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아침묵상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4:1-6 KRV
전도서 4장의 전반부입니다. 코헬렛은 세상의 악 중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악과, 이를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부조리한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문제는 다르지 않군요.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7-12 KRV
4장 중반부에서는 고독이 헛되다고 합니다. 코헬렛의 견해에 따르면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죠. 그 짧은 인생 속에서 고독하게 지내는 것은 헛되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족과, 친구와, 다른 성도들과 소통하고 교제하며 힘을 합쳐야 합니다.
교회의 5가지 핵심 기능 중에도 교제가 있었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전이므로 각 개인도 교회의 5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중 교제에 관한 당위성을 신약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발견하는군요.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되었음이니라 내가 본즉 해 아래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과 함께 있으매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찌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4:13-16 KRV
지혜에 대한 숭상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다는 이야기로 전도서의 4장 후반부가 마무리됩니다.
4장은 전반적으로 메세지가 짧고 간결합니다.
1. 악한 세상
2. 교제하라
3. 헛되도다
기초적인 문학적 구조인 서론-본론이라는 장치가 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구약의 다른 오래된 책들은 분량에 비해 메시지를 때려박는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만, 전도서는 저런 기교 덕분에 수월하게 읽힙니다.
정보의 밀도가 낮은 대신 완급조절이 잘 되어 있어 주제 전달이 더욱 잘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확실히 솔로몬 시대의 문학 기법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코헬렛의 눈에는 세상이 헛되고도 헛되었으나, 여호와를 경배하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같은 전제부를 두고 수동적 허무주의 사상가들이었다면 세상이 헛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거나 자살을 했을 것이며, 능동적 허무주의자들은 욜로(YOLO)나 쾌락주의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코헬렛은 다릅니다. 허무함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을 발견하고 이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서의 지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현대의 세상도 악으로 가득차고 헛된 곳입니다. 제 인생 또한 "때"에 속박되어 "영원"을 동경하는 찰나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좌절하거나 스스로를 단속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게 더 큰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