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금 Jan 01. 2018

헬멧 속에 갇힌 감동 -<원더>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뭔가를 기대합니다. 스릴러라면 반전이, 호러라면 공포가, 로맨스 코미디라면 설렘이 되겠죠. 해당 포인트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영화의 성공을 가늠합니다.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관객을 단 한 순간도 겁먹게 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실패한 영화일 겁니다. 호러 영화를 표방하는 한은 말이죠. 영화의 사전 홍보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원더>는 실패한 영화입니다.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호감가지만 감동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몇 안 되는 상영관을 찾아 먼 걸음을 한 건 2017년을 따뜻하게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포스터, 예고편, 심지어 인터넷 평점에서도 <원더>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에 알맞은 영화처럼 보였으니까요. 헬멧 속에 숨어 있던 아이 ‘어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감동 스토리. 적절한 비율의 웃음과 눈물이 2시간을 꽉 채우길 기대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성공한 듯했습니다. 주인공 어기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고, 사람들의 시선에 괴로워하는 딱 거기까지는요. 어기가 잭 윌의 말에 상처받는 부분까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을 주요하게 다루겠다는 욕심과 너무나도 소소한 사건들, 착하고 쉬운 선택의 연속, 느슨한 짜임새 덕에 <원더>는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그들이 왜 어기에게 손을 내미지, 어떻게 화해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할 땐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브라운 선생님의 말이 칠판에 적혀 있을 뿐입니다. 다들 선생님 말을 참 잘 듣죠? 어기에겐 다행이지만 영화에는 글쎄요. 이래서는 극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어기가 진짜 세상에 나왔다 하기에는 영화 속 세상은 너무나도 착하고 친절합니다. 그 세상에는 어기가 부딪히고 깨지며 단단해질 일이 없어요. 어기와 다른 등장인물들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지 싶은 순간을 하나둘 건너뛰어 결국 어기의 헬멧 속으로 들어갑니다. 


비아, 잭 윌, 마틸다의 이야기는 더 나쁩니다. 환부를 대강 열어 놓고 봉합하지 않은 수준이에요. 항상 어기에게 밀리는 비아, 가난한 집안의 잭 윌, 베스트 프렌드 비아를 질투하는 마틸다. 영화는 이들이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 대충 보여준 후 바로 해결됐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비밀이에요. 비아는 부모님이 공연에 와준 것으로 행복해졌고, 잭 윌의 가난 콤플렉스는 몇 번 간만 보다 자취를 감췄습니다. 마틸다는 사람들 앞에서 비아 행세를 하고 한 학기 동안 비아를 모른 척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는 비아네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내요. 철저히 어기 이야기만 하는 게 백배는 나았을 겁니다. 러닝타임은 반 정도로 확 줄이고요.


어쩌면 감독은 어기에게 주고 싶었던 세상을 영화로 만들었나 봅니다. 철저히 어기 중심적인 선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요.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터쉬만 선생님은 시선을 바꾸자고 했지만 감독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어기 맞춤형으로요.


ps. 

1.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작품은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네요. 뚝심 부족일까요?

2. 어쩌면 제가 자극적이고 나쁜 것에 길들여진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드 '별나도 괜찮아' 같은 좋은 예도 있거든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