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月, 이별식탁

남는 것은 사진과 사람

by 아씨

상해의 겨울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제 뭐 좀 해보려니까 금세 해가 져버리고 만 것. 지난 10월과 11월이 그러했다. 적응을 마치고 나니 두 달이 주말 이틀처럼 지나가 버렸다. 11월은 특히나 유난스러웠는데, 비 한번 제대로 뿌리지 않던 상해에 줄곧 비바람이 몰아쳤다. 시원하게 내리는 폭우면 속이라도 시원하겠건만 하루에도 우산을 10번도 접었다 폈다 반복,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게 한 달 동안 해 뜬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빨래는 고사하고 우리는 단체 우울증을 호소하곤 했다.



겨울이 온다는 것은,

이렇게 한 바탕 비바람이 지나가자 상해엔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것은 곧 이별의 시간을 의미했다. 보통 교환학생이나 자비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한 학기 즉 4개월 남짓이면 돌아가고 만다. 나는 좀 이례적으로 1년 파견된 경우였고, 그것이 내가 상해를, 복단대를 선택한 큰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 반(H班)은, 높은 반에 속했는데 그래서인지 화교 친구들이 많았고 직장생활을 하거나, 석박사 과정 중에 있거나, 회사에서 파견하여 보낸 경우도 더러 있었다. 자연스레 반 구성원들이 참 다양했다.

캐나다 화교 제일 어린 Zi yun은 매일이 파티 타임, 참 긍정적인 막내였다. 사실 막내답지 않은 막내로 우린 그녀가 18이란 사실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장난기 많은 이탈리아 청년 Steve와 제일 먼저 이별했던 이탈리아 Amigo Fede! 그녀의 마지막 수업 날, 날 꼭 안아 사진을 찍는데 덜컥 눈물이 나는 게 아닌가. 지금도 가끔 엽서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사진을 보내주는 그녀다. 곧 중국어 교원으로 다시 중국에 간다지. 몇 번 안되지만 즐거운 식사와 afternoon tea를 함께했던 Viv는 낯을 가리는 영국 아가씨이다. 친해지면 보기보다 털털한 그녀는 한국에 한 달간 짧은 유학을 왔었으나 배고파와 오빠 두 단어만을 익혔다고.


일본 친구들이 빠지면 섭섭하다. 반 구성원 중에서 40%는 늘 일본인이었는데, '전형적인' 아재 일본인 Shun さん. 때론 유럽 친구들보다 더 신사 같고 예의 바르며 본인만 본인이 웃기는지 모르는 우리 반 반장이다. 조금 특이한 개그 코드와 취향을 가진 일본 친구도 여럿 있었다. 나와 난징 여행을 함께하고, 과제와 발표, 사적인 수다까지 함께한 Kanako는 내 교환학생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특별부록 같은 친구다. 일본의 카레 회사에서 일하며 파견 유학을 나온 Yutaka 언니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이를 알 수 없었으나 날 데리고 미술관도 가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신 와이탄 데이트는 잊을 수 없다!




이별식탁

12월은 거의 모든 이들과 이별을 했다. 나는 1년을 남아있기에 주로 그들의 출국 일정과 마지막 식사 약속을 달력에 채웠는데, 나중에 보니 12월 한 달이 꼬박 '이별식탁'이었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나면 아쉬움에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이튿날 아침 양치만 하고 뛰어나가 택시에 오르는 그들을 배웅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첫 학기엔 우리 반에 나를 제외하고도 7명의 한국인이 있었는데(그런데 다음 학기엔 우리 반에 한국인은 나 하나뿐이었다!)그들과의 이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말이야 한국에서 보자, 서울에서 보자였지만, 돌아가면 각자 생활이 바빠지고 또 그러다 보면 뜸해지는 게 부지기수니, 떠나는 사람이야 일본인이든 헝가리인이든 한국인이든 그 무게는 같았다.


어느 겨울 밤, 와이탄

마지막으로 떠나는 친구와 와이탄(外滩)에서 밥을 먹고 커피가 식을 때까지 한참을 얘기하다, 친구는 기숙사가 아닌 공항열차 근처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그리하여 같이 왔던 곳에서 늦은 밤 나 홀로 기숙사에 돌아가던 날 밤.


자주 보던 거리였고 늘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괜히 더 춥고 쓸쓸하더라. 매 식사가 누군가와는 마지막이었고 아쉽고 허전했지만, 이튿날 또는 다음 주 아직 누군가와의 식사가 남았단 사실에 그 공허함이 조금은 매워졌는데,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작별을 하고 나니 맘이 텅 빈 듯했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잤는데, 이제 이 기숙사 반경 1km 이내에 나와 함께였던 친구들은 다들 본국이거나, 외국이거나, 비행기 안이라는 생각에 침대 위에 누운 나는 문득 외로워졌다.


어쩌면, 상해에 덜렁 나 혼자 왔었던 지난여름보다 더 진하고 더 깊이 그렇게 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