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상해 푸동공항에서 복단대 유학생 기숙사까지는 택시로 1시간, 공항버스를 갈아타면 2시간 여.
나는 상해 현지 시각 오후 1시경 도착했고 이 말인즉슨 나는 교통체증을 감안하더라도, ( 일반적으로 상해 평일 이른 오후엔 교통 체증은 없다 ) 3시엔 기숙사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도착 예상 시간 5시간을 훌쩍 넘긴 밤 8시경에 겨우 ‘复旦大学 留学生公寓’(복단대학교 유학생 기숙사) 글자를 보았다.
출국 전, 복단대에서 외국인 유학생에게 본과 생 한 명을 연결해주는 버디 프로그램으로 복단대 본과 중국인 학생을 소개받았다. 그들의 임무는 이어진 유학생을 공항에서 픽업하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 출국 전 나의 친절한 버디는 내게 연락을 해왔고 기꺼이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자그마치 50kg에 이르는 짐을 가지고 어떻게 혼자 기숙사에 가나 싶었는데!
입국장 자동문이 열리고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버디를 금세 찾았다. 여기까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통성명을 마친 이 친구는 파리에서 오늘 유학생 한 명을 더 데려가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말없이 앉아서 기다리길 2시간, 안 되겠다 싶어 몇 시 비행기냐 오늘이 확실하냐는 내 물음에, 어라 이 녀석? 뻘쭘하게 뒷목을 쓰다듬으며 황급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더니 무작정 말도 없이 내 짐을 끌고 반대편 터미널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만 끔벅끔벅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다. 상황 설명도 없이 왔다 갔다 하더니 나더러 먼저 간 것 같다고, 아니 오늘 오는 게 아닌가? 다시 말을 바꿔 좀 더 있으면 오후에 오는 것 같다며 기다리자는 게 아닌가. 한국이라면 먼저 짐을 챙겨 들 고택 시를 타겠다만 난 이제 막 중국에 온 지 세 시간밖에 안된 사람이란 말이다!
그렇게 또 두 시간쯤 지났을까, 얘는 벌떡 일어서더니 가잔다. 짧은 중국어로 몇 마디 물으니 역시나 답이 시원찮다. 화가 나기 전에 어이가 없어 나는 말문이 턱 막히었다. 어디까지나 난 도움을 받아 기숙사에 가야 할 입장이니 앞서 가는 이 아일 따라 캐리어를 질질 끌며, 씩씩거리며, 따라나설 수밖에.
그렇게 나는 공항에 도착한 지 5시간 만에 공항을 떠났다.
좌석 시트가 벗겨지고 창문이 반만 달린 아슬아슬한 구형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다시 택시로 갈아타 드디어 기숙사에 도착했다. 날이 저 문지는 오래고 나는 이미 동공이 풀린 채 녹초가 되었다. 설상가상 아직 이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기숙사 입주를 위한 긴 등록과정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온 '마침 그 날' 사람이 제일 많았다고. 입학 서류와 비자, 여권 등 서류철 하나를 들고 테이블마다 한 장씩 처리, 단계마다 평균 대기 시간은 삼십 분. 그렇게 3시간 여가 지나서야 마지막으로 기숙사 카드와 전기, 수도 카드를 손에 쥐었다. 기숙사 배정은 랜덤이었는데 난 그저 깨끗한 방이기만을 바랐다. 지금 이 상태로는 사방히 막힌 곳이라면 어서 내 몸을 쭉 펴고 싶었단 말이다. 그렇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카드를 받아 든 나에게, 등록과정을 도와주던 유일한 한국인 스텝이 한마디 뱉었다.
"네 방이 5000명 유학생 중에 5000번째 방이야."
순간적으로 이 문장이 떠올랐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직감적으로 이 사실을 깨달았다. '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 내 신고식은 이제 시작이구나.'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