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 에프텔링에서 만나는 동심과 동화의 힘
동화 중에는 유독 숲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많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빨간 모자....
그런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숲에서 사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이자 유럽에서 제일 먼저 생긴 가족 공원 에프텔링(Efteling)에는 동화의 숲(Sprookjesbos)이 있다. 에프텔링의 랜드마크이자 자랑거리인 동화의 숲은 참 아름다운 숲이다. 그 숲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동화들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 자신이 꿈과 환상의 나라를 거닐고 있음을 확인케 해주는 고마운 곳이다.
신데렐라, 용 이야기(The Dragon),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헨젤과 그레텔, 엄지 소년(The Tom Thumb),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인도의 수련,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개구리 왕자, 인어공주, 라푼젤, 빨간 모자, 빨간 구두, 말하는 동화나무 등등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동화뿐 아니라 각 나라의 대표적인 설화나 구전동화를 동화의 숲에서는 들을 수 있다.
동화의 숲에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말하는 동화나무.
이 커다란 나무 앞에 서면 저절로 아이들은 집중을 한다. 커다란 입을 실룩거리며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나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환호하며 열심히 대답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동화의 숲 산책길에서 만나는 동화나 옛 이야기, 설화, 구전동화들은 모두 38개 이야기. 2016년에 추가된 피노키오까지 무려 39가지 !
얼마나 실감 나고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흡사 동화세상이 존재한다면 이런 형태일 것이라는 것을 절로 짐작하게 된다. 상상이 현실로 펼쳐진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현실이 동화 그 자체이다. 동화책에서나 만화영화에서 보아왔던 과자로 만든 집이 실제 크기로 우뚝 서 있다. 그 집의 자그마한 창문을 통해 보이는 집 안의 풍경은 옹기종기 인형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 어여쁜 옷을 입고 지내는 가정집처럼 보인다.
동화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에 꽂아 둔 책갈피 속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동화, 네덜란드 및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들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실제 크기처럼 느끼도록 집과 인형의 크기를 조절하여 동화의 주요 장면을 정지시켜 재현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야외무대에서 인형들이 입장하는 거대한 인형극으로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길게 늘어뜨려진 금빛 머리칼을 보며 아이들은 이내 저 성에 라푼젤이 있다고 소리 지른다. 고개를 들어 저 높은 성 꼭대기층을 보면 아리따운 라푼젤이 노래를 하고 있음을 보고 아이들은 다시 한 번 감동한다. 자신이 책에서 읽은 라푼젤이 눈 앞에서 노래하고 있으니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저자와의 만남보다 더 감동적인 동화책 주인공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림형제의 동화 'The six servants'의 한 장면을 캡처한 듯한 목이 긴 아저씨(long neck man)도 인기 있는 캐릭터이다. 목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며 말하는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 오버랩되는 것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자한 할머니나 할아버지 앞에 또르르 앉아 있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들의 진지한 표정이다.
한 편의 아름다운 영상 인형극을 본 후의 슬픈 감성을 고스란히 자아내는 '성냥팔이 소녀'는 자그마한 궁전 안의 있는 홀에서 펼쳐지는 영상이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인형극이자 몽환적인 연출이 두드러지는 영상과 음향을 보고 들으며 아이들은 꿈과 실제를 오가는 이야기 구성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일명 '동화의 숲(Sprookjesbos)' 구역이 진짜 숲이라 더욱 실감이 난다. 왜 동화의 배경이 숲이었는지 하나하나 펼쳐지는 동화의 세계에 돌아다니다 보면 얼핏 이해할 수 있다.
꿈을 찾아가는 곳도 꿈을 잃어버리는 곳도 모험을 하는 곳도 방황을 하는 곳이 모두 숲이라는 사실을.
현실에서 꿈으로 오가는 공간도 숲이고 자신의 소망이나 야먕이 펼쳐지거나 방해받는 곳도 숲이다. 숲은 인간 사회의 또 다른 세계이자 갈등과 욕망이 분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자연과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자 자연의 질서와 섭리가 펼쳐지는 신비스러운 배경이다. 그래서 숲을 배경으로 한 동화는 지극히 당연한 설정이며 그것을 이야기로 끌어내는데 무한한 매력을 품고 있다. 숲은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한 매력도 가지고 있다. 만일 아이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에 동화의 숲에 온다면 그때마다 마주 대하는 동화와 더불어 성장할 것이 틀림없다. 그 숲에서 듣고 보고 느끼는 수많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슬며시 귓가에 속삭이며 아이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 같다. 마치 인문 고전이 시대와 사람을 달리하여 재해석되고 재탄생되듯이.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다는 에프텔링 공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1933년 노르트 브라반트 주(Noord Brabant)의 두 명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지역사회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작은 가족공원이었다. 수도원에 방문한 부모들을 따라온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다. 유럽 곳곳에 전해지는 이야기들과 동화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인형극도 하게 되고 산책길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것이 시초가 되어 차츰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규모 놀이공간이었고 여가활동과 스포츠 활동을 위한 작은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 이어 규모가 커지면서 1950년에 안톤 픽과 피터 레인더스가 이 공원을 디자인하게 되면서 동화 테마파크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공식적으로 1952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에프텔링이 생겨났다. 720㎢의 어마어마한 면적 속에 4가지 테마로 꾸며진 공원이다. 동화의 나라, 야생의 나라, 여행의 나라, 대안의 나라 이렇게 4가지 테마로 꾸며져 있고 3개의 커다란 호수와 정원과 숲으로 이루어진 자연친화적인 공원이다. 안톤 픽 마을이라 불리는 동화의 숲의 한 부분과 곳곳에 안톤 픽의 대형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어 진정한 동화마을의 향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안톤 픽은 20세기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국민들에게 사랑받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우리나라에는 액자에 담는 입체 그림인 쉐도우박스에 넣는 그림을 그린 화가로 더 알려져 있다. 17,8세기 유럽에서 한동안 귀족부인들의 고급 취미였던 데코파쥬의 일종이 쉐도우 박스로 이어진 것이다. 안톤 픽의 그림은 하나같이 맑고 순수한 동심이 가득한 그림들이다. 판화 작품 역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나타낸다. 안톤 픽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고 영롱한 과거 동심으로의 추억이 시나브로 되살아난다. 어른이 되어서 잊고 지내던 또는 잃어버렸던 동심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만드는 마법사 같은 화가이다. 그가 그린 그림과 그림책을 보면 한결같이 동심으로 돌아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맑은 수채화로 담아낸 서정적이고도 그윽한 네덜란드의 풍경들, 풍습들, 사람들의 표정들,
그 안에 소소한 일상이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담겨 있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풋풋한 어린아이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여행이 가능해지는 곳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작고 예쁜 마을 하뗌(Hattem)에는 있는 안톤 픽 박물관이다. 파란 대문이 있는 동화 같은 집, 우물이 있고 벤치가 있고 초록이 드리워진 커다란 나무가 있고 담장 밖에는 그림 같은 풍차가 돌아가는 소담스러운 아뜰리에가 있는 박물관이다. 안톤 픽은 덴 헬더(Den Helder)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둘 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Den Haag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네덜란드 회화의 중심을 차지한 곳인 헤이그(den haag)에서 그림 교육도 받고 수상도 하고 오랫동안 미술교수로도 임직 했었다. 하지만 출생지도 아닌 하뗌(Hattem)에 그의 미술관이 있다. 안톤 픽은 이 곳에서 전시회를 몇 번 했고 아이젤 강(IJssel)을 끼고 있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이 곳에서 아뜰리에를 마련하고 작품 활동을 많이 했었다. 이 박물관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덜란드에서 제일 오래된 테마파크인 에프텔링(Efteling)도 그가 디자인했다. 그 안에 안톤 픽 마을이 있다. 어쩌면 그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현실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에프텔링일 것이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여기도 또 가고 싶을 만큼 아늑하면서도 화려하고 재밌고 신나는 곳이지?
가을 단풍이 정말 아름다왔던 동화의 숲이 정말 예뻤지? 사람들이 동화를 참 좋아하나 봐.
사람들은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의 몸은 우리 체온보다 높거나 낮으면 움찔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반사작용이야. 그래서 우리의 체온과 비슷하면 우리 몸이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듯이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고 공감도 하게 된다. 딱딱한 이야기는 차가워서 경직되고 뜨거운 이야기에는 화상을 입듯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 같아.
동화는 그래서 사랑받나 보다. 아무리 차가운 세상의 뜨거운 이야기라도 동화로 풀어내면 우리는 책을 대하는 동안 저절로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사실 동화의 내용을 깊게 살펴보면 슬프고 힘들고 가엾고 안타까운 사연이 얼마나 많니? 더 나아가 동화의 유래나 배경 사실까지 알게 되면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라 잔혹동화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을지라도. 너희들이 즐겨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도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단다. 엄마도 어른들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동화라고 느끼고 있어.
너희들처럼 어렸을 때 읽은 동화와 너희들에게 읽어주면서 다시 읽는 동화가 너무 다르더라.
어릴 때는 동화책을 보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게 되고 때로는 꿈도 꾸며 행복했었지.
종종 슬픈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지만 곧 권선징악으로 연결되는 결론에 이르면 내심 뿌듯해하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점점 세상에 대해 알아갈수록 다른 면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순진함은 점점 사라지고 그 안에서 순수함을 견지해가려는 발버둥도 함께 쳐가면서. 왜 그토록 권선징악적 결론이 많을까? 세상은 녹록지 않아서 사람들은 동화에서만큼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권선징악의 결론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대소설인 박씨전만 해도 그렇지. 현실에서는 병자호란으로 인해 패배자의 나라에서 사는 서러움이었지만 소설 속에서는 박씨 부인의 용맹 때문에 대리 흥분을 하며 설움을 삼키고 사는 것이 일상이었을 테니까.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말하기 위해 추함을 경험해야 하는 역설적인 인생살이에서 동화 속에서 펼쳐지는 포근한 이야기는 삭막한 세상에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동화 같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신나게 흥분하며 읽었던 동화책이었는데 너희들에게 읽어줄 때는 뭉클함을 넘어서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솟아나와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자기정화의 기능까지 감당하는 동화책이 되었다. 그래서 동화책은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이고 변치 않는 고전이 되는 이유임을 알 수 있지.
권정생 작가님의 '강아지똥'을 너희들에게 읽어주다가 엄마도 울컥했던 가슴 찌릿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 때문에 다시 한 번 동화의 힘을 느끼게 되었어.
동화 속에는 인생의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숨어있단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동화 속에서 인생의 교훈을 찾기도 하고 때때로 경고장 같은 날카로운 지적도 받기도 한다. 향수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 대대로 이어져 온 가치를 몸에 새겨 넣기도 하지. 간혹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규범을 익히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용해된 그 당시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단다.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구전동화와 민담과 신화와 전설 등 여러 형태로 발전되어 온 민속적인 이야기들의 가치는 살면서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힘주어서 말하기도 해. 동화는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라고.
사랑하는 네 딸들아!
너희들의 삶 하나하나가 지금 구연되고 있는 동화일 것이다. 너희들이 이 동화의 숲에서 보고 만지고 들었던 수많은 동화들이 너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다. 지금은 신기하고 그저 행복한 신데렐라를 부러워하는 꿈쟁이 정도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희에게 각인된 인상과 새겨진 감동은 너희들의 인생 주기에서 만나는 생의 순간순간마다 새롭게 너희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의 소중한 추억이 너희들에게 큰 힘이 될 거야. 엄마 아빠와 언니 동생과 함께 누비고 다녔던 이 숲 속에서의 추억이 살면서 어려움과 힘듦이 닥쳐올때마다 행복했던 기억만으로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줄 거야.
그때 우린 또 동화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