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일상을 만들어 내는 도시의 거실인 핀란드 오디 도서관에 반하다
자작나무 요정이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니?"
"내 소원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이야"
자작나무 요정이 물었습니다.
"두 번째 소원이 무엇이니?"
"내 소원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이야"
또 자작나무 요정이 물었습니다.
"그럼 마지막 소원은?"
"음...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 100년 기념으로 기념비적인 도서관이 생기는 것!".
스웨덴은 무려 650년 동안, 러시아는 108년 핀란드를 속령으로 삼아 지배했다. 핀란드는 지난한 역사의 굴곡을 품고 저항과 내전의 역사를 거치는 중에 러시아 혁명을 틈타 1917년 12월 6일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한다.
2017년 12월 5일-6일 이틀 동안 "Suomi 100 Finland" 이름으로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불꽃놀이와 Blue and White light show가 핀란드 전역에서 이루어졌다. 이 뿐만 아니라 핀란드 음악의 거장 시벨리우스를 앞세운 각종 연주회, 공연과 문화행사가 이루어졌고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공공기관, 도서관, 박물관, 교회, 성당, 마을 자치 단체 등 함께 독립을 기념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독립의 의미와 기쁨을 표현하는 공연과 전시와 모임이 있었다.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도 핀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 무민 원화전이 진행되었었다. 이처럼 핀란드는 자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축제로 승화시켰으며 '다 함께(Together)라는 표어의 가치를 실현시켰다.
핀란드 국기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기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청십자가가 그려진 하얀색 국기이다. 푸른색은 핀란드 하면 연상되는 파란 호수를 상징하고 하얀색은 핀란드를 덮고 있는 하얀 눈을 상징한다. 자연을 중시 여기는 핀란드인의 지성과 감성이 녹아들어 있는 국기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Helsinki), 메트로폴리스의 중심에는 칸살라스키 광장(Kansalaistori square)이 있다. 헬싱키에는 핀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시벨리우스 공원, 국회의사당, 헬싱키 음악센터, 중앙역, 키아즈마(Kiasma) 현대미술관, 헬싱키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르 알토가 설계한 아카테미넨(Akateeminen bookstore) 서점 등이 광장을 중심으로 드문드문 또는 가까이 모여 있다. 헬싱키 시민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에 새로운 명소이자 헬싱키에 온 사람은 반드시 들려야 할 핫플레이스가 생겼다.
탄생 배경도 역사적인, 국가가 헬싱키 시와 시민에게 준 독립기념 생일선물인 오디(Oodi) 도서관!
국제도서관협회 연맹(IFLA)에서 선정한 2019년 세계 최고의 공공 도서관이라는 명예를 얻은 헬싱키(Helsinki)의 오디(Oodi) 도서관은 바다 같은 푸른 호수와 하얀 눈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마치 푸른 호수 위에 떠 있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커다란 갑판 모양이랄까? 핀란드인들이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자연환경을 담아낸 그릇 같다.
Oodi는 핀란드어로 특정 사람, 사물, 사건에 부치는 시 또는 송가, 정열적인 찬가를 의미한다. 오디는 그만큼 국가와 시민으로부터 받은 독립기념 생일선물인 셈이다.
오디는 2018년 12월 5일 개관하였다. 12월 6일은 핀란드 국경일인 독립기념일이다. 특별히 헬싱키 시(市)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독립기념 100주년에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모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헬싱키 도서관을 지어 시민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730번째로, 헬싱키에서는 37번째 도서관으로 건립된 도서관으로 이미 도서관 천국의 나라에서 천상의 도서관이라는 화려한 채색옷을 입고 역사에 나타난 것이다. 나타나자마자 거대한 상을 받아 독보적인 위엄과 위용을 드러냈다.
오디 도서관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모든 이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약 20여 년 전부터 오디 도서관을 마음에 품은 수많은 시민들과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노력하여 내보인 협동작품이다.
도서관을 이용할 지역사회 시민들의 설문 참여를 비롯하여, 도서관 이름 공모,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운영, 공청회, 협의회,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합하는 절차 진행 등 기획부터 건축까지 시민 참여로 이루어진 공공참여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초기 기획안에 도서관 내에 사우나(sauna) 시설을 설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우나(sauna)는 핀란드의 대표 문화이기도 하며 로마식 목욕탕 휴식을 취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토론하는 장으로서의 이미지를 도서관 내에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였었다. 하지만 건축 진행 과정에서 공청회를 거치면서 사우나 안건은 삭제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과정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후다닥 멋진 건물 하나 짓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진행 과정에서 의견 교환을 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대단한 인내심과 협치의 노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미 핀란드인에게는 그러한 협치와 상호존중의 태도가 내면화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얼마나 오디 도서관이 대단하고 멋진가 보고 싶었다.
겨울의 막바지인 2월 중순에 헬싱키에 갔다. 유난히 애교도 많고 감성이 풍부한 셋째 딸과 함께 헬싱키 여행을 하게 되었다. 12살이 되면 엄마랑 단둘이서 가는 여행지로 헬싱키를 선택한 것이다. 사우나에 가고 싶었고 오디 도서관에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 눈이 내린 흔적들이 많았다.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린 헬싱키의 인상은 잿빛과 빗방울로 드리워졌다.
그 와중에 오디 도서관은 탁트임을 안겨 준 보석 같은 곳이다.
칸살라스티 광장에서 도서관을 찾아가는 일은 적잖게 흥분되는 일이다.
낯선 곳에서의 설렘을 안고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반대편 문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왔다.
일본 여기자와 카메라 스태프들이었다. 아마도 오디 도서관 소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처음엔 도서관보다 그들이 더 신기해서 한참 쳐다보았지만 곧 시들해져서 원래 목적인 도서관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둘째 역시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어?'라고 외치며 같이 도서관 구석구석을 살폈다.
1층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안내데스크, 에스컬레이터, 커다란 유리 통창, 곳곳의 기둥들. 가지런히 모여있는 유모차들. 조금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카페(레스토랑 겸용)가 있고 영화관, 다목적 극장, 마야딸리(예술작품 전시 공간)가 있었다. 탁 트인 유리 통창이 벽이었기에 바깥의 광장이 보이고 헬싱키 시내가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는 방법으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고 세련되게 디자인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우린 두 가지 방법으로 다 올라가 보았다. 각각의 재미가 다르고 보이는 풍광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느낀 것은 여기가 도서관이 아니라 거대한 쇼핑몰에 온 기분도 들고 문화센터에 온 기분도 들고 가족 테마파크에 온 기분도 들었다. 유모차 타고 온 아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함께 온 무리도 많았다. 주말을 온전히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다.
2층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창조적 작업이 가능한 새롭고 참신한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나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고 사서에게 문의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친구나 지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담소 공간, 그룹 스터디룸, VR room(가상현실 체험공간), 레이저 커팅기, 메이커 스페이스, 음악 영상 제작 스튜디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방, 여가 활동을 위한 공간, 워크숍, 스튜디오, 기업들의 업무 공간, 음악실, 작업실, 사진 촬영실, 게임방, 주방시설 , 3D 프린터, 재봉틀, 커팅기 등 구경거리가 많은 문화센터 같았다. 이러한 작업공간을 이용하려면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도서관에서 이런 작업을 하겠다는 발상이 유쾌한 발칙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작업을 도서관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시민들의 참여적 아이디어의 결과라는 것이다.
3층은 10만 권의 장서가 진열되어 있고 영화, 게임, 악보, 잡지 등의 자료를 보관 전시하고 있다. 책의 천국(Book Heaven)이라는 자료실이 있고 다양한 콘셉트의 방들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 이야기를 읽어 주는 방, 벽이 열리는 이벤트 방, 만화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무엇보다 3층이 오디 도서관의 백미이다. 거대한 언덕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모양으로 3층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천정이 하얗고 인테리어도 하얗기 때문에 탁 트인 공간에서 맛보는 해방감과 경이로움에 절로 흥이 난다. 사방이 유리벽이라 헬싱키 시내가 보인다. 전망 좋은 도서관이다. 아이들이 노니는 공간 역시 너무 깜찍하고 어여쁘다.
3층 잡지 서가에서 발견한 sight & sound라는 잡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유명한 '기생충' 영화의 봉준호 감독이 표지 모델로 나온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열심히 셋째 딸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핀란드인들이 주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있다.
평등, 표현의 자유, 교육과 자연을 중시하는 그들의 가치 철학은 도서관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한순간 이러한 가치들이 모든 핀란드인에게 공유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결을 기꺼이 함께 겪어내며 만들어지는 민족성과 같은 것이다.
얼핏 얼핏 도서관을 거닐면서 그러한 결을 발견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져 보석 같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까르르 웃으며 아장아장 걷고 기어 다니는 아기, 이를 지켜보는 엄마 아빠, 재봉틀 만지시는 할머니, 게임하는 학생들, 잡지 보며 집중하는 어르신들 등. 각자의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을 표방하는 핀란드 교육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관심거리가 되었다. 도서관 이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 도서관 역시 화두의 중심에 섰다. 도서관은 모두를 위한 교육의 중심 장치인 것이다. 핀란드 도서관은 법에 의해 비상업적인 사회 공동의 공간이며 시민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공공도서관을 일반시민이 자유롭게 오고자 하는 대중 시설로 만들도록 디자인하고 스스로 신문 책 읽고 세상에 대해 배우고 더 적극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만드는 교두보인 것이다.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품위를 드러낼 수 있는 도서관으로 오디 도서관은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토록 대단한 오디 도서관에 대한 평가와 극찬의 내용은 엇비슷하다.
3D 프린터기와 게임기, 안내로봇 등 같은 첨단의 장치를 가진 혁신적인 도서관, 자유로움과 개방의 공간.
핀란드 디자인의 구현, 책의 천국, 누구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확장된 도시의 거실, 자연채광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곳.
그런데 사실 이러한 장점은 이미 네덜란드 도서관을 비롯한 유럽 도서관의 특징들을 핀란드 상황에 맞게 잘 취합한 것 같기도 하다.
도서관 안에 게임기를 설치하고 메이커 스페이스를 마련한 것은 이미 쾰른 시립도서관에서 시도한 것이며, 네덜란드 도서관 곳곳에도 그러한 장치와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혁신적인 도서관 역시 유럽 도서관에 많다. 제도의 혁신과 기기의 혁신 모두를 갖춘 도서관.
아마도 유럽은 서로서로 얽혀 있는 곳이어서 정보가 공유되고 서로가 자극받기 쉬운 지리적 환경에 처해있어 그럴 수 있다. 대화와 토의를 통해 협치를 이루어 가는 문화가 어느 정도 형성된 곳이다.
오랜 세월 식민지 하에 역사를 살아낸 핀란드인들이지만 유럽 전역에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향한 핏빛 서린 역사를 공동으로 경험한 이들이기에 독립을 기념하는 일에 서슴없이 도서관을 선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인 도서관. 문화적 요체로서의 도서관을 그들은 일찌감치 체득한 것이다.
하지만 오디 도서관 개관 이후에 적잖은 논란도 있었다. 경제가 어려운 때에 10만 유로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경제적 효과의 모호성, 규모에 비해 장서수가 적은 것 전통적인 도서관 같지 않다는 이질감 등등. 그러나 막상 도서관이 광장에 들어서자 도서관에 관심 없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핀란드는 일찌감치 도서관법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나라다.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존의 관행을 과감히 깼다. 복지와 성장, 협력과 경쟁 등 다소 상충되는 두 요소를 연합하여 새로운 것을 도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걸출한 오디 도서관이 탄생한 것이다.
자작나무로 유명한 핀란드에 자작나무 요정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상상을 해보았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 되는 해에 세울 기념비적인 건물로 도서관을 구상한 그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되었지만 곰곰이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 이해가 간다. 기념비, 기념탑, 기념관에 익숙한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오디 도서관은 기괴한 발상이자 발칙한 시도지만 그 발칙함은 새로운 통로를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모두가 날마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고 창작할 수 있는 곳,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메이커 스페이스로서의 도서관. 책뿐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그 사람을 완성해 가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인 것이다.
오디 도서관은 내게 있어 창작의 장소로 기억된다.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창작하는 곳,
일상 행복 공작소 즉 창의적 일상을 만들 수 있는 꿈과 현실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공간이다.
딸아.
너는 나의 인생 책이란다.
나는 너의 참고서란다.
네가 웃고 울고 만들고 부수는 그 모든 행위는 역사가 되고 서사가 된단다.
엄마와 함께 하면 대하드라마가 된단다.
오늘 너와 내가 함께 기어이 발트해를 건넌 사건도 어쩌면 물밀듯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인생의 파도를 즐기는 유희였을 것이란다.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