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전도서 1:2 - 11 KRV
전도서의 전반부입니다. 극단적인 허무함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허무주의와는 또 다릅니다. 허무주의는 신의 권위조차 부정하는 사상이니까요. 다만 전반부는 호기심을 일게 합니다. 굳이 허무주의와 비교해 보자면, 능동적 허무주의와 수동적 허무주의 중 어디에 가까울까요?
허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허무주의는 능동적 허무주의와 수동적 허무주의로 나뉩니다. 능동적 허무주의는 허무함을 인정하는 속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쪽이고, 수동적 허무주의는 무엇을 해도 허무하니 염세적인 행위를 제외하면 어떤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전도서의 허무는 둘 중 어느쪽에 가까울까요? 아직 뒷부분을 읽지 않았으니 궁금합니다.
지혜서 중 가장 파격적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가 와닿습니다. 세상도 인간도 자연도 모두 하나님이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것인데, 이조차도 헛되다고 하잖아요. 솔로몬의 이름을 사칭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을 이름없는 목회자가 퍼뜨린다? 사이비 소리 듣기 딱 좋죠. 1장 1절을 이해하는데 긴 시간을 들이기를 잘했습니다.
전도서의 초반부에서 코헬렛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합니다. 인간의 수고가 헛되며, 바람의 움직임도 헛되고, 강물의 움직임도 헛되다고 합니다. 만물의 피곤함이라는 표현에서 무저갱과도 같은 절망감마저 엿보입니다. 세상조차 헛된 것일진대 하물며 인간의 자취는요. 우리가 이전 세대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이후 세대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 재미있습니다. 제가 한동안 했던 고민 그 자체입니다. 한 개의 개체로써 제 삶은 일시적입니다. 입신양명이니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저는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죽은 뒤에 이름을 날려서 뭐 합니까? 덧없이 짧은 인생 안에서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야죠. 그래서 한때 능동적 허무주의에 사로잡혓고, 무신론자의 길을 6년이나 걸었습니다.
코헬렛이 무슨 지혜를 전하고자 하는지 조금 감이 잡힙니다. 다시 주의 품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을 시작했잖아요. 지금은 조금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잠언 묵상이었고요.
세상은 허무하고 인생은 덧없이 짧습니다. 주어진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찾아야 하고요. 코헬렛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이런 지혜가 아닐까요.
코헬렛은 솔로몬의 이름을 사칭했으니 아마 잠언의 지혜를 계승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잠언의 지혜를 행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는 것이 전도서의 저술 목적이 될 것이고, 주제가 될 것입니다.
잠언의 지혜란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할 권능이며, 악과 구분되게 하사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열쇠." 였죠. 전도서에서 과연 이 지혜론을 계승할 것인지, 제 예측이 맞는지 아닌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 자체는 서론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으므로 묵상은 이쯤에서 마무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잠언의 경우 모든 절에 메시지가 다 담겨 있었거든요. 700년이나 후대에 작성된 책이라 그런지 서론이라는 문학적 장치가 도입되어 있습니다. 하. 너무 재밌습니다.
허무함 속에서 하나님을 등졌던 죄인을 용서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잠언의 지혜를 실천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단속하여 주시옵소서. 허무함 속에서도 여호와를 찾던 코헬렛의 지혜로부터도 저를 성장시키고 단련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