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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下)

10/1 저녁묵상

by 반병현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12‭-‬18 KRV



코헬렛은 솔로몬이 아닙니다. 확실히 알겠습니다. 잠언을 읽으며 흠모했던 그 느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코헬렛은 솔로몬보다 훨씬 더 자의식이 강한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어디까지나 지혜를 태초 이전부터 존재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해석하였고, 인간이 스스로 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코헬렛은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전도서 1:16 KRV


잠언에서는 교만을 악으로 규정하고, 교만한 자를 사망의 길로 향하는 자라고 규정합니다. 코헬렛은 적어도 솔로몬의 잠언을 기준으로 하자면 악한 자입니다. 잠언 30장을 작성한 아굴과는 너무나도 대조됩니다. 아굴은 솔로몬보다도 지혜로운 전심의 현자였으나, 스스로를 짐승만도 못하다고 낮추었습니다. 반면 코헬렛은 자기 자신을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역사상 가장 지혜롭다고요.


여기서 조금 멍해졌습니다. 파격적이라는 표현도 적절치 못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잠언과 충돌하고 있잖아요. 다른 지혜서도 읽어봐야 결론이 나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 잠언과 전도서 1장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코헬렛은 절대 솔로몬이 아닙니다.


전도서 1장은 초반부에서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양 허무함을 논하고, 후반부에서는 저술 의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모두 헛되고 잘못되어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글을 썼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아직 정세가 불안정했잖아요. 바빌론으로부터 해방되어 성전을 회복한지 200년정도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약소국이었고,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잡아먹은 것만 해도 대사건인데 그 시기에는 로마 공화국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주변 강국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성궤도 행방이 묘연하고. 그리스도가 임하시기도 전인 데다가 여호와께서는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혼란할수록 어떤 사상을 빠르게 퍼뜨리기가 쉽습니다.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거국적인 목표를 이루려면 여론을 형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잘 마케팅해야합니다. 브랜딩 수단으로 솔로몬을 사칭한 것이지요. 아날로그로 구현된 2200년 전의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 기법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을 흔들어 보겠다고 그로스해킹을 시도했던게 아직 일 년도 안 됐거든요. 당시에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 50일만에 정부 정책 방향을 바꿔버렸어요. 콘텐츠 기반 그로스해킹은 이렇게도 강력합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생각이 자꾸 미칩니다.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으며, 적은 노력으로 개인이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코헬렛 또한 이런 전략과 의도로써 전도서 1장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전도서에 공감을 했고, 그러니 지금까지 성경의 한 권으로 전해지고 있겠죠? 망가진 세상을 고쳐 놓겠다는 코헬렛의 의도는 실패했을지언정 경전으로써의 코헬렛은 성공적으로 파급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제 전도서의 작성 의도는 확실하게 파악한 것 같습니다. 전도서 1장의 묵상은 이정도면 마무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2장부터는 코헬렛이 이렇게도 공을 들여서 전달하고 싶었던 지혜론이 등장하겠지요? 다만, 워낙 진보적인 시각으로 작성된 책이다 보니 여기에 끌려다니기 보다는 잠언을 지혜 해석의 기준으로 삼고 읽어나가보려 합니다.


제게 있어 지혜란 오직 솔로몬이 정의한 잠언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며, 악으로부터 거룩히 구분되도록 하는 규준.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한 로고스 또는 그 일부. 하나님의 권능.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기도로써 간구해야 할 은사."


이를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준으로 삼고, 전도서의 지혜론을 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도서를 더 읽어 나가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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