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정의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든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든 정치는 다양한 경로로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꺼내는 일을 피하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하는 정치인 역시 직업인입니다. 그것도 아주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인이죠.
지금 많은 정치인은 보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면서 희화화의 대상이 되고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있지만, 사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에 관한 지식과 통찰, 세련되고 절제된 표현,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 영리하게 사람의 심리를 활용하는 능력 등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 인터넷 캡처] ‘그냥 어쩌다 대통령이 된 양아치인 이 양반’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모든 직업인이 그렇겠습니다만, 정치인은 특히 ‘나에게 부여된 소명을 꼭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 있는 의식(소명의식)’을 가진 직업인이어야 합니다.
살면서 처음 보는 대통령이 “살면서 이런 국회 처음 경험한다”고도 하고, ‘저 사람은 왜 정치를 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시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꺼내 들었습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도 썼는데, 프로테스탄트(청교도)의 세계관에서는 직업을 하늘이 내려준 소명으로 보고 그 소명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독일어 원제 ‘Politik als Beruf’에서 Beruf라는 단어는 직업이라는 뜻과 소명이라는 뜻 모두를 가지고 있으니 결국 ‘직업=소명’인 것이지요.
이 책에서 베버가 이야기하는 소명의식은, 신앙 또는 신념을 통해 갖게 된 스스로의 내면적 믿음인 ‘신념윤리’와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내면적 신념을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책임윤리’를 의미합니다. 즉, ‘무엇을 할 것인가(신념윤리)’와 ‘어떻게 할 것인가(책임윤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버에 의하면 정치인에게는 열정, 책임감, 균형적 현실감각이라는 세 가지 자질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직업 정치인이라면 ‘내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나에게 주어진 권력을 제대로 다루고, 그것을 통해 나에게 부과된 책임성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념이 현실에서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검증하고, 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사려 깊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최장집).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데마고그(대중을 선동해서 권력을 획득·유지·강화하려는 정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야를 불문하고 요즘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정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얻거나 개인의 욕구 충족을 위해 정치에 ‘의존해’ 사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보이는데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 현실은 비극적입니다.
경향신문 유정인 기자의 칼럼을 빌리자면, 권력자나 인기 있는 정치인과 가깝다고 말하기보다는 “‘더 나은 명분’, ‘더 나은 욕망’을 말하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주권자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