니었지만, 연인끼리 가족끼리 행복하게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곳 역시 비긴어게인 팀이 버스킹을 한 것으로 유명한 장소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젊은 청년의 첼로 연주는 고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포르투갈에 또 언제 와 보겠냐고, 리스본에서의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 저녁은 미리 예약해둔 파두(Fado) 라이브로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갔다. 스페인의 플라멩코만큼이나 유명한 파두를 실제로 라이브로 들어보니 노래에서 우리네 '한(恨)'같은 감정이 깃들어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 한 번의 저녁을 곁들인 파두 체험이 나를 완전히 파두의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요즘도 그래서 유튜브 등으로 포르투갈 국민가수라고 일컬어지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노래를 가끔씩 듣고는 한다. 주변에서 파두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또한 EBS의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유럽 음악기행, 항구 뒷골목의 노래 파두'를 한번 볼 것을 추천한다.


구슬프고 처연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삶의 희망과 단호함이 묻어나던 파두의 여운을 안고 숙소로 돌아오던 골목길.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내일이 늘 기다려지는 지금의 나에 대한 고마움, 하룻밤 자고 나면  떠나게 될 이 따뜻하고 매력적인 동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그렇지만 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등이 서로 뒤섞여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여유만 생기면 시간과 돈은 만들어 꼭 다시 오고 싶은 나라, 포르투갈. 그때는 리스본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도시 포르투는 물론이고 스페인의 몇 개 도시까지 묶어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하리라고 다짐인지 희망인지를 안고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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