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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내 인생의 노래 4

by 두기노
떨어지는 낙엽들 그 사이로 거리를 걸어봐요
지금은 느낄 수 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돌아보면 아쉬웠던 순간이 너무도 그리워요
이제야 느낄 수 있어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신기하게도 일 년 중 특정한 시점에 꼭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해가 많이 짧아진 이맘때 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면 그때는 진짜 가을이 온 거다.


중고교 시절까지 집에 턴테이블조차 없어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이 노래를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만큼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명일동에서 작달막하고 참 성격 좋았던 여고생을 대상으로 과외지도를 하게 되었다. 휴식시간마다 내가 이 노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세뇌를 시켰던 모양이다. 대학 입시를 몇 주 앞둔 마지막 수업에서 고마우면서 부끄럽게도 그 여학생으로부터 고은희 이정란 LP판을 선물 받았다. 이제 턴테이블도 하나 장만하시라는 멘트와 함께.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가 1991년 즈음이니 30년도 더 지난 셈인데, 그 여학생은 잘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워낙 숫기가 없던 수줍은 대학생이었다 보니 고맙다는 마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게 아쉬울 따름이다.


1985년 발표된 이 노래 “사랑해요”를 부른 고은희 이정란 듀엣은 홍대 중창 동아리 뚜라미 출신이었다. 이 두 누님들 영향으로 나는 대학교 들어가서도 늘 대학교 중창 동아리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 “님에게”라는 노래로 유명했고 그 당시 인기 MC였던 왕영은 씨가 학생시절 활약했던 한양대 징검다리, 내 모교인 서강대의 에밀레에 대학연합동아리였던 쌍투스까지. 비록 실력과 용기가 부족해 문을 두드릴 엄두까지는 못 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참 많이도 공연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그리움이 쌓여가는 거리를 나 홀로 걷고 있죠
가로등 불빛이 너무도 차갑게 느껴져요
돌아보면 걸어왔던 발자욱 하나둘 지워질 때
이제야 느낄 수 있어요 얼마나 행복했는지


뭘 해도 자신이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만 많았던 시절. 연애는 언감생심 오직 짝사랑에만 달인이었던 그 시절. 뭔가 아쉽고 누군가 그립고, 또 왠지 외롭던 그 시절. 이 노래를 들으며 종종 망상에 빠졌고 또 얼마나 철없이 설렜었던가.


그야말로 내 ‘청춘’의 한가운데 있던 노래이다.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대학시절 자주 가던 학교 앞 막걸릿집, 소개팅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간혹 이용하던 연대 앞 경양식 레스토랑, 그리고 홍대 호프집, 숙대 앞 카페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천천히 번지듯 아득해지던 그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달콤한 끝에 오는 쌉쌀함, 쓸쓸하고 외롭지만 한없이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은 그런 ‘사랑‘이라는 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소심한 모태솔로에게도 왠지 사랑이 곧 찾아올 것 같은 위로와 용기를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래서 40년 가까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이 노래가 그립다.

https://youtu.be/P-8RW3gwsAA?si=H4YWMn0NokxE2M3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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