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도 부끄러움도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게 만드는 에너지라는 것을
별 헤는 밤 .................................................................................................윤 동 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하늘이 전체 시야의 2/3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 별을 바라본다는 것은 행복한 사치이다. 더욱이 맑은 날에 천체망원경으로 바라본 것처럼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 박혀있는 것을 바라볼 때면 황홀경마저 느낀다.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까닭 모를 서글픔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움의 끝에서 슬픔을 사모하는 것도 아닌데.
별은 그리움을 느끼게 해주는 나만의 아지트이다. 잊혀 간 어린 시절,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던 시간들, 함께 부대끼며 인생을 엮여갔던 친구들, 가족, 이웃들의 이름을 서서히 불러보게 만드는 매혹적인 매개체이다.
별을 바라보며 즐기던 이름 부르기 놀이는 애초부터 나만의 비밀 놀이는 아니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아픈 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별바라기로 별밤지기의 모습으로 이름 부르기 놀이를 했던 애틋한 청년 시인이 있었다.
난 그 시인을 참 좋아해서 그 시인의 향취가 남아있는 곳에 무던히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윤동주 시인 좋아하는 사람은 연대에 가세요'라고 말씀하셨던 국어 선생님의 말씀에 흥분하여 한때 연대 국문과에 진학할 것을 꿈꾸며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입시를 코 앞에 앞둔 어느 가을날. 무작정 신촌에 가서 연세대학교 백양로를 거슬러 올라가며 윤동주 시비가 있는 곳에 가서 한동안 몸과 마음을 고정시킨 시간들.
비록 그 학교 학과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이라도 윤동주를 닮은 연대생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냈던 풋풋한 나의 청춘들이 있었다.
연수 때문에 중국 연변에 갔을 때에는 용정에 있는 윤동주 기념관에서 마치 과거의 윤동주 시인을 만나는듯한 가슴 벅찬 시간들도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거의 암송하다시피 읽어 내려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은 나의 보물이었다. 친구들은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을 좋아하며 흥분할 때 난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사진에 매료되어 문학소녀 코스프레를 했었다. 그렇게 보낸 시절 하나하나가 지금 돌이켜보면 낯 뜨거워울만큼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 부끄러움은 어쩌면 덜 익은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와 멋모르는 앳된 청춘들이 발산하는 복숭아빛 부끄러움일 테니까.
그 그리움과 그 부끄러움을 이제 중년이 되어 또다시 곰삭이며 내뱉는다.
영화 '동주'를 남들보다 한참 뒤에 보게 되었다.
부끄러움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라는 시인답게 영화 내내 그 부끄러움을 드러낸 동주와 배우 강하늘 씨의 모습은 영화로 만난 또 다른 나의 자화상이었다.
친구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나눈 수많은 대화들 속에서도
자신의 시를 향한 몸부림 속에서도
자신의 시를 좋아하는 여인들 앞에서도
쓰라린 시대 앞에서도
감옥에서도
그 부끄러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분신이자 그 자신이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부끄럽게 만들었을까?
왜 그렇게 부끄러움을 온몸이 타들어가듯 느끼며 살았을까?
시대가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시인 동주.
영화 속에서 그는 정지용 시인과의 대화에서 부끄러움에 대한 단상을 가지게 된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감옥에서 서명을 하는 장면에서
동주와 몽규는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부끄러움을 절절히 표현해내었다.
그 부끄러움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또 다른 부끄러움을 일구어냈다.
시대 앞에서
청춘 속에서
인생 가운데서
아파하며 고뇌하며 잃어버린, 잊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향한 절대 부끄러움을 똬리 틀어대며 절규하듯 뿜어낼 때 비로소 직면하게 되는 나 자신의 부끄러움.
별 헤는 밤이 올 때마다 그리움으로 몸서리친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하여 나에 대한 연민이라는 샛길로 가기도 하고
시절에 대한 향수로 빠지다가 외로움의 막다른 골목에서 포효하기도 한다.
나만이 처한 감옥에서
서글프게 아름다운 심상을 가지고 별 헤는 밤의 시를 읊조린다.
그리고 몇십 년이 흘러 부끄러움을 분개로 표현한 시를 만났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데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류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개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
(중략)
.
.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세월호 1주기, 2주기를 보내며 서서히 3주기를 앞둔 2016년 전반기 마지막 날.
세월호 때문에 또 부끄러움을 풍상으로 각인시켜야 하는 시간이었다.
영화 동주에서 도쿄 릿교대 다까마쓰 교수와 동주가 시인 워즈워드의 사상에 대해 나눈 대화.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개개인의 깊은 내면의 변화들이 모이는 힘
이는 몽규의 당차고 묵직한 뜨거운 움직임과 다른 행보로 자신만의 민족과 조국을 향한 잔잔하고 뜨거운 움직임에 대해 동주 스스로 상대적으로 가지고 있던 나약함에 대한 성찰과 자그마한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말이었다.
미미하지만 시를 통해 문학을 통해 나가고자 하는 자신의 나아가는 길에 뿌려지는 들꽃 같은 생명력이었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나를 포함해서- 은 영화 속 감상의 부끄러움을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부끄러움으로 만드는 일에 치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적어도 그 영화를 본 감상과 책임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먼 곳에 떨어져서 들리는 고국의 소식들은 한결같이 우울하다.
그 우울함을 달래고자 별 헤는 밤의 시를 까발리듯 외워보아도 쉽사리 새벽은 찾아오지 않는다.
너무나 멀리 있는데 나 역시 부끄러움에 내 이름자 덮어버리고 싶은 가냘픈 욕망만 꿈틀거리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리움과 부끄러움은 범벅이 되어 내 마음속 심연의 세계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만들어 내고 싶어함을 이젠 이름 부르기 놀이로 붙들어놓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끄러움.
가만히 있기만 한 부끄러움.
그것을 그리움으로 치환하여 살아가는 하루하루.
못내 그리운 것은
그리움의 대상을 새롭게 만나기 위한 무한한 에너지원이다.
부끄러움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반복적인 살떨림 역시
더 이상 부끄러워야 할 내용이 부끄럽지 않기 위한 흔들림이다.
부끄러움이 분노와 좌절로 둔갑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나는 진정한 부끄러움을 위해 부끄러운 내 삶을 저항하며 살리라. 그렇게 살아내고 하루하루 버틸 것이다.
반 고흐가 붗칠로 자신의 삶과 꿈을 현실에 저항하며 마구마구 그려냈듯이.
그리고 하나 더.
이 시간에도 영혼이 비틀어질 만큼의 그리움으로 불려지는 이미 304개의 별이 되어 버린 그 이름들을 조심스레 불러본다.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한고운,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유림,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훈,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무, 홍순영,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박새도,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전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곽수인, 국승현,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면,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형우, 제새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고하영,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유니나, 전수영, 김초원, 이해봉, 남윤철, 이지혜, 김응현, 최혜정, 강민규, 박육근, 김순금, 김연혁, 문인자, 백평권, 심숙자, 윤춘연, 이세영, 인옥자, 정원재, 정중훈, 최순복, 최창복, 최승호, 현윤지, 조충환, 지혜진, 조지훈,서규석, 이광진, 이은창, 신경순, 정명숙, 이제창, 서순자, 박성미, 우점달, 전종현, 한금희, 이도남, 리샹하오, 박지영, 정현선, 양대홍, 김문익, 안현영, 이묘희, 김기웅, 구춘미, 이현우, 방현수....
아직도 배 안에서 나오지 못한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이영숙, 조은화, 허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