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저녁묵상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1-8 KRV
3장의 전반부입니다. 잠언의 기술방식을 흉내내고 있습니다만 주제부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잠언은 총론-각론 구조였습니다만 전도서 3장 초반은 주제-예시 구조입니다. 전반부의 주제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입니다. 단, 이는 인간의 일에만 한정됩니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전도서 3:9-15 KRV
인간은 "때"에 구속되어 "영원"을 사모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일시적입니다. 대지는 영원하나 인간의 자취는 일순간입니다. 덧없죠. 1장의 논거를 인용하자면,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헛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이십니다. 초월자죠.
초월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고를 주시며 먹고 살아가는 기쁨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때"에 구속되는 일시적인 존재인 인간의 삶은 헛되고도 헛됩니다. 하지만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 그 영원하신 권능 속에서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드디어 코헬렛에 대한 실망감보다 기대감이 더 커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군요.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전도서 3:16-22 KRV
3장의 후반부입니다. 코헬렛은 1장과 2장에서 헛되고도 굽은 세상을 바로 고치고자 전도서를 작성했다고 의도를 밝혔습니다. 거기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코헬렛의 눈에는 세상 천지에 악이 가득합니다. 공정한 정의가 살아있어야할 재판장에서도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모두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다.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요. 우리 또한 짐승과 다르지 않습니다. 짐승이나 인간이나 비슷한 생로병사의 길을 거쳐 결국은 호흡이 끊어집니다. 코헬렛의 견해에 따르면 인생은 짐승의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헛됩니다.
잠언 30장에서 아굴이 스스로를 짐승만도 못하다고 낮추었던 겸손의 문구를 의식하고 차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잠언에 심취한 사람은 이 예시에서 아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아굴은 자신을 낮추고 여호와를 높이기 위한 겸손의 수단으로 짐승을 언급하였으나 코헬렛은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간보다 천한 것으로 인식되는 존재와 인간이 다를 바 없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같은 표현이나 목적이 다릅니다.
21절의 경우 번역이 애매해서 NIV를 읽어봤습니다.
Who knows if the human spirit rises upward and if the spirit of the animal goes down into the earth?”
Ecclesiastes 3:21 NIV
사람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하지만, 누가 이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거칠게 의역하자면 "그거 증명할 수 있어요?" 정도 되겠네요.
전도서 3장의 후반부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번 더 강조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전도서 3장의 핵심은 14절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전도서 3:14 KRV
인생은 덧없고, 별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헛된 것에서 기쁨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자.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고서 생명의 길로 나아가자.
이것이 전도서 3장의 주제입니다. 허무주의와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정 반대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코헬렛은 신앙도 깊지만 상당히 논리적인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드디어 전도서에서 제 마음을 비추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전도서의 지혜론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왜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잠언의 지혜론에서 자의식을 더욱 내려놓은 형태가 아닐까요? 아굴과 코헬렛을 비교하면서 다음 장들을 읽어나가보겠습니다.
덧없이 짧은 인생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기쁨을 나누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가도록 제 신앙의 심지를 굳건히 붙들어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