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과 수치를 드러낸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서
그 해 여름은 정말 더웠다. 뜨거움이 땀과 눈물로 변할 만큼. 차가운 회색 건물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반나절 머물렀던 우리들의 마음은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머리는 멍해지고 가슴은 답답함과 한숨으로 먹먹해져 있었지.
천진난만한 너희들이야 원초적인 느낌과 감상을 이야기했단다. 함께 한 연로하신 외할머니께서도 역시 원초적인 말씀을 하셨단다.
엄마 여기 무서워
왜 여기 컴컴해?
저 아저씨 왜 울어? 어른인데?
왜 저 사람 표정이 저래?
아빠 안아줘 걷기 힘들어 이상한 소리가 나
일본 놈들과 똑같구먼
아이고 답답해 여긴
안 그래도 힘든데 여기까지 와서 더 힘들어야 하냐
사람 다 똑같아
착한 척하지만 그 자리 올라가면 다 나쁜 짓 해
그리 내뱉은 말들을 너희들은 기억을 못하겠지. 아마도 무엇을 보았는지도 잘 말하지 못하겠지. 대신 엄마가 기억할게. 하지만 그 느낌을 너희들이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구나. 자라면서 이 박물관에 대해 공부하고 책도 읽고 생각도 하면 그때엔 어쩌면 어릴 때 그 느낌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희들이 느꼈던 느낌과 엄마 아빠에게 던졌던 원초적인 질문을 간직하였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채색된 느낌을 가지게 되고 질문은 고루해지기 쉽거든. 때론 단순하고 원초적인 질문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애써 이야기해주고 싶구나.
외할머니는 다르실 것이다. 전쟁을 겪으신 분이시라 어떻게 기억하실지 감히 엄마도 추측할 뿐이다. 일본인과 독일인의 다른 점을 어렴풋이 인식하면서도 부럽다는 내색도 안타깝다는 내색도 하시지 못하시기 때문이란다. 그건 아직 우리가 분단의 아픔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건축학을 아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 건축물이라며 열심히 건축의 미를 탐닉한다 이 곳에서.
하긴 명성 높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했다는 것으로도 관람객을 끌어모으니까.
다윗의 별을 상징하고 굴곡과 피난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의 구조.
상흔과 아픔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무채색과 제한적인 채광
관람하는 내내 애써 유대인의 감정과 소통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체감되는 답답함.
빛의 부족 때문에 컴컴하다고 무섭다고 느끼는 관람객의 정서는 이미 오래전에 가스실에서 사라져가야 했던 유대인의 정서가 전이된 것이었으리라.
이 곳에서 그리고 낙엽 작품을 밟으면서 보여준 너희들의 가감 없는 반응행동과 반사적인 소감 덕에 박물관에 온 이유와 목적이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어린이 코너에 그림 그리고 놀고 영상 자료실에서 보여주는 영상에 집중하는 이런 모습이 보였기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단다.
이 박물관의 위대함은 건축미에만 그치지 않는단다.
독일인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유대인들을 추모하며 후세에 가르침을 남겨주자고 베를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양심적 행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란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조지 오웰 -
이는 건물로 이루어진 자서전인가 보다.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를 논할 때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악의 평범성(bernality of evil)'을 추출해 낸 걸출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덕에 죄가 무엇인가를 묻는 시도가 많아졌다.
생각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행동의 무능.
이 모든 것이 양심에 화인 맞은 자와 같다고 보면 적절한 비유일까?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것
아무 생각 없이 행한 것이 아이히만이 유죄 선고를 받은 명백한 이유임을!
전체주의에 물든 아이히만은 스스로를 유물론적 존재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고통받는 타인 역시 하나의 대상이고 유물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아니 없는
엄마는 너희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고 싶다
그때 받았던 너희들의 그 느낌을 잊지 말아다오.
자신의 느낌도 자각하지 못하는데 어찌 타인의 느낌을 읽어내랴?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던지며 사고해야 하고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본인의 입으로 표현해야 하고
그래야 행할 수 있을 것이란다.
이는 필연 반성적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어린 너희들에게 지금은 너무 어렵지?
훗날 너희들이 노화된 엄마에게 심화된 설명을 해주렴.
중세 때의 유대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많다. 이외에도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 히브리어 성경, 생명나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저 이정표는 독일 내에 실제 있는 유대 관련 지명과 도로이름들이다. 즉 역사 속의 유대인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중세 때부터 함께 살아왔다는 의미를 던져준다.
평범한 저들의 일상은 사진 속에 영원히 갇혀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듯 싶다. 사진에도 남겨지지 않은 무수히 공허한 이들.
어설프고
부끄럽고
나 역시 평범하지만 날마다 악을 행하는
송구스러운 마음만 가진
못난 엄마로부터....
(세월호 1주기를 보내며 추모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었는데 벌써 2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