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포텐을 터뜨리지 못한 이유

by 립미얼론

시작하기에 앞서, 완벽하게 사적인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고 또 감사하다. 처음 시작할 땐 그저 내가 겪은 에피소드들을 어딘가에 두서없이 기록하려는 의도로 시작한 것인데, 적어도 눈에 띄었을 때 불쾌하지는 않도록 '조금은 더 각 잡고 뭔가를 써봐야 할까'하는 고민이 드는 요즘이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같은 연차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성취한 것도 없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다. 지능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뛰어난 성취를 하라는 법은 없거니와, 평범하게 큰 어려움 없이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지금 내 삶에 대해 후회하거나 불만족을 느끼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능의 측면에서 높은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 포텐셜을 다 터뜨리지 못하게 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가 종종 있다.




① 문과생과 육각형 인재, 그 환장의 조합


내가 타고난 문과라는 점이 내가 포텐셜을 모두 터뜨리기 어렵게 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교육 분야는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겪은 바에 대해서만 쓰자면, 우리나라는 고지능 문과생에 대한 영재 교육 커리큘럼이 체계적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 예외적으로 어학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중학교/고등학교가 있으니 어학 분야는 논외로 해야겠다. 특히 나 같은 경우 어학 능력이 평범하지만 분명히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는 있었는데, 이런 나를 둘러싼 환경은 쉽게 말하면 모두가 이 아이를 떻게 육성해야 할지 잘 모르는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내가 능력치가 골고루 분포된 육각형 인재였다는 점이다. 나는 어학 능력이 돋보일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았고, 수학은 못하는 데다 정말 흥미가 없었으며, 사회/과학탐구의 여러 과목들 역시 영 흥미가 없는 편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흥미가 있어 열심히 공부했던 과목은 윤리(윤리와 사상) 과목이었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말하는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능지수의 Percentile 대비 뛰어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한 손에 꼽히는 정도는 됐다. 단지 그걸로 먹고 살 정도의 재능이 없었을 뿐. 이렇게 대부분의 과목에 흥미가 없으면서도 시험 성적은 항상 잘 나오니, 주변은 둘째치고 나 자신부터가 어떤 분야로 나아가야 가장 좋을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② 빠른 학습 속도에 비례하지 않았던 학습의 고점


나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러닝 커브가 급경사를 그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남들에 비해 무엇이든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습 속도가 학습의 고점과 비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방면에 재주를 가진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에 비해 특히 높은 고점을 지닌 분야는 없었다(혹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나마 '학업 그 자체'를 분야로 본다면 성과가 있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위 0.3%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워낙 다방면에서 빠른 습득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기대는 대단했다. 국어든, 영어든, 심지어 미술이나 음악까지도 조금만 배우면 금세 쑥쑥 늘었으니 키우는 재미도 있으셨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의 고점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고, 러닝커브가 급격한 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구간에 빨리 돌입했기 때문에 흥미도 금방 잃어버리곤 했다. 일생동안 '너는 끈기가 없다', '너는 노력을 안 한다'는 말을 마치 프레임처럼 들어왔지만, 내가 어느 순간 노력을 접은 분야가 있다면 그건 내가 그 분야에 있어 재능의 한계를 빠르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


꼭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해야만 높은 지능의 덕을 보는 게 아니다. 남들이 노력해서 얻는 것을 비교적 편하게 얻어낸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인생에 있어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내게는 운 좋게도 최적의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도 평균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들인 노력에 비해 괜찮은 성과를 내며 살아왔다. 그 정도만 해도 머리 좋은 덕은 다 본 것이나 다름없으니 좋은 머리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할 일이다.


오늘은 가진 잠재력을 완벽히 터뜨리지 못하게 만든 내재적 요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편, 저런 요인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있었다. 그런 기회는 항상 선택의 기로가 되어 찾아오곤 했는데, 아쉽게도 그 기로마다 원하는 선택을 하지는 못했다. 다음 기회에는 인생의 기로마다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했던 아쉬움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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