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月,
수업이 끝나야 수업이 시작된다

어엿한 교환학생으로.

by 아씨

두 달의 적응이 끝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긴 팔과 외투가 어색하지 않을 즈음, 상해에서의 호되고 고된 적응도 끝이 난 듯했다. 교환학생의 매력이자 장점을 뽑으라면, 단연 '그곳'에 거주함으로 인한 자유로운 이동이 아니던가! 가까이는 캠퍼스 근처의 五角场과 大学路를, 일본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古北를, 맛집을 찾아 나선 지하철 투어와 식료품을 사 나르느라 버스를 타며 두 손 가득.

두 달간 캠퍼스 안에서 기지개만 켜던 나는, 상해의 번화가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가 가을을 만끽해보고자 했다.



수업이 끝나야 수업이 시작된다


삼시세끼 상해 편

끝날 것 같지 않던 푹푹 찌는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입지 않을 것 같던 긴 팔을 자연스레 꺼내 입을 때쯤, 악명 높은 내 기숙사 방은 하나뿐인 스위트홈으로 바뀌었고, 소문 듣고 구경 오는 방문객도 늘었다. Cool! すごい! 끊이지 않는 감탄에 9동 1층 D방은 복단대 유학생들에게 Before&After 확실한 방으로 자리매김했다.


하루 종일 집을 그리워하던 나는 이미 엄마와의 통화에 "이곳이 떠나기 싫을 것 같아."라고 선을 그었고, 9월 내 울던 나의 전적은 친구의 10년짜리 놀림거리로 남았다. 컵라면과 라면으로 겨우 이어가던 나의 끼니는 한국에서 날아온 택배의 전기밥솥과 미니 팬 하나로 여느 '쿡방' 부럽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3평도 안 되는 방에 정확히 침실, 책상, 부엌이라는 공간구분을 해 놓고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잘 지켜가며 어엿한 자취생으로 변모했다.


KakaoTalk_20161003_135614479.jpg
KakaoTalk_20161003_135614853.jpg


한 칸짜리 서랍만 한 냉장고 안을 엄마께서 보내주신 밑반찬과 내가 사들인 각종 식재료로 채우고, 요구르트와 요구르트, 우유까지 일단 다 맛은 본다는 주의 하에 매일매일 꽉 찬 냉장고를 보며 일명 '주부 마음'을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부터 과일 좋아하시는 엄마께 자라 사시사철 과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내게 과일 많고 값싼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보고 배운 건 있어서 잘라서 일회용기에 포장 해 놓은 과일엔 손이 안 가는 것을 어쩌나. 내 머리통보다 큰 하미과(哈密瓜:멜론)를 사다가 대야에 놓고 소분해서 락앤락 3통에 채워 랩을 씌워 차곡차곡 넣어놓으면 보고 있어도 푸짐, 먹을 땐 편리한 배부름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사실 규정 상 방 안에서는 취사가 금지되었으나 창문과 베란다 문을 다 열어놓고 몰래 지어먹는 밥의 맛이란! 먹어본 자만 알 수 있으렷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요리들을, 한국 집 주방 너머, 엄마 어깨너머 본 것이 이렇게 나올 줄이야. 엄마는 내가 보내는 사진을 볼 때마다 연신 "잘해먹고 사네.", "어쩔 수 없는 내 딸인가 봐." 하시다가도 "이제 엄마가 필요 없겠네."하는 아쉬움 담긴 말씀을 하셨다.




걸어서 상해 속으로

개학 전 시험을 통해 반이 배정되는 시스템의 유학생 반은, 반마다 과목과 시간표, 수업 일정이 조금씩 달랐다. 나의 첫 학기 반 H와 다음 학기 J 반은 모두 아침 일찍 수업이 시작해 점심 즈음 수업이 끝나는 일정이었다. 상해의 1교시는 8시에 시작이었는데, 자전거를 타면 난폭운전으로 13분 만에 수업이 있는 건물에 닿을 수 있었다. 머리 감기와 화장 따위는 생략하기 물론이거니와 학기 말쯤, '왜 가까이 사는 학생들이 지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공감하게 된 나였다.


점심 즈음이면 해도 화창하고, 일찍 일어나 수업에 온 덕에 오후가 통째로 주어졌으니 ― 이것이 교환학생이 누리는 자유란 말인가! 우린 미처 못 잔 아침잠을 낮잠으로 대신하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월요일만 세일하는 버거집과 회원가입을 하면 10프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빵 집, 신메뉴가 나왔다는 밀크티를 맛보고, 자전거와 도보를 번갈아 가며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아, 물론 하루 한 끼, 적어도 이틀에 두 끼 정도는 나의 자취 음식을 먹었지만)


그렇게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때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나서다 보면, 찬 바람이 가라앉은 상해의 모습이 하나둘씩 눈에 보였다. 그러다 상해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주말여행 포스터가 보였고, 나는 고민 없이 등록했다. 친구들과 모여 다니다, 혼자! 나서는 첫나들이였는데 무려 기차를 타고 상해 밖으로 나서는 제법 긴 여정이었다.



01b5f601e3a13576f9241e53f18a4bd043d7d14eb7.jpg
01dc6f2afae95f5bdec573f4ed52296fa59b2da351.jpg


상해에서 기차로 어언 1시간 반여, 그곳엔 시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해에도 주가각이 있기는 했지만 스무 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가기엔 교통편이 너무 불편했다. 수향 마을(水鄕)은 물가에 있는 마을로 시탕은 그중에서나 사계절 다른 경치와 고즈넉한 예스러움을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마을이었다.


말이 기차로 1시간 반이지, 나의 대학교 복단대에서 기차역까지 1시간 이상, 기차역에서 다시 시탕까지.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타 1시간이 훌쩍 넘게 다시 가야 했으니 어언 4시간이 훌쩍 넘는 여정이었다. 가만 보자, 4시간이면 광주에서 서울을 가는 시간이란 말이다!


아침 일찍 나 공복으로 3가지 교통수단을 번갈아 탔으니 모두가 진이 빠질 때로 빠졌다. 그러나 막 여름이 물러간 시탕의 풍경은 정신없는 번화가가 가득한 대도시 상해와는 또 다른 기분을 선사했다. 큰 화려함이나 볼거리 없이도 둥그런 다리가 놓아진 수교 위에서 바라 본 마을 전경은 나의 교환학생 시절 BEST 10 안에 드는 한 '폭'이었다. 수다 떨고 함께 사진 찍고 군것질할 친구들이 주변에 없다는 게 아쉽고 낯설었지만 혼자 거니는 이 마을이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을 줄이야.


01a9e0b6c20388b57d53c3ad77fcba8e2ef135ae05.jpg
01c3b8f14107768f7cfe7a03d0fe366431cf2c870e.jpg
01ffde4b6d31ed4a68bc2b9722710d8a3e5e55edc0.jpg


어색함도 잠시, 새 카메라를 들고 나선 첫 여행이 출사가 되었다. 프레임 가득 차는 예스러움이 지난 두 달을 복기시키며 파란만장했던 사건사고를 생각나게 했고, 믿기지 않지만 어느새 헛웃음이 터뜨리며 그 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01ad7d6c96d23a5c23b5c4e81807db5088d107d430.jpg
01dc6f2afae95f5bdec573f4ed52296fa59b2da351.jpg
01f4b7d078e380006cd743079542d3264b075a970e.jpg
0163659ff8f48220e6961cc9c9d68e2ddf2dfa9b74.jpg







누군 영어가 아닌, 중국어를 공부한다기에 의아해했다.

누군 전공도 아닌데 상해로 교환학생을 간다기에 걱정스러워했다.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언어와 행복에 대한 확신만을 안고 이곳으로 떠나왔다.


그리고 매일 아침 시작하는 5시간의 수업이 중요하지 않았다.

낯설고 힘들고 외로워 울던 어느 날 밤, 난 엄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중국어가 한 마디도 안 늘어서 돌아가도, 난 많이 배우는 거야. "

그래서, 진짜 수업은 수업이 끝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서툰 언어로 점심을 주문하고, 커피 메뉴를 혼동해 카페 모카가 눈 앞에 나와도, 색깔과 모양으로 식재료를 골라 그저 그럴듯하게 음식을 해 먹는 것도 공부였다. 이곳에선 '한 끼 잘 먹는 것' 그것이 공부의 시작이었다.


빨래통에 던져 놓으면 개어져 나오는 엄마 곁을 떠나,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고르는 것부터가 일인 이곳, 빨래 더미를 지고 건물을 옮겨 동전을 넣고 빨래를 하던 일. 가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 하루에도 수 십 개가 쏟아지는 이 곳에서, 그저 아침을 잘 먹고 점심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가지런히 하루를 정리하며 푹 자는 일. 그것이 모두 공부였다.










매거진의 이전글10月, 처음 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