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탓일 수도 있고
새 키보드를 샀다.
그동안 내게 키보드란 휴대폰 케이스와 같이 ‘필요하긴 하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 것’이었다.
심지어 이미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다. 아이패드와 함께 들고 다니기 위해 휴대성을 고려해 접이식 키보드를 샀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키감이 좋지 않아 안 쓰고 책장 한편에 방치해놓았다.
글을 쓰기 위한 시작이 어려운 이유가 키보드에 있다며 죄 없는 2만 원짜리 접이식 키보드에 책임을 전가했다.
그리고 일하며 사용해본 매직 키보드가 가볍고 키감이 좋았다는 것을 떠올려 구매로 이어졌다.
효과는 상당했다. 이전 키보드의 불편한 점 중 하나가 ㅆ을 쓸 때 세 번은 눌러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쌍시옷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 글이 술술 풀렸다.
돈을 더 주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글 쓰기를 미뤄온 이유가 키보드에만 있진 않았다.
작년 가을, 고민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편지를 주고받는 애플리케이션에서 글쓰기 모임을 연다는 소식에 호기심에 참가했다.
신촌 어느 카페 위층 스터디 공간에서 이루어진 그날 모임은 나의 브런치 개설로 이어졌다. (대표님께 아직도 감사하다)
근력을 기르는 것처럼 꾸준한 글쓰기를 해야 하지만 게으른 나는 브런치 업로드를 자꾸만 미뤄왔다.
무엇보다 당시 나의 글은 아팠다. 매번 감정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쓰다 보니 감정이 지나치게 많이 담겨 지인에겐 보여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전 글은 대부분 비공개로 해놓은 상태이다.)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못했던 글쓰기도 해야지 다짐했던 2020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도 못 가고 그저 일만 했다.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며 그럭저럭 돈을 버니 관심 없는 일에 하루에 반 이상을 쏟아부어야 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겠지 막연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답은 가까이 있었다.
수필을 쓸지 소설을 쓸지 시를 쓸지 모른 채 무엇이든 쓰고 싶은 그저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출간하는 것이 인생에 거쳐 이뤄야 할 목표 중 하나인 나에게 브런치만큼 좋은 환경이 어디 있는가, 장르조차 정해지지 않은 나의 글은 오직 많이 쓰는 것이 정답이다.
이런 마음을 먹으니 이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글을 쓸 수 없던 건 무거운 키보드 탓이 아닌 마음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