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각론이지만 영적인 지혜의 작동원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생활에서의 처신 위주의 서술입니다. 수많은 예시들이 등장하지만 잠언 2장과 8장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면 8개나 되는 장에서 쏟아지는 2백개 이상의 예시들을 단 두 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지혜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권능이며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2. 악인의 길은 죽음에 닿아 있으니 악과 악인을 멀리하라.
결국 지혜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다각도로 서술한 것으로 이해하고 잠언의 후반부를 통째로 속독했습니다.
잠언에서 정말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1장부터 10장까지였던것 같습니다. 이해할 것도, 파고들 은유도 풍부했고 뒷부분에 비해 영적인 지혜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많았거든요.
반면 11장 이후는 앞부분을 깊게 이해한 사람에게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것으로 읽히기 딱 좋습니다.
17장부터 24장은 서술상의 특이사항도 딱히 없습니다. 한 번에 작성했다기 보다는 평소에 생각하거나 메모해 두었던 지혜의 지침들을 편집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튼 이렇게 솔로몬이 직접 저술한 잠언의 통독을 마쳤습니다. 다음에 읽을 25장은 유다의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솔로몬의 잠언을 편집한 문건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을 읽고 느낀 가장 큰 소감은, "이래서 반심이구나." 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지혜에 대한 신실하고 거룩한 고찰이 엿보였느나 중반부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감추지 못하였고, 후반부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세상을 헤쳐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전수하는데 너무 큰 비중을 할애합니다.
여호와께 온전히 항복하는 것이 지혜라고 하면서, 정작 솔로몬 본인은 스스로를 온전히 내려놓지도 못하였고 세상의 지혜를 탐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윗과 달리 솔로몬은 성경 이외의 사료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왕이라고 합니다. 많은 광산을 경영한 왕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솔로몬이나 여디디야라는 이름이 기록된 사료가 없답니다. 팔레스타인쪽이 워낙 역사적 기록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는 하지만, 솔로몬은 성경과 다른 몇 가지 경전에서만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의 기록을 세상에서 지워버리셨습니다. 오직 성경 안에서만 존재하는 왕이 되어버렸죠.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후회하고 절규하는 그의 흔적은 남겨두었으나, 세상과 우상을 좇던 그의 흔적은 세상에서 지워버리셨습니다.
잠언에 기록된 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롭지만 동시에 악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던 지혜의 솔로몬은 생명의 길에 닿고 성경 안에서 살아있지만, 악인으로써의 솔로몬은 역사에서도 지워지고 죽음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잠언에서 여러 번 언급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악인의 앞길에는 영화가 아니라 사망의 음부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감사하게도 훌륭한 타산지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잠언의 지혜를 총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지혜를 허락해 주십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악의 길로 유혹당하지 않는 굳은 신앙의 심지를 허락해 주시어, 오직 지혜와 생명의 길로만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