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보이는 것처럼 느끼고 나가기 위하여 필요한 믿음
목적지까지 10분 남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는 내내 이정표도 안내표시도 하나 없이 왔는데 근처에 왔지만 목적지를 짐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있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은 오히려 전혀 엉뚱한 길로 인도했다.
산길처럼 보이는 샛길로 가라 하길래 그곳으로 갔더니 목장으로 연결되어 아예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방향을 향하여 길을 조금 돌아갔다.
한참 가니 대강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덥지 못한 안내를 받으며 계속 미심쩍어하며 네비게이션의 지시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가는 내내 이러한 길을 지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가면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들이지만...
목적지까지 5분 남았다.
여전히 아무 징조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 꽤 익숙해 있는데도 내심 불안하다.
나타나기는 나타나는 것일까?
우연이든 아니든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다닐 때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이다.
분명히 이 근처인데.
지금쯤이면 뭔가 분위기라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독일에 있는 어느 작은 수영장을 찾아갈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이런 삭막한 고속도로 옆에 무슨 수영장이 있을까 싶었다.
조금 들어가니 사방팔방이 나무로 덮인 작은 숲인데 여기에 수영장이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볼거리가 쏠쏠한 박물관이라 찾아가고 있는데 주변은 그냥 시골길.
남의 속도 모르고 목장에는 양과 소들이 풀만 뜯어먹고 있다.
상식적으로 목적지까지 10분 아니 5분 정도 남았으면 뭔가 좀 보여야 하지 않나?
거의 3분 아니 1,2분 남기고 그제야 윤곽이 드러난다.
때로는 그 윤곽도 안 드러나고 정확하게 목표지 인접한 곳에 간판도 안내표시도 없는 그곳에서 목표물을 발견할 때가 허다하게 많았다.
낙엽이 깔린 철로 위를 달려가는 기쁨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그날도 그러하였다.
벨기에의 디낭(Dinant)에 있는 안헤이(Anhee)에서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찾아가는 여정은 여느 때처럼 불안반 기대반으로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만 했다.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
그곳에 이르자마자 아이들은 그동안 못내 불안불안한 마음을 하소연하듯 ' 와!"하는 탄성과 함께 뛰어갔다.
추운 줄도 모르고 피곤할 줄도 모르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더라.
전날까지 비 오고 천둥 치고 시끄러운 날씨였지만 다행히 레일바이크를 타는 날에는 해도 간간히 나타나기도 했다.
신나게 신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금 전까지 어떤 마음으로 찾아갔는지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전혀 불만 없이 지금의 시간들을 누린다.
레일바이크를 돌려가며 가을을 느끼기도 하고 낙엽도 긁어모았다가 흩뿌렸다가 그런 단순한 놀이에서 쾌감을 얻는다.
자연과 함께 즐기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쌓아가는 추억의 시간은 때로는 인생을 새롭게 발견하고 다져가는 시간이다.
인생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참으로 넘쳐나 있음을 조금만 물러서서 또는 비껴 서서 바라보면 여지없이 발견하게 된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종착지에 내려 숲길을 지나가면 수도원이 나타나고 작은 놀이터가 있다. 여기서 놀다가 다시 레일바이크 타러 간다
인생의 목표, 소망, 원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고
아예 그 가망성조차 더 멀리 사라져 버리는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불투명하고 더 돌아가는 것 같은
버텨야 하고 통과해야 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의 차오름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과 선택을 위로하며 그 믿음을 고수하면서 끝까지 가봐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감격의 시간들이 어쩌면 인생 내내 따라다니는 고질병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간절함이 클수록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은 더더욱 길다.
아이들은 이런 시간의 비밀을 배웠을까?
무수히 엄마와 함께 동행하며 이 숨바꼭질 같은 시간 싸움에서 깨닫고 받아들여야 하는 인생의 냉정한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종종 아이들은 이렇게 재잘댄다.
엄마 끝까지 가봐. 그럼 나타날 거야.
엄마 저기 건너편에 수영장 보여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아이들 눈에는 의심하지 않는 기대감 때문에 보이나 보다).
여기 지나면 나올 것 같아.
그래 오늘도 너희들이 이겼다.
너희들이 늘 엄마를 인도해준다.
과거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현재를 사는 너희들은 미래까지도 엄마에게 보여준다.
신비로운 공감이다.
원래 수도원 가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레일바이크 타고 다시 출발지로 가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수도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때론 예기치 않게 주어진 시간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보다. 인생이.
P.S. 우리의 역사도 이러하리라 믿어 마지않는다. 때로는 돌아가고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불안한 일들이 계속 일어날지라도 버티며 나가고 또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가을 여행을 곰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