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딸랜드 Nov 17. 2019

결사적인 손내밈, 손뻗침.
이것은 손으로 하는 절규

손 절규 하나.


무슨 사연인지 두 사람은 헤어지고 있다. 

여인은 이제 출발하는 기차 안에 있고 그를 사랑하는 남자는 좀처럼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출발하는 기차를 쫒아 뛰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열린 창문을 통해 손을 내밀고 손을 뻗치고 있다.

마지막 한 번이라도 손을 잡고자 하는 그들은 호흡조차 가빠져서 말할 수 없어 오로지 손만 내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을 듯 말 듯할 때 영화는 끝이 나거나 드라마는 엔딩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한동안 광복절이나 삼일절에 방영하는 특집 드라마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아들이나 남편 또는 애인이 마차나 군용차 트럭에 실려 있을 때 그들을 차마 보낼 수 없으니 저항과 절규의 몸짓으로 손을 내민다. 한 번 만이라도 더 손을 붙잡으려고. 


손 절규 둘.


작년 크리스마스 때였다. 방학을 앞두고 가족들이 있는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 계신 요양원에 갔었다. 우리들을 알아보시는 것 같기는 한데 아는 척은 하지 않으셨다.  숨소리가 무척 힘겹게 들린다. 여느 때처럼 드시고 싶으신 것을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넋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셨다.

얼마 전에 호흡 이상으로 응급실 다녀오신 여파 때문인지 휠체어에 앉지도 못하시고 침대에 누워만 계셨다.

우리들이 건네는 일방적인 대화만 이루어졌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기에 머쓱해서 또 아버지가 힘겨워하셔서 그만 집에 가기로 하고 헤어짐의 인사를 하고자 했다.


갑자기 그동안 기운도 없고 숨쉬기도 힘들어서 말도 못 하시던 아버지가 불쑥 손을 내밀어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어디서 그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순간 이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손길과 눈빛 아닌가 라고 직감했다.

엄마와 동생들은 한국에 있지만 난 곧 네덜란드로 가야 하니까 내 손만 잡으신 것이다. 

난 한 달 뒤에나 다시 돌아오기에 그때가 아버지와 내가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아버지도 직감하신 것이다. 

한참 동안 내 손은 아버지 손에 붙들렸고 나 역시 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체온이 담긴 따뜻한 손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첨지가 아내의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반동적으로 일부러 늦게 집에 들어가는 행동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지금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아버지에게 '아빠 사랑해'라고 말해야 하는데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서 그냥 '아빠 다음 달에 올게. 그동안 건강하게 지내요'라고만 말했다.

끝내 '아빠 사랑해'라는 말은 못 했다.



손 절규 셋.


아이들 예방 주사 맞게 할 때마다 곤혹을 치렀다. 무섭지 않아 괜찮아라는 뻔한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한 번도 주사 맞은 적이 없는데 (기억 못 하는 영아 시절을 제외하고) 남이 주사 맞는 광경만 보고도 공포심을 느낀다. 어쩜 네 명이 한결같이 주사 맞을 때 한 손은 꼭 엄마 손을 붙들고 있다.

엄마 손 붙들고 있으면 주사 맞을 때 덜 아픈가 보다. 



손 절규 넷.


방학 때마다 나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신파극을 연출한다. 즐겁게 아이들을 보내주려고 일부러 맛있는 거 먹고 웃고 내일 또 볼 사람처럼 경쾌하게 말하고 인사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간다.

분명 잘 가 안녕하고 인사했는데 아이들은 계속 뒷걸음쳐 돌아온다.

또 뽀뽀하고, 또 안아달라고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손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손 내밀어 손가락 찍고 그리고 손을 흔들어댄다. 


손으로 하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여운이 오래간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간다. 




이전 07화 화장품 살 때 텍스처 중히 여기시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