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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Oct 29. 2023

열혈남아 (원제 旺角卡門)

내 인생의 영화 1

내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다니던 대략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그야말로 홍콩영화 전성시대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엔 <복성고조>(1985) 같은 성룡, 홍금보로 대표되는 코믹 쿵후액션이 주류였으나 <영웅본색>(1986) 이후  홍콩반환에 대한 우울한 정서를 담은 누아르물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그 와중에 <천녀유혼>(1987) 같은 지극히 중국스러운 판타지물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시절 수많은 홍콩영화 덕에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비장함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며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에 참 많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때 본 영화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걸작’이라고 꼽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열혈남아>(1988)이다.


나는 이 영화를 1989년 12월 신설동의 조그만 영화관에서 봤다. 대학입학시험인 학력고사가 끝나고 어디를 가나 변진섭의 ‘희망사항’이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OTT시스템이 없던 무렵이라 대형 영화관에서 흥행이 끝나고 나면 변두리 극장에서 돌아가며 재상영을 하곤 했는데, 보통 3천원 정도에 2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구조라 돈은 별로 없고 시간은 많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문화공간이었다. 당시 어머니가 그 극장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시험이 끝나 시간이 많던 나는 매점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파는 일을 돕곤 했다.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다음 영화 상영 때까지 15-20분 사이에 컵라면, 과자, 음료수 등이 집중적으로 판매되고 나면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엔 나도 뒤쪽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곤 했다. 그렇게 원제인 <몽콕하문> 대신 국내에서 개봉하며 듣기만 해도 훨씬 비장함이 감도는 <열혈남아>라는 제목을 단 이 영화가 내게로 오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극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 이상을 본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하다. 아마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불법 다운로드 파일에 OTT까지 합치면 열 번 이상 본 것 같고, 유튜브를 통해 압축된 버전이나 특정 장면들은 셀 수 없이 보고 또 봤다. 말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인생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의 풋풋했던 20대 시절 장만옥과 유덕화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린다. 장만옥은 안개꽃처럼 수수하고 잔잔하고 은은하게 아름다웠고, 유덕화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어둡고 우울한 우리네 청춘 그 자체였다. 후에 아비정전, 중경삼림 그리고 화양연화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왕가위 감독은, 하류 건달들의 세계와 애틋한 러브스토리라는 뻔한 소재를 감각적인 색조감과 촬영기법을 통해 마치 슬로모션을 보듯 느린 장면들을 군데군데 넣으며 긴 여운이 남는 영화로 구현해 냈다. 여기에 왕걸이라는 대만가수가 부른 ‘당신을 잊고 나를 잊고 (忘了你忘了我)‘라는 삽입곡은 영화전체에 흐르던 아련함과 안타까움의 정서를 더욱 고조시킨다. (참고로 왕걸의 이 노래는 극장에서 개봉했던 대만 버전에만 들어있고, 현재 넷플릭스에 올라있는 홍콩버전에는 같은 장면에서 다른 노래가 삽입되어 있다)

https://youtube.com/watch?v=8CuyDL-uPJY&si=DbMtk6YDARdakJ-W

이 영화에 왜 그토록 열광했고, 지금도 볼 때마다 그립고 설레면서 다시 안타깝고, 주기적으로 또 생각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볼 때마다 느끼는 그 아련함의 정서로 인하여 삶이 힘들 때마다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또 한 동안 살아갈 기운을 내게 되는 것 같다. 책이나 음악 못지않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좋은 영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다. 가슴을 뛰게 했던 아련한 기억들을 기록으로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가슴이 뛴다.


유덕화는 조직원이라고는 딱 한 명뿐인 생활형 조폭조직을 이끌고 있다. 실력은 안 되고 허세만 있는 조직의 동생(장학우)이 또 한 번 사고를 치고, 이 상황을 해결하러 떠나는 유덕화를 버스 창밖에서 장만옥이 배웅하는 장면.  안타까움과 슬픔을 감추고 불길한 마음을 필사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장만옥의 그 눈빛. 유덕화를 향해 장난치듯 창문을 툭 치며 공허하게 웃던 장만옥의 모습이 왕걸의 노래와 함께 담겨있는 이 부분은 요즘도 지친 하루 끝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즐겨 보곤 한다.

서로의 마음을 처음 확인하던 전화박스에서의 키스신. 쵤영지였던 란타우섬 페리 터미널 앞에 지금도 이 전화박스가 실제로 있다고 한다. 영화를 처음 접한 후 시간이 한참 흘러 2002년 홍콩에서 근무할 무렵, 센트럴에서 배를 타고 란타우섬에 들어갔던 때가 기억난다. 오전에 간 터라 영화에서의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촬영지 순례를 한 셈이다

장만옥이 사는 동네에서 둘이서 걸아가며 장난치는 씬. 이 영화에서 몇 번 안 나오는 행복한 둘의 모습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잠깐의 설렘 뒤에 기다리고 있는 길고 어두운 터널. ‘저. 터널만 지나면’이라는 헛되지만 품을 수밖에 없는 희망. 안타깝지만 우리는 또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불안한 청춘들의 이 영화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영화 <열혈남아> 덕분에 내 청춘이 그나마 덜 비루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과장하면 지금도 가끔씩 하루를 견디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동력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 이후 왕가위 감독이 만드신 작품을 대부분 봤으며, 왕걸이라는 대만가수의 베스트앨범도 구매했다. 원래부터 좋아했던 장만옥은 30년 이상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로 남아 있지만,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이후에도 <무간도>(2003) 등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유덕화는 가장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예전에 홍콩에서 1년 근무할 때 날씨가 너무 습하다고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불평을 많이 하곤 했다. 정작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을 때는 얼마나 좋은지 못 느끼다가 내려놓고 나면 생각나기 마련이다. 입출입 기록만 놓고 보면 지금 거주하고 있는 일본보다 (출장이 많았던 터라) 홍콩이 회수는 더 많을 것이다. 2018년 이후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지만, 다시 찾게 되다면 안타깝고 아련했던 이 영화를 떠 올리며 홍콩의 구석구석을 마치 처음처럼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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