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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1절 (下)

9/30 저녁묵상

by 반병현

어머니 일 도와드리면서도 전도서 1장 1절이 자꾸 떠올라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걸작입니다.

"너무 어려워서 목사님들도 건너뛰는 구약계의 요한계시록 아니냐? 잠언이 커피면 전도서는 막걸리야."

1장 1절조차 해석을 못해서 막막하다는 제 이야기에, 이 친구가 신학과를 다니는 군대 후임을 연결해 줬습니다. 친구가 사이에 끼인 형태로 처음 뵙는 신학과 분과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Q1. 전도서 1장 1절의 전도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거기 쓰인 코흘렛은 무슨 의미인가? 전도서 내용은 전도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현자나 가르치는 자라고 생각하면 되는가?
A1. 코헬렛=전도자(코이네, 그리스어로는 에클레시아스테스). 성경에서 전도서로 번역한 것은 잘못 번역 된겁니다. 설교자로 번역하는게 좋습니다.

Q2. 성서비평학 쪽에서는 솔로몬이 쓴 게 아니라고 하고, 랍비전승은 솔로몬이 쓴 게 맞다고 하는데. 후자야 1장 1절의 다윗의 아들이라는 말을 문언 그대로 해석한거라 치더라도 전자쪽은 근거가 무엇입니까?
A2. 1장부터 모든 것이 헛되다는 선언과 함께 모든 권력과 명예를 가진 왕으로 생각할 것 같아서 성서비평학이... 아니, 10분 후에 통화하실래요? 말로 설명하는게 더 편할 것 같아요. 통사적인 것을 설명할 수 밖에 없어서.

Q3. 죄송합니다 통화로 상세히 설명해 주셔도 제가 어려운건 못 알아 들을 것 같습니다. 설교자라고 해석하면 전도서의 작성자를 솔로몬으로 생각할 때 모순이 발생하지 않나요? 잠언을 작성하는 중에도 여호와가 아니라 중간중간 자신을 높이는데 앞선 반심의 왕, 반심의 통치자인데 그를 설교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는지?
A3. 맞아요. 솔로몬이 지은거 아니에요. 코헬렛이 잠언서보다 후대에 나왔고, 학자들은 보통 기워전 1세기 즈음에 지어졌을 거라 봐요. 그러니 내용이 진보적이죠. 텍스트 상에서도 솔로몬으로 추정할 수 없는 구절도 나오고요. 보통 지혜문학을 담당한 왕가 쪽 고관쯤 되는 인간이 지었을 거라 봅니다.

Q4. 솔로몬의 생몰년도는 기원전 970~930년 정도인데 왜 전도서의 작성년도를 700년이나 괴리가 있는 기원전 200년쯤으로 추측하는지 그 근거도 궁금합니다.
A4. 포로기 후기보다도 진보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욥기나 예레미아애가 등 지혜5경 중 가장 진일보적인 내용이에요. 코흘렛, 잠언, 예레미아애가, 아가서, 에스더 이렇게 5권을 지혜문학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코흘렛이 좀 파격적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문화권(바울 서신)처럼 이데아를 담지는 않아서 흥미로운 책입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그 사이에 끼인 기원전 1~2세기경 지어졌다고 봅니다. 우선 잠언과 비교해 읽어 보시죠.

Q5. 포로기 후기라 하시면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다른 책이 있으면 비교하며 읽기 좋을 것 같다. 포로기 후기가 언제쯤인가? 에스더가 교섭하던 시절이 전반부인가? 3차례에 걸친 해방 후에 400년간 여호와가 침묵한 기간이 있고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배웠는데, 그러면 기원전 1~2세기경은 침묵기가 아닌가?
A5. 침묵기라고 해서 경전 편집 자체가 안 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형태의 타나크가 형성된 게 침묵기 시절입니다.

Q6. 포로기라고 하면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다음 페르시아왕과의 교섭을 통해 해방된거랑, 스룹바벨-에스라-느혜미아까지 배웠다. 그러면 침묵기에 경전이 쓰여졌다는 것은 이해했는데 그 시기를 왜 포로기 후기라고 하는지도 궁금하다. 기원전 400여년쯤에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부숴서 포로 생활은 끝난 것이 아닌가? 연대를 내가 잘못 알고 있는가?
A6. 통상 포로기 후기는 페르시아 이후를 말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하늘의 주 하나님이 나에게 이 땅에 있는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셨다. 또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유다에게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 곳에 계시는 하나님 곧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라. 그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빈다. 잡혀 온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누구든지 귀국할 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이웃에 사는 사람은 그를 도와주어라. 은과 금과 세간과 가축을 주고,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자원예물도 들려서 보내도록 하여라. 에스라 1장 2-4절] 연대는 바빌론-페르시아-로마 순입니다. 포로기 후기를 정확하게 연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통 기원전 586년 이후를 말합니다.

Q7. 늦은 시간에 친절한 답변 감사드린다. 복 받으시기를 바란다.
A7. 중간기 즈음에 작성된 칠십인역(LXX)도 검색해보시면 좋고, 타나크와 초기 기독교 성서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개관 정도만 공부하셔도 성서가 얼마나 문학적인 책인지 아시게 될 것이다.

Q8. 아는게 없다 나는. 각 잡고 읽어본 것은 잠언 딱 하나 뿐이다. 공부할 게 많다. 그런데 중간기는 언제쯤인가?
A8. 중간기야 말로 코헬렛이 쓰인 시점이다. 예수 탄생 기점으로 400년 전 정도. 그때 구약의 코이네그리스어 버젼인 칠십인역이 등장한다.

역시 전공자는 다르네요. 그런데 공부할 것이 늘었습니다. 산 넘어 산이네요. 여튼 이름조차 모르는 신학과 분과의 문답 이후 다시 전도서 1장 1절을 읽었습니다. 단, KJV로 읽었습니다. 전도자라는 번역과 Teacher라는 번역 둘 다 코흘렛의 의미를 해치는 것 같아요. Preacher가 참 좋은 번역인 것 같습니다.

The words of the Preacher,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Ecclesiastes 1:1 KJV

이제 1장 1절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을 자청하는 사람이 작성했습니다. 이는 권위를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설교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던 이가, 지혜를 담아 선포하는 글입니다. 권위를 실을 필요성이 있었던 이유는 잠언 중 히스기야 편집본과 비슷한 이유 아니겠습니까. 세상에서의 파급력. 그러니 지혜를 다루는 글이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인 면모가 남아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 단 한 절을 묵상하고 이해하는 데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재미가 있습니다. 이제 전도서의 첫 절을 이해했으니 내일부터는 코흘렛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어떤 내용인지 한 번 부딛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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