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딸랜드 Mar 16. 2016

푸른 잔디 위에 누워 책을 보는 델프트 공대 도서관

언제나처럼 도서관과 학교는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만드는 꿈의 공간이다

엄마 어릴 적에 보던 TV 만화영화에 늘 등장하던 장면이 있단다.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푸르른 잔디 위에 벌러덩 누워 때로는 다리 하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책은 얼굴 위에 덮어 두고 콧노래를 부르는 따스한 봄날 오후 같은 풍경.

만화 주인공이 행복한 상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엄마도 덩달아 함께 유쾌한 상상을 하던 것이 아득한 추억이자 여전히 꿈틀거리는 자유로운 몽상이란다. 그 만화의 한 장면은 이내 엄마 마음속에 그대로 꿈이 되었고 꺼내보면 애틋함을 자아내는 기억 조각들이란다.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어릴 적 막연하게 부푼 가슴으로 상상해보았던 그런 신나는 경험일까? 아름답고 신나는 모험 가득한 동화책 읽는 느낌일까?


델프트 공대 도서관 ( 이미지 출처 flickr.com)


책을 보는 순간들은 행복했다. 진짜 잔디밭에 누워 책을 보는 경험은 못했어도 책을 읽는 시간들은 그렇게 잔디 위에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책 보는 것만큼 햇살 가득한 눈부신 시간들이었다. 적어도 책을 보는 동안 나도 그 책 속의 주인공이 되었고 미지의 세계에 앞장서서 가는 개척자이기도 했었다. 현실의 아픔과 괴로움이 넘쳐날수록 책을 보는 시간들은  합리적인 현실 도피처이자 은혜로운 안식처였고 더 나아가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세월이었단다. 그러면서 끄적이던 일기는 나의 소망이 되었고 남은 인생 일구어가야 할 미래 설계도가 되기도 했었단다.

아마 너희들도 그러하겠지? 아니 그러하리라 믿고 그럴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도서관을 설계한 MECANOO 그룹의 상징인 파랑색..델프트 블루까지도 연상이 된다


네덜란드의 아름답기로 소문난 델프트 공대의 도서관에 함께 너희들과 가는 발걸음은 엄마에게도 두근두근 기대감 넘치는 행보였단다. 분명 너희들도 그곳에 이르면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갔었다. 물론 엄마가 흥분하는 이유와 너희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다를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예측하면서.


기차 타고 델프트 역에 내려서 다시 버스 타고 가는 여정이 꼬맹이 막내에게는 쉽지 않았겠지만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뛰어가던 너희들 모습을 보니 엄마도 절로 흥이 났었단다. 그럼 그렇지. 너희들은 저 푸르는 언덕을 오르내리며 뒹굴며 마음껏 소리 지르고 싶은 귀여운 야생마였었다.

데굴데굴 도토리 놀이도 하고 비탈진 잔디밭에 누가 먼저 원뿔 모양까지 올라가나 내기도 하고 잔디 맨 위에 올라서는 만세도 부르는 너희들은 영락없는 순수한 어린이들이었다. 장난감도 없고 놀이기구도 없는 잔디만 덩그마니 있는 그곳에서 너희들은 진정 푸르름을 즐길 줄 아는 아이였단다. 너희들의 목소리가 노랫소리가 되고 너희들의 고함소리가 즐거운 비명이 되어버린 놀이시간이었지.


너희들은 알았을까? 너희들이 한껏 오르내리고 뛰어다니던 그 잔디밭은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도서관 천정이었다는 사실을.

너희들은 잔디로 덮인 책더미 위에서 마음껏 굴러다니며 놀았었던 거야.



델프트 공대는 유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 공과대학교란다. 이 학교 출신 노벨상 수상자도 여러 명 있고 그중에 필립스의 창업자도 있단다. 꼭 유명인사가 많고 수상자가 많아야 훌륭한 학교라고 볼 수 없지만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면 왜 이 학교가 훌륭한지 역으로 유추해 볼 수가 있지. 더군다나 이렇게 훌륭한 도서관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기술과학 도서관이라는 자랑도 가지고 있단다.  명문대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 도서관이지.


델프트 공대만큼 유명한 이 원뿔 모양의 도서관을 설계한 그룹도 델프트공대 출신이라고 그런다.  네덜란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된 건물들을 설계한 꽤 실력 있는 메카누(Mecanoo) 그룹이란다. 이 건축회사는 영국 버밍엄 도서관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한 건물들을 설계했단다. 자연 속에 예술을 설계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 춘천에 있는 휘슬링락 골프 클럽도 설계했었다. 네덜란드의 건축가들은 단지 건물만 설계하지 않아. 그 안에 건축 철학이 분명하게 스며들어있지.  위대한 건축물이 품고 있는 건축가의 정신은 그 건축을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단다. 건축에 예술을 입히고 건축물로 시(詩)를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좀 쉬울까?


도서관 중앙은 바깥에서 본 원뿔모양의 기둥이 있다. 나선형계단으로 이루어진 4층짜리 열람공간


너희들이 이 도서관을 보았을 때 어떠했니?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게 도서관인가 싶었겠지. 기존의 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면서 도서관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되는 새로운 양식이지?


도서관 천정은 잔디로 덮여있고 가운데는 원뿔 모양이 우뚝 서있지.  마치 압정이 종이 위에 박혀있는 것처럼. 이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건물의 지붕을 커다란 녹색 종이로 원뿔 모양은 압정이라 생각하고 대학 캠퍼스 내에 도서관을 압정처럼 꽂아두는 것으로 구상하였다고 한다. 동화적 상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놀랍지? 원뿔 모양의 기둥은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오르는 4층짜리 열람공간이 되었고 천창에서 흘러내리는 햇빛은 자연채광이 되어 진리를 비추는 빛으로 기능한단다. 인조 언덕 위의 잔디이지만 그 위에서 책을 보면서 눕기도 하고 도란도란 잔디 위에서 쉬기도 하는 그런 자유롭고 여유로운 공간이 도서관 이어야 한다고 발상 한 메카누 그룹의 사고가 참 혁신적인 것 같구나. 누구든 자연스럽게 모여들 수 있는 곳이 도서관 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까지 했다.


너희들도 이렇게 이야기했지?

'엄마 겨울에 눈이 오면 여기서 썰매타자 그때 또 오자'

대학생뿐 아니라 어린이가 꿈꾸는 장난기 가득한 상상이 그래도 이루어지는 재밌는 도서관이란다. 실제 겨울에 도서관 위에 눈이 쌓이면 거기서 썰매 타고 노는 어린이 같은 어른들이 있다고도 한다. 한편으로는 위험해서 울타리를 친다는 말도 있다.  밤이 되면 원뿔 모양 건물에서 조명이 흘러나오면 주변은 등대가 있는 언덕처럼 보이겠지.

생각만 해도 멋지다. 진리의 등대!


이렇게 기막힌 발상을 품고 있는 도서관의 가치를 알아본 건축가 마크 어빙은 그래서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적 건축물이라고 칭했나 보다. 2013년 CNN Travel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7곳 중 이 도서관을 4위로 선정했다. 또한 1998년에는 네덜란드 국가 철강상을 수상하기도 한 멋진 도서관이다.


1997년에 제작된 이 도서관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양식이자 20세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대한 건축의 역사가 되었단다.  그것도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잘 이끌어낸. 친환경적인 면모를 앞서서 보여준 것이었다. 건축미는 기본이고.


                                       (이미지 출처  도서관 홈페이지, mecanoo.nl, flickr.com)


너희가 물었다.


"엄마는 도서관이 좋아?"


"응. 좋아. 일 년 내내 도서관에서 뒹굴거리면 좋겠어.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단다. 여기처럼 잔디가 있으면 그 위에 누워서 책도 보고 그러면 꿈만 같겠다."


" 나두 엄마처럼 도서관 좋아 책도 마음껏 보고. 재밌는 것도 많고"


엄마가 왜 도서관을 좋아하냐고?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좋단다. 도서관에서만 맡을 수 있는 책 향기도 좋고. 사람들이 무언가 열심히 읽는 모습도 좋고. 뭔가 열중하는 것이 어울리는 이 모습이 참 좋다. 거기엔 꿈이 배어있어 보여.

엄마에게는 도서관에 대한 해갈되지 못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아.

도서관에 가득 찬 책을 보면 가슴이 뛴단다. 서점에 가면 저 많은 책을 다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먼저 든단다. 집에 살림살이가 느는 것보다 책이 느는 것이 좋단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것 같아.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그런 마음을 더욱 품게 되는 것 같아.

다시 학교에 가서 공부하면 너무 신날 것 같아.

가끔 큰 애 네가 ' 하루 종일 책 속에 푹 파묻히고 싶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짐짓 흐뭇해진다.

엄마가 대학과 대학원 다닐 때 마음껏 도서관에 다니지 못한 안타까움이 엄마 마음속에 늘 상처처럼 남아있는 것 같아. 학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도서관에 앉아서 책 보고 공부한 시간보다 아르바이트하며 돌아다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 속상할 만큼.

그런데 그런 생활이 지금도 여전하니 어쩌니. 책 보고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데 줄어들지 않는 집안일. 너희들에게 맛난 음식 해주는 시간이 값지지만 엄마에게도 엄마의 시간이 있으면 좋겠단다.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유년기를 함께 지내는 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지만 엄마에게도 선물이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너희들과 도서관 다니며 구경하며 너희들은 책 보고 엄마도 그곳에서 책 구경도 하고 책도 읽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눈물 나게 감사하단다.

놀이동산에 데려가 주지 못하고 엄마 좋아하는 도서관에 데리고 다녀도 엄마와 함께 하기에 즐거이 따라주는 너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사랑한다. 나의 네 딸들아!


도서관 내 작은 카페 . 감각적인 디자인이 어여쁘다
지금처럼 너희들이 잡은 손을 놓치 말고 함께 꿈을 꾸며 나가렴


매거진의 이전글 암스테르담여행자의 시선과 발걸음을 잡아끄는 OBA도서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