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PDI가 무엇이며, PDI가 높을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PDI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국가다. 대한민국의 풍토 자체가 혁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혁신 성공사례들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 검진 키트라거나, 불화수소 가스를 순식간에 국산화한다거나. 그냥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잘 나서 그런걸까? PDI가 높은 경우에도 혁신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 영리하게 접근해야 한다.
상황을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다. 정부혁신 담당관의 PD를 (상, 하) 2단계로 나누고, 담당관의 부하직원들의 PD 역시 (상, 하) 2단계로 나눈다. 이리하여 총 4가지 경우의 수를 논하여 보자. 현실에서는 결재권을 가진 사람의 PDI 역시 고려가 필요하고, 부하직원들 중에서도 PD가 높은 직원과 낮은 직원이 섞여있겠지만, 이것까지 고려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아예 본격적으로 각을 잡고 상황을 진단하는게 맞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글 수십 편 읽는 것 보다 제대로 된 기획자에게 자문을 받는 것이 낫다. 상상텃밭의 계좌는 항상 열려있다. 27일 이후에 자문을 요청하실 경우 필자가 직접 방문한다.
원래 PDI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의하는 것이지만 이번 글에서도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편의상 PDI를 개인에게도 확장하여 적용하겠다. 이를테면 PDI가 낮은 개인은 조직 내의 부당한 권력 분배와 부적절한 권력 행사에 대한 반감이 큰 사람이며, PDI가 높은 사람은 이런 부조리를 수용하거나 동조하려는 경향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부하직원의 PD가 높을 경우
PD가 높은 사람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콜롬비아 아비아나 항공의 부기장들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상사의 권위에 복종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을 상사가 직접 내려주기를 바란다. 상사에게 무작정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존경이 베이스가 된 기대감이 있기에 상사의 책임이 막중하다.
PD가 높은 부하직원은 책임자의 의사결정이 부적절하거나 일을 잘 못 하면 좌절감을 느낀다. PD가 낮은 사람이라면 화를 내며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PD가 높은 직원은 무능력한 상사의 모습을 수용한다. 하지만 그것을 용서하기 때문에 조용한 것이 아니다. 속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일 뿐.
따라서 소위 말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모든 것을 막무가내로 지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혁신이라는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하달해야 하며, 본인 또한 책임있는 자세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PD가 높은 직원은 자유도가 높은 업무를 받으면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혁신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기 위해 함께 회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 보다는 당신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본인이 비난받지 않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덕분에 회의는 성과가 지지부진해진다.
PD가 높은 직원에게는 '아이디어를 가져오라.'는 지시 보다는 '문제점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해 오라.'는 지시가 조금 더 적절할 수 있겠다. 이왕이면 최대한 상세하게 말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
실업급여 절차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어 인력과 자원 소모가 크다.
사무관이 최소한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 (방향성)
그렇다면 절차를 온라인화 하면 좋겠다.
잘못된 업무편달
"김 주무관님, 실업급여 절차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어 인력과 자원 소모가 심합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세요."
적절한 업무편달
"김 주무관님, 실업급여 절차는 부정수급의 우려가 있어 절차 일부를 노동청에 내방해서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혹시 이렇게 절차안정이 중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전면 온라인화를 달성한 사례가 있는지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국내사례를 먼저 찾아보시고, 마땅치 않으면 해외쪽 사례를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PD가 높은 부하직원들이 다수일 때에는 최소한 해결 방법의 방향성은 사무관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 빠르기는 하다. 전체 회의를 해 봐야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회의를 할 때에도 '지금부터 방법을 찾아봅시다.' 라는 안건 보다는 '이런 방향성을 생각해 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안건이 더 낫다. PD가 높은 집단은 결정권자가 최대한 많은 사항을 결정해 주기를 기대하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업무를 편달할 때에도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기 보다는,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조사하거나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 조사를 지시하는 편이 좀 더 낫다. 위 적절한 업무편달 예시를 보자.
(1) 문제인식
(2) 원하는 정보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조사
(3) 업무 순서 지시
(4) 최초 지시 과업이 수행이 곤란할 때, 대안을 제시
특히 (4)가 중요하다. 직원이 혼자 괴로워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힘겹게 당신에게 찾아와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문제를 제시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PD가 낮은 직원을 배려한다면 차라리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업무를 지시해 주는 편이 낫다.
아울러, 난상토론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물어뜯는 방식의 회의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PD가 낮은 사람들은 조직의 화합과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물론 130명의 목숨이 끊어질 상황임에도, 그 와중에 조직의 안정을 추구하느라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콜롬비아 아비아나 52편 비행기의 부기장들을 떠올려 보자.
부하직원의 PD가 낮을 경우
축하한다. 복 받으셨네. 당신이 PD가 높은 사람이라면 조직에 기강이 없다며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혁신은 그런 인재들을 많이 확보한 조직이 쉽게 한다. 하나하나가 소중한 자산이다. 잘 챙기자.
부하직원의 PD가 낮다면 의사결정 단계에서부터 함께하라. 당신의 의견을 듣고 문제점을 발견해 지적하고, 당신의 논리를 공격하는 직원을 칭찬해라. 난상토론을 유도하는 것이다. 당신의 최초 아이디어가 훌륭했다면 이를 보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요, 당신의 최초 아이디어가 별로였다면 더 좋은 아이디어로 갈아탈 기회의 장이 열린다.
또한 부하직원을 존중하라. PD가 낮은 사람은 직책이나 직급을 "업무 편의상 구분해 놓은 것일 뿐"이라 생각하므로 여러분의 연차나 나이로부터 권력을 느끼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꼰대들의 행동과 정 반대로 행동하면 된다. 혁신업무를 담당하면서 PD가 낮은 부하직원에게 꼰대질을 하는 혁신담당관들이 분명 없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곳은 대한민국이니까. 필자가 정말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진급기회를 걷어차고 있다.
초기 의사결정 단계에서 우선 큰 방향성을 함께 결정하라. 방향성이 결정되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함께 도출해야 한다. 또한 PD가 낮은 이들은 딱히 오래된 것이나 먼저 있었던 것이라고 하여 권위를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선례'를 괄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PD가 낮은 사람들의 약점이 된다. 반드시 자료조사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
PD가 낮은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은 일단 수평적이고 유연하므로 애자일스러운 방법론을 도입할 수 있다. 애자일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많은 다른 문서에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1. 문제 정의
2. 해결방안 모색
3. 해결방안이 타당한지 가볍게 검증
4. 어? 아닌 것 같은데?
5. 다시 처음으로
휴. 설명하느라 힘들었다.
처음부터 문제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쭉 달려나가는 모델을 워터폴(Water Fall)이라고 한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과 같이 한 방향으로만 업무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런 모델은 PD가 높은 사람들에게 어울린다. PD가 낮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에는 항상 그들이 현안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적이 타당할 경우 지금까지 하던 것을 과감하게 포기할 각오 또한 되어 있어야 한다.