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통독이 마무리되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큐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데 하루를 할애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던 일을 하지 않으니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몇 주 전에 승수와 함께 구매한 큐티책은 잠언에 빠지는 바람에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볼지 아니면 잠언때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다른 책을 하나 잡고 쭉 묵상할까 고민하던 중, 김우진 청년이 전도서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전도서를 묵상하고 브런치북을 발간해 주면 그걸 읽으며 큐티를 하겠다고까지 이야기를 하니 힘을 내서 전도서를 읽어보려 합니다. 묵상의 늪으로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야지요.
그런데 전도서, 첫 구절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서 1:1 KRV
전도서 1장 1절에는 '전도자'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전도자는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전도를 하는 사람", "포교인"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이 세운 장로인 크레타 섬의 디도가 생각납니다. 아마 비슷한 개념일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서를 가톨릭에서는 '코헬렛'이라고 표기한답니다. 예전에는 가톨릭에서도 '전도서'라고 표기했는데, 이 표기를 히브리어 원어로 개정했습니다.
전도서를 더욱 깊게 알아가기 위하여 묵상에 앞서 조사를 조금 했습니다. 코헬렛은 히브리어에도 없는 말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인 '코헬'의 뜻을 여러 곳에서 찾아보았는데, '모으다' 라는 의미가 그 뿌리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사람들이 모인 '집회' 또는 '공동체'로도 의미가 변질된다고 합니다. 전도서의 1장 1절이 '코헬렛'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전도서를 코헬렛이라고 부른다고도 합니다.
단어 자체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초기에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었다고 합니다. 라틴어에도 이를 함유하는 별다른 표현이 없어 그리스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고, 영어로 번역할 때에도 라틴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전도서'라는 이름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번역이라고 합니다. '코헬'은 모으는 행위이니, '코헬렛'을 신도들을 모으고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번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가톨릭에서는 원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시 코헬렛이라는 표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서 1:1 KRV
'전도자'로 번역된 저 단어가 코헬렛이겠죠? NIV에서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The words of the Teacher,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Ecclesiastes 1:1 NIV
코헬렛을 Teacher로 번역했네요. Ecclesiastes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킹 제임스 버젼도 봤습니다.
The words of the Preacher,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Ecclesiastes 1:1 KJV
여기에서는 Preacher라고 번역했습니다. 전도사 또는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두고 번역본에 따라 의미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KRV와 KJV의 경우 말씀을 설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에 의미를 크게 두고 부여한 것 같습니다만 NIV의 경우에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사람 내지는 현자로 읽힙니다. 전도서, 1장 1절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솔로몬의 이름을 사칭한 다른 사람이 저술한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기원전 970~930년쯤의 인물이지만 전도서의 작성시기는 기원전 200년 정도로 추정된답니다. 자신이 작성한 문서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과거의 인물의 이름을 가져다 쓰는 방식이 당시에는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은 '아들'이라는 표현을 '후손'으로 해석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를 솔로몬으로 해석한다면 preacher라는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솔로몬은 통치자지 설교자는 아니었거든요. 잠언을 작성하면서까지도 자신을 온전히 주께 내려놓지 못한 반심의 왕이 무슨 설교를 하겠습니까. 저자를 솔로몬으로 본다면 전도자를 teacher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반면 전도서의 저자를 솔로몬의 이름을 사칭한 다른 사람으로 보게 되면 해석의 범위가 너무 넓어집니다. 단순한 현자일수도 있고, 말씀을 전파하며 목회를 하던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누가 작성한 건지도 모르겠고, 전도자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톨릭에서 전도서라는 번역을 코헬렛으로 되돌린 이유도 이해가 됩니다. 전도자 또는 전도서라는 번역은 충분치 못합니다.
결국 전도서 1장 1절부터 총체적인 난국에 부딛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말씀을 그저 흘려넘기고 싶지는 않은데.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