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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2장

10/2 아침묵상

by 반병현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전도서 2:1‭-‬12 KRV



전도서 2장의 초반부입니다. 코헬렛은 여전히 솔로몬을 사칭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역사상 가장 창성하게" 축첩, 축재를 하고 이 세상의 온갖 쾌락을 모두 느껴보았노라 전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전도서 2:12 KRV


그러면서 12절 말씀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세상 향락은 이미 다 누려 봤는데 헛되더라. 어차피 내가 안 누려본 쾌락을 누려 볼 사람은 없을테니 내 말을 들어라."

좀 비겁하고 치사한 서술방식입니다만 쉽게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었겠습니다.


잠언과 달리 모든 절에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절의 기능이 독립적입니다. 각 절은 논거, 예시, 접속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쓰이는 문학적 기초가 어느정도 구조적으로 자리잡아 있습니다. 솔로몬 시절 문학과는 체계가 많이 다르죠. 그러다보니 전도서 2장 전반부는 이렇게 의미파악이 끝납니다. 분량은 길지만 메시지는 하나 뿐이니까요.



내가 보건대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남 같도다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전도서 2:13‭-‬17 KRV



2장의 중반부입니다. 지혜마저도 헛되다고 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는 어리석은 자를 악한 자와 동치로 보았으며, 어리석은 자의 말로는 사망의 길이라 하였습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의 안에서 생명의 길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코헬렛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같은 일을 당하고, 죽어서 잊혀지므로 지혜조차 헛되다고 하는 것이 중반부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각 절을 독립적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기초적인 문학적 구조를 차용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핵심 메시지가 있고, 이를 포장하기 위한 언어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고 읽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전도서 2:17 KRV


전도서의 초반부와 중반부를 관통하는 주제는 17절입니다. 결국 1장에 이어서 전도서의 저술 의도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전도서 2:18 KRV


18절은 잘 읽히지 않아서 KJV로 다시 읽었습니다.


Yea, I hated all my labour which I had taken under the sun: because I should leave it unto the man that shall be after me.

Ecclesiastes 2:18 KJV


비교를 위해 NIV도 읽어보았습니다.


I hated all the things I had toiled for under the sun, because I must leave them to the one who comes after me.

Ecclesiastes 2:18 NIV


KRV, KJV, NIV 셋 모두 번역이 다르죠. 히브리어를 읽을 줄 모르므로 이렇게 셋을 비교해 보는 정도의 수고를 들이는게 제 최선입니다.


"한하였다"라는 표현의 한은 통한입니다. 한국어 번역은 표현이 화려하기는 한데 적절치 못하다고 봅니다.


대충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코헬렛은 생애동안의 노력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업적들이 후대에게 전해지는 유산 또는 숙제가 되니까요.


그 사람이 지혜자일찌 우매자일찌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내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2:19 KRV


코헬렛의 유산을 지혜자건 우매자건 후대가 관리할텐데, 이 또한 헛되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헛된 일인지는 논거가 뒤에서 등장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

전도서 2:20‭-‬21 KRV


내가 고생해 봐야 득은 다른 사람이 본다. 그러므로 내 노력은 헛되다.


이거 완전 수동적 허무주의 그 자체 아닌가요? 이런 책이 성경에 수록되어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코헬렛은 인생을 덧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중 이번 논거는 "입신양명이나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표현이 무슨 의미가 있냐. 죽으면 끝이지." 라는 제 예전 사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2:22‭-‬26 KRV



결론은 하나님 안에서 거하며 기뻐하라는 이야기로 끝납니다만 혼란스럽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는 것 처럼 혼란스럽습니다.


굳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기쁨을 논하기 위해 허무함을 논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만한 당위성을 코헬렛이 3장 이후에서 보여주지 못 한다면 저는 상당히 실망할 것 같습니다.


결국 2장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 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2:26 KRV


"우매자의 삶은 헛되므로 이를 바로잡아,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지혜자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이 책을 작성한다."


결국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2개 장을 할애하며 수동적 허무주의스러운 사상을 설파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코헬렛의 저술방식이 적절한 시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장의 저술 의도는 파악했슴니다.


그러나 앞 절에서는 지혜조차 헛되고 지혜자와 우매자 또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코헬렛의 메시지는 같은 장 안에서도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는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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