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더호프 공동체, 세븐 시스터즈, 묵은지 같은 벗
살다 보면 위로가 몹시 고플 때가 있다. 뭔가 꼭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저 답답하고 힘든 마음으로 꽉 막힌 상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내 인생 넋두리를 누군가가 조용히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이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으로 버티면서 지내는 때도 있다. 모두 다 위로의 목마름이 커지는 경우다.
하지만 이내 위로의 목마음이 해갈될수록 더욱더 효과가 큰 해갈의 방법을 찾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던가?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난제 같은 명제 앞에 조우해야 하는 일들을 품고 있다.
그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펼쳐지는 내일을 향하여 숨을 크게 내쉴 수 있는 원동력은 크고 작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이 년 전 묵은지 같이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지는 친구와 친구의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공동체를 찾아갔다.
배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 남동부 해안도로를 차로 달리는 길은 참 아름다운 여행길이었다.
네덜란드와는 조금 다른 고속도로 풍경.
유채꽃이 고속도로 양 길가를 가득 메우던 아름다운 노란 꽃길.
역주행하는 기분으로 조심조심 다녀서 그런지 처음 본 영국의 풍경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아 그런지 무척이나 다소곳한 매무새와 추임새로 여행길을 달렸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차폭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을 가졌으나 이내 익숙해져 버리는 것은 자기 본능 속에 삶을 영위해 온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것마저도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이니까'라는 기분 좋은 뻔뻔한 슬로건.
맑고 푸르른 동네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
다벨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그러한 풍경 속에 있었다.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절로 느껴지는 그들의 태도와 환영의 인사. 우리가 머물 숙소에 차려놓은 웰컴 쿠키와 웰컴 카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위한 빵과 우유와 과일. 친구의 손글씨로 직접 꾸며진 환영인사 팻말.
구겨지고 삭히고 뭉겨진 세월을 살다온 찌그러진 그간의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바로 이 분위기에 동화되어버린다.
환영받고 있구나.
나와 나의 가족들을 기다리고 즐거이 마중 나와 준 친구와 공동체의 마음은 방구석 구석 스며들어있었다.
금세 난 저들과 한마음이 된다.
대학시절을 함께 보내온 소중한 친구였다. 나는 내 아버지 병간호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친구는 남자 친구(지금은 남편이 된)가 어머니의 간병 때문에 절절하게 살아가던 시절이었기에 서로에게 공감대가 될만한 여러 가지 나눔 거리가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함께 먹고 웃고 놀러 다니던 추억부터 수많은 추억을 공유한 것이 우리들을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이다. 꿈과 비전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과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그런 친구를 도대체 십여 년 만에 만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게다가 우리의 재회 장소는 무소유와 나눔을 실천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였으니 얼마나 더 각별했을까.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재세례파의 후예들이 사회와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모인 이들이다. 이 아름다운 공동체에는 몇 가지 주요한 원칙들이 있다. 공동소유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일을 통해 서로를 섬긴다.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지만 풍성한 나눔이 있는 공동체이다. 절대 서로를 험담하지 않고 배려하며 약한 자를 성심으로 돌보고 섬기며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초대교회 공동체와 같은 거룩한 모습이 살아있기까지 보듬어 안고 아파하고 헤쳐 나가야 할 일은 많았지만 맑은 영성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그들에게는 일상이자 현실이고 현재이다.
내 친구와 그 가족은 모두 한결같이 푸르른 물 같다.
이들을 만나 며칠 동안 함께 지낸 것이 큰 행복으로 기억된다.
십여 년의 공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만큼 우리는 만나자마자 바로 수다를 떨었다. 그 친구나 나나 모두 네 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더욱더 할 말이 많았다.
수년 동안 침묵하던 이가 말문이 터지자 쏟아내는 말처럼 우린 끊임없이 떠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살짝 울컥해진 마음조차도 웃음으로 넘겼다.
특별히 내가, 친구가, 맘 속 깊은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우린 이미 하나였다.
뭉근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맛이 어우러지듯
우리들은 뭉근한 세월을 서로 입맛 다시듯이 말로 표현해내었고 이미 우리들은 서로에게 최적화된 해석자였기에 자동번역기가 절로 작동되는 수다 꽃을 피워냈다.
그 시간 동안 채워진 마음속 깊은 연대감.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기에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에서 느끼는 안도감.
어떻게 하면 더 잘해줄까라는 안달하는 마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대접 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대접을 기꺼이 즐겁게 누리는 마음속에 남은 인생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된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진정한 공동체에는 환대와 격려와 나눔이 있다고.
이는 내가 누린 위로 중 가장 값진 위로에 속한다.
오랜 세월 친구라는 공동체로 이어져 온 친구의 환대,
친구가 속한 공동체의 따뜻한 손님맞이,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공동체 생활에서 일을 통한 격려.
우리의 마음과 삶이 나누어진 그 공간.
3박 4일 동안 짧았던 공동체 방문의 마무리는 친구가 소개해 준 곳으로의 깜짝 여행이었다.
브라이튼에 있는 하얀 석회암 절벽으로 유명한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
보자마자 함성을 내뱉고
절로 탁 트인 몸과 마음.
세븐 시스터즈에 우리 딸내미까지 합하면 일레븐 시스터즈가 되어버린다.
자연은 늘 나를 맞이해준다. 아니 거절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열려있기에 자연이 나를 환대해준다고 느낀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다는 흔해빠진 표현 때문이 아닌.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그 존재함이 나를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자연이 좋은 것이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 불변하는 대상을 염원하고 있는지 모른다(물론 절대자를 제외하고 직접 부대낄 수 있는 대상). 그 대상이 엄마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부인이기도 하다. 때로는 성숙이란 가면 속에 스스로 속물로 변할지라도 시금석같이 맑고 깨끗한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그 대상을 자연에서 찾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떠나고 싶어 하고 떠나서 만나고 실망하더라도 그 기대감 때문에 또 찾아 떠나는 오늘날의 파랑새 찾기 놀이를 끊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자연도 늘 변한다. 저렇게 거대하고 불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하얀 석회암 절벽의 절경은 무수한 세월과 자연의 풍화작용이라는 지대한 결과물이다. 그 어느 한 시점에 서서 불변의 이미지를 맞딱뜨리는 순간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감동을 받고 좀팽이처럼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연이 날 환대해주는 방법이다.
그런 자연에게서 무한 위로를 받고
이젠 다시 위로가 필요한 다른 이들을 환대하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