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강아지’라 불리는 늙은 개에 관하여
우리 집엔 나이 많은 강아지가 산다.
강아지는 보통 개의 새끼를 이르는 말이지만 가족들은 13년이나 같이 산 ‘달이’를 아직도 강아지라고 부른다.
우리 집에 온 강아지가 달이가 처음은 아니다.
아빠는 간혹 어린 새끼 강아지를 잠시 맡아준다는 핑계로 데려오셨는데 깔끔한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모두 제 주인을 찾아서 갔다.
잠시 친척의 강아지를 맡아준 적도 있지만 그 검은 닥스훈트 강아지가 이불에 오줌을 싸고 도망간 이후로 엄마는 개는 정말 질색을 했다.
하지만 달이는 우리와 인연이 닿았는지 다행히 13년째 우리 집에 잘 살고 있다.
달이를 만난 건 더운 여름날, 해가 길어져 학원이 끝난 늦은 시간임에도 노을의 끝자락이 보이는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학원이 끝나고 바로 오라는 별 일 아닌 전화였지만 아빠의 상기된 목소리가 마치 10년 넘게 탄 그랜저를 바꿨을 때와 같아 직감적으로 좋은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집에 오니 엄마는 어쩐지 못마땅해 보였고 아빠와 오빠는 신나서 베란다로 나가보라 했다.
쇠울타리 안에 조그마한 솜뭉치가 있었다. 그때의 달이는 새하얗고 작아 마치 하얀 솜을 동그랗게 뭉쳐놓아 검은콩 세 개를 콕 박아놓은 듯했다.
달이는 무지한 주인을 만나 무척 고생했다. 예방 접종을 맞기도 전에 자전거 바구니에 태워 한강을 달려 폐렴에 걸리기도 했고, 이갈이 때는 이가 무척 가렵다는 것도 몰라 온 가구를 다 긁어놓았다며 혼내기도 했다. (너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일 텐데)
어린 강아지는 어느덧 노견이 되었다. 새하얗던 털들은 듬성듬성 누렇게 변했고 검은콩 3개가 붙어있는 것만 같았던 눈과 코는 색이 바랬다.
지난여름, 달이가 아팠다. 단 하루 입원해 있었지만 그 조그마한 빈자리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이불 산에 누워 낮잠 자는 걸 좋아하는 달이.
아침에 아빠가 챙겨주는 간식을 먹을 때 가장 활기찬 달이.
혼자 자는 걸 싫어해 오빠가 분가한 후 슬그머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옷가지를 뭉쳐 그 위에서 잠을 자는, 절대 찬 바닥에 눕지 않는 까탈스러운 달이.
사진 찍는 걸 싫어해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는 달이.
소파에 누우면 꼭 머리맡에 누워 엉덩이를 내 어깨에 기대는 5.1kg의 달이.
순종인 줄 알고 비싼 값을 지불하고 데려왔지만 일반 말티즈에 비해 주둥이가 길고 덩치가 조금 더 큰 달이.
손을 잡는 걸 싫어해 필사적으로 손을 빼는 달이.
사과를 좋아하는 엄마를 닮아 사과를 아삭아삭 참 맛있게 먹는 달이.
옷을 참 좋아해 빨래통에 넣어놓은 자기 옷을 챙겨 와 깔고 앉는 달이.
산책 가는 길을 알아 집 밖에만 나가면 왼쪽으로 뛰어나가는 달이.
눈곱 떼는 건 싫지만 엄마가 하는 거니 꾹 참고 기다려주는 착한 달이.
생각해보니 달이의 성격과 습관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이제 다른 어떤 생명체도 달이가 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막연히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