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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6장(中)

9/25 아침묵상

by 반병현

잠언 16장 13~15절


16장의 중간 부분은 13절부터 15절입니다.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왕의 진노는 살륙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잠언 16:13 - 15 KRV



겨우 3개 절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굳이 비중을 할애하여 16장을 3개 부분으로 나누어 읽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진노를 논하다가 갑자기 주체가 왕으로 바뀌는 부분입니다. 솔로몬은 반심의 왕이잖아요. 잠언을 작성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내려놓지 못 한 흔적으로 생각됩니다. 집권을 하면서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며 그의 기준으로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나누어 판단했을 것입니다. 지혜에 대해 평생을 고찰해 온 사람이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지요. 그렇게 만나온 사람들을 떠올리며 16장의 중반부를 작성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15절 말씀을 보면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다"라고 표현하거나, "비를 내리는 구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죠. 왕의 권세를 구름과도 같다고 표현한 것은 오만한 표현입니다. 왕이라는 표현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으로 치환해 해석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솔로몬은 바로 12절까지만 해도 여호와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다가 갑자기 표현을 바꿨거든요. 16절부터는 또 다시 여호와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즉, 여기에서의 왕은 통치자로써의 솔로몬 자신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16장 초반과 중반, 후반을 각각 작성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공백이 굉장히 컸다면 표현이 흐트러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만, 11장부터 15장까지 빠른 호흡으로 써내려간 것을 생각하면 겨우 3개 절을 적고서 장기간 쉬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장기간을 들여서 서술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면 퇴고의 과정에서 이런 모순을 발견하지 못 할 리가 없었겠죠. 격해진 감정 속에서, 몰입 속에서 솔로몬의 자의식이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반추하며 타인을 꾸짖는 글인 잠언을 작성한 솔로몬 역시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겠지요. 그래서 겸손하라, 하나님께 항복하라 호소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아직 시편을 읽지는 않았지만 전심의 왕인 다윗의 글은 다르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신명기 17장에는 왕이 될 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 등장합니다.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것이니라

신명기 17:16 - 17 KRV


그런데 솔로몬 시절의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검색해 보니 병거가 1,400대, 마병이 12,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말을 두었죠. 그리고 많은 아내를 두어 우상에게 마음이 미혹되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놋과 은을 소유했지요. 신명기에서 정한 규범을 모두 어긴 것입니다.


어찌보면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을 후회하며 반성의 회고록인 잠언을 저술했지만, 잠언을 저술하는 그 순간마저도 여호와보다 자신이 중요하다 여기는 마음이 튀어나온 것이지요. 악으로 점철된 인생이 어디 한 순간에 사라지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래서 지혜의 일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솔로몬의 마음가짐을 타산지석으로 여기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일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시고, 항상 주님 앞에서 저를 낮추겠습니다. 주님께 항복하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지혜의 권능을 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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