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득일까 실일까
2년 전 어느 날 친정엄마가 내게 말씀하셨다.
느그 아버지는 자다가 무슨 일 생기면 돌보는 사람들이 연락이라도 해주지
난 자다가 무슨 일 생기면 누가 연락해주니?
당시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셨다. 그래서 친정엄마 혼자 지내고 계셨다. 몸이 멀쩡할 때는 잘 지내시지만 감기 기운만 있어도 활동 양이 팍 줄어들고 힘겨워하시는 70대 독거노인이시다.
그동안 나 사는 것이 바빠 친정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오랜 병상생활로 인해 친정엄마가 감당하셨을 어려움과 힘겨움만 짐작했지 새롭게 바뀐 환경에서 다가 온 또 다른 불안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그 후로 친정에 더 자주 가서 불안한 엄마의 마음의 고통을 분담했다. 가서 잠만 자고 올지라도.
한 달에 한 번도 오래간만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 달에 한 번은 자주 찾아왔다.
엄마 모시고 동생들과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 만나러 가는 날에는 유독 기운이 빠져서 돌아오기도 했다.
뭔가 하나씩 안 좋아지시는 아버지의 건강 때문인지 익숙해질 법한데 익숙해지는 것이 왠지 더 두려운 무언가의 나쁜 것에 대한 무감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는 앉아 있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다. 종일 누워 있는 것도 힘들다고 하셨다.
엄마를 보아도 아들을 보아도 딸을 보아도 안부 하나 묻지 않고 어디 아프다는 말과 뭐 먹고 싶다는 말 몇 마디 이외는 일절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말하기 힘들 만큼 힘드셨던 것 같다.
차츰 욕창이란 것이 아버지에게 생겨났다. 아픈데 아픈 것을 모르시는 것인지 아프다는 말을 잊어버리셨는지 아님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드신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말씀을 거의 못 하시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내가 느끼는 것까지가 자아'라고 말했던가?
「멀고도 가까운」이란 에세이를 쓴 리베카 솔닛은 그리 말했던 것 같다.
울 아버지의 자아는 그 시절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객체였던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인식도 그 무렵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마지막 부분에 근접한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 한 자락이 떠오른다.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아픔을 느끼는 통각이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지표가 된다. 통각을 포함하는 촉각을 상실한다는 것은 존재가 속한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래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한센병 환자들의 맘고생은 이중삼중이 된다고 한다. 편견 때문에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살아가는 고독한 고통과 아파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상실의 고통이 살아도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극도의 소외감 경지까지 이르게 만든다.
작년에 친정엄마는 쇄골 봉합 수술을 하셨다. 의자에서 떨어지셔서 쇄골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대수술이다.
생살을 찢고 생뼈를 잇는 것이 너무 아프니까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아니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거듭 이야기했다. 노인이시라 전신마취 이후에 깨어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는데 전신마취에서 깨어나 정상을 회복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 다리를 꼬집거나 손을 살짝 때리거나 해서 엄마가 아프다고 소리를 외치는지를 살펴야 했다.
친정엄마는 통증을 없애는 것과 통증을 느껴야 하는 상반된 작업을 하루 동안에 감내하셨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 정상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처럼 아프다고 투정 부리시는 엄마의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
아프다고 말씀하시니 엄마의 살아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